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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영 : 멈추거나 움직이거나 Hold & Roll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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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는 정나영 개인전 《멈추거나 움직이거나 Hold & Roll》를 오는 3월 10일부터 4월 2일까지 개최한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정나영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랜 시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가 개인이 겪은 문화적 고립과 충돌의 문제를 인류 공동의 터전인 흙이라는 매개를 통해 탐색한다. 


정나영의 작업에서 흙과 신체는 작가 자신과 관객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그 자체로 의미를 생성하는 행위자이다. 흙은 기억을 공유한다. 각종 생명과 물질들의 유해가 오랜 기간 침식과 풍화를 거치며 누적된 흙에는 지구의 집단적 역사와 그곳을 거친 이들의 사적인 기억이 오롯이 담겨있다. 정나영이 흙을 작업의 매개로 삼는 것 역시 작가 개인의 역사로부터 기인하는데, 자신을 이루는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이자 작업의 출발 지점인 ‘도예’에 대한 작가로서의 인식이자, 유학과 17개의 레지던시를 거치며 전세계를 끝없이 유동하던 삶에서 ‘터전’이라는 정착할 수 있는 물리적 영역에 대한 염원이 혼재된 것이다. 정나영은 한국, 미국, 영국, 독일 등 자신이 거쳐온 특정 장소의 흙을 사용해 그 흙에 담긴 기억과 흔적을 작품에 담는다. 흔적들을 질료 삼아 하나의 도자로 완성된 개인의 동굴은 역동하는 물질로서의 흙과 인간의 물리적 개입이 반영된 영토, 그리고 작가 자신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한 실험이자, 그 사적 관계 내로 타인을 초대하려는 행위와도 같다(기억의 동굴, 2022). 


한편, 흙을 빚고, 굴리고, 던지거나 움켜쥐는 신체 역시 주요한 매개자로서 정나영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지점이다. 흰 벽 앞에 서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흙을 잡거나, 내던지며 남은 흔적들을 기록하고(Catch or Throw, 2017),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흙을 굴려 긴 나선형의 경계를 만드는(Personal Boundary, 2017) 작가의 움직이는 신체는 여성의 수행적 신체성이 강조되었던 1960년대 바디 아트(body art)의 계보에 위치해 있는 동시에 1970년대 포스트 미니멀리즘에서 등장했던 단순한 행위의 반복을 통한 물성에 대한 강조를 시각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의 실천들이 물리적 가학을 통한 인간 신체의 한계를 탐구하거나 흐르고, 망가지고, 소멸되는 물질의 변화 과정 그 자체를 포착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면 정나영은 그로부터 나아가 신체적 접촉을 통한 인간과의 관계에서 서로 생동하는 물질의 가능성과 사적 경험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기록으로 남아 과거의 한 지점에 위치해있던 정나영의 퍼포먼스는 이번 전시에서 서울, 특히 전시장이 위치한 연남동의 흙을 활용해 벽돌을 빚고 벽을 쌓는(A Wall: Self Protection, 2017/2022) 움직임으로 다시금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낸다.


인간이 자연과 환경의 모든 것들과 연루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듯이, 우리는 다른 대상들과의 끝없는 관계 맺음을 통해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수많은 개인들이 축적된 공간인 동시에 물질의 숨은 힘과 유기적 진동을 담지한 곳이 된다. 정나영은 흙을 감각하는 행위를 통해 유동하는 모호한 사적/공적 경계를 추적하고 그 의미를 사유한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의 국경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지만, 이번 전시의 제목 ⟪멈추거나 움직이거나 Hold & Roll⟫ 처럼 정나영이 빚어낸 세계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오랜 시간과 역사를 같이 한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터전을 감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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