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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공주 차세대 작가전-유예린展: 수호자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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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라. 온전한 나를 위한 투쟁기

- 유예린 개인전 수호자

 

이연주(수원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작가 유예린과 만남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그는 개인 정체성의 차이를 억누르고 보편 인류라는 집단에 종속시키려 하는 사회 시스템과 통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짙게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 정체성이 생물학적 특징으로 규정된 성별과 다르며, 사회적 타의에 의해 연기해왔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의 작품에는 유년 시절부터 정체성을 감추면서 빚어진 불안과 체념, 내적 갈등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왜 작가는 오랜 시간 자신을 감추고 살아야 했을까.

사회 시스템은 다수의 합의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구조는 사실상 지배 계층에 부여된 특권으로부터 성립되기도 한다. 그 구조를 이루는 사회 집단 속에서 특수한 사회 집단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은 억압되어왔다. 이 특정 소수자들의 정체성 억압은 특정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에 생기는 기회의 체계 수준의 제한과 자기 결정권의 제약을 받아왔으며, 반대로 지배 집단의 구성원들은 억압받는 이에게 부과되는 박탈로 인해 조직적으로 이익을 얻어왔다.(예컨대 오랜 시간 여성에게 강요된 여성성이 구축된 방식은 단순히 생물학적 성의 차이로 부여된 것이 아닌 가부장제라는 권력 관계를 결속시켜 왔다. 또한, 페기 매킨토시는 유색인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 그가 백인으로 이익을 얻는 47가지 방식을 열거하여 백인성을 지배적 정체성으로 파악하였다. 사회적 규칙과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소수 집단의 정체성은 갈등하고 대항해 온 것이다.

 

거주할 수 없는 행성에서 내 자리 찾기

 

나는 살기 위해 자기합리화를 선택했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껍데기는 붉고도 검은 무대 위에 서성인다.”

 

유예린의 작업 세계는 자아의 갈등과 내적 불안으로부터 출발했으며, 사회의 통념에 의해 수많은 좌절과 체념을 반복해왔음을 밝힌다. 2020년 개인전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에서 유예린은 다양한 분야의 인터넷 카페 40곳을 찾아 생물학적 성별 구분인 남자여자를 검색하여 뜨는 게시글과 댓글을 모아 분석하고, 자신이 거주하는 이 세계가 성별 이분법이 적용되는 사회로 판단한다. , 성별 이분법이 적용되는 대한민국은 젠더퀴어라는 생명체가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영역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사회가 규정한 젠더 영역에 순응한 사람이다. 그가 느끼는 이 세계는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영역이며, 내면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짜인 각본에 따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나름의 조사 방식으로 증명을 시도한 것이다.

작가는 그 자신이 생명을 유지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을 연극 무대혹은 ‘Goldilocks planet’으로 비유하고 그 환경에 순응하여 살거나 혹은 적응한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 연기하는 인간상을 그린다. 작품 <극한환경미생물>(2020) 시리즈에서 묘사하는 무대 위의 사람들, 짜인 각본대로 연기해야하는 배우들의 몸동작과 표정은 불편하고 경직되어 있다. 이는 현실과 자아의 괴리 사이에서 갈등해온 작가의 자화상이자 그가 바라보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너는 왜 미지근한 수프만 먹어>(2020)에서 혼자 따뜻하지 않은 미지근한 수프만 먹은 것으로 추정된 무대 위의 벌거벗은 한 사람이 어딘가 불편하고 괴로운 표정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집단의 암묵적 합의에서 벗어난 특이점을 가진 행동들은 언제나 불편한 시선과 경멸을 견뎌야 한다. <Goldilocks planet>(2019)을 보자. 이번 전시에서 몇 안 되는 유화로 제작한 이 작품은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배우들 사이에서 마네킹처럼 창백한 피부에 내장과 장기가 드러난 성별이 모호한 한 사람이 무표정으로 까치발을 들고 서 있다. 이 창백한 신체를 가진 인물은 정체성을 감추고 연기하는 배우들과 다르다. 속을 끄집어내어 날 것의 상태로 노출된 한 인간이자, 행성 어딘가에 숨겨놓은 작가 자신이기도 하다.

 

최대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

 

최근 유예린은 무대 위의 자신을 감추고 연기하고 있는 피동적인 인물, 체념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목석과 같이 우두커니 서 있는 수동적 인간상에서 벗어나려 한다. 신작 <견고한 쌍수>(2022)에서 이분화되고 억압된 성 정체성에 대해 몸속의 장기가 드러난 이 몸은 <Celestial body>(2019)와 동일한 신체를 가졌으나, 마네킹과 같이 죽은 물건처럼 보이는 신체가 아니라 칼을 든 살아있는 몸이다. 이것은 과거의 작품에서 등장하던 수동적인 인물들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화면 속에 주체적인 인간상을 염원하는 것으로 변주한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작가 노트의 말미에도 언급된다.

 

이제는 고유한 삶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좀 더 솔직해져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스스로 마주 보지 않으려 했던 자신을 바라보는 건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다. 이것은 연극의 주인공이 아닌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이 변화의 시작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 <수호자>(2022) 시리즈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유예린은 게임 캐릭터의 콘셉트를 차용한 내장 갑옷으로 전투 태세를 갖춘 인물을 그린다. , 그는 이 유닛들을 수집하는 게이머가 된다. 객체화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심리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다짐과 사회에 맞서 싸워보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지는 작품 속에 묘사되는 인물들을 온라인 시뮬레이션 게임과 같이 일종의 가상 세계 속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육성하여 이상적인 인물(혹은 사물)로 성장시킨다.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의 신체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아도 되며 억눌린 현실에서 벗어나 원하는 모습으로 활동할 수 있다.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위장된 상태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또 다른 행성이다.

유예린은 완전히 무장한 새로운 인물을 그리기 위해 하나씩 아이템을 축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세상과 맞서기 위한 이 방어 아이템의 소재는 인간의 장기이다. 척추와 뉴런, 근육은 얽히고 복잡하게 직조되어 투구와 칼, 방패가 된다. 이 갑옷이 단단할지, 오히려 연약한 세포들이라 물컹하여 전투에 사용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이내장 갑옷들은 주체적인 생을 위해 직접 빚고 갈은 유예린, 그 자신을 위해 만든 아이템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에 대한 방어와 폐쇄적인 제스처가 아니다. 최대의 방어력을 갖춰 최선의 공격자가 되기 위한 작가의 태도이자 행위이다. 예컨대 <반사 공격>(2022)을 보자. 이 작품은 긴 망토를 깊게 눌러쓴 (보통 게임 속에서 마법사 캐릭터로 등장하는) 인물이 좌우로 배치되어있다. 이 마법의 전사는 얼굴과 정중앙의 두 손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종교화와 같은 연출로 이미지를 삼단으로 배치하여 숭고함을 강조한다. 이 숭고함은 이전과 다르게 스스로 자신의 아이템을 만들어 싸워나가려는 의지와 주체성에 대한 기도이다.

<수호자>(2022) 시리즈는 작업 방식에서도 페인팅보다 더 흥미를 느끼고 있는 판화로 완성한다. 아크릴판을 니들로 긁어낸 뒤 찍어내는 드라이포인트의 물성이 강하게 표출된다. 내장 갑옷을 종이 위에 직접 그리지 않고, 아크릴판을 니들로 깎고 도려내고 다듬어, 이미지를 한 땀, 한 땀 새긴다. 완성된 판은 정성스럽게 찍어내고 조각난 이미지들을 조립하여 완성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는 주체적인 마음을 다듬고 수행하는 ’,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직접 만들어 착용하는 로 성장하며 스스로 빌드업이 되고 있다. 유예린은 그리기를 벗어던지고 긁고, 찍기를 통해 사회의 권위와 편견에 저항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자신의 영토를 하나씩 넓혀가는 것이다.

 

필자는 이제 유예린이라는 한 사람이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닌 멋진 공격수가 되기를 바란다. 최대의 방어가 최선의 공격일 수도 있다. 비록 개인의 공격이 이 견고한 사회 속에서 감내해야 할 시선과 공격을 방어하는 것만으로 아직은 벅찰지라도, 다양성의 목소리를 내고 투쟁해온 개인이 모여 새로운 미래와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투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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