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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진의 역동적인 풍경

김영태

                                       대구사진의 역동적인 풍경

                                       1960~1970년대를 중심으로


                                                                                           김영태 사진비평 현대사진포럼대표


대구는 1960대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진문화의 중심지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현재는 사진비엔날레가 2006년도부터 격년으로 개최되고 있는 사진비엔날레의 도시이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나라 사진문화벌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 사진술이 도입된 것은 대한제국말기였고, 사진을 예술을 위한 표현매체로 사용한 작가들이 등장한 것은 1920년대이다. 이때는 일제강점기였기 때문에 일본사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또한 일본인들이 조직한 사진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한 인사들도 있었다. 이들은 공모전 출품을 통해서 작품 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작품의 주된 경향이 흔히 말하는 ‘살롱사진’이였다. 1920년대 일본의 사진경향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당시에 활동한 사진가들 중에서 대구의 최계복은 서울의 이해선, 회령의 정도선 등과 더불어서 공모전 입상을 통하여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그는 사진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대구사진예술학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최계복은 1세대 작가이자 사진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진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또한 해방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활동했다. 그 중에는 사진에 대한 평론을 일간지에 기고한 구왕삼, 김태한 등과 같은 비평가도 있고 공모전출품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사진가들도 있다. 특히 구왕삼과 김태한은 지역일간지를 매개로 리얼리즘사진과 조형사진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펼쳤다.


그 이후 1960년대에는 신현국, 강상규 등과 같은 사진가들이 공모전에 입상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신현국은 일간지기자로서 리얼리즘사진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또 강상규는 리얼리즘사진과 조형적인사진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나갔다. 그는 작가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한국사진사를 정리하여 책을 출간해 학자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 또 경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강영호는 실험적인 사진으로 사진의 새로운 표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대구지역의 사진가들에게 사진기술과 이론에 대한 토대를 제공한 김재수도 대구사진문화 발전에 공헌했다. 그는 오랫동안 지역대학에서 후학들에게 사진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국내공모전뿐 아니라 해외공모전에도 많은 입상을 한 김일창이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는데 절대적인 조형감각이 느껴지는 영상언어를 펼쳐 보였다. 또 이시기에는 새로운 사진 혹은 현대사진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진가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대구지역의 원로사진가인 차용부, 이수종, 양성철, 김종수 등이다. 이들은 정형화된 공모전 사진에서 탈피한 자신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을 발표했다. 좀 더 젊은 세대 중에도 대구출신의 사진가로서 20대 초반부터 사진계의 큰 주목을 받은 작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권부문이다. 그가 1975년도에 발표한 ‘Photo Poem' 시리즈는 당시로서는 신선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때부터 이미 주목받는 작가가 됐다. 그는 정형화되고 탐미주의적인 사진이 대다수였던 당시에 평범한 일상을 강한 콘트라스트와 감각적인 카메라워크로 재구성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가 됐다. 미술제도와 미술시장에서도 자신의 위상을 확고하게 다진 작가다.

이와 같은 대구사진의 역사적인 사건과 사진가들의 활동이 기초적인 토대가 되어 1980년대부터 제도권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교육이 시작됐다.

그 후 1993년도에는 대구지역 젊은 사진가들이 중심이 되어 전국적으로 30대 젊은 사진가들을 규합하여 ‘젊은 사진가’展을 기획하였는데 한국사진문화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1990년대는 한국사진이 현대화, 세계화 과정에 있었는데 대구에서 기획되어 최근까지 열리고 있는 ‘젊은 사진가’展은 한국사진의 현대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또 2006년도부터는 아시아 최초로 사진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어 대구사진은 그 역사적인 전통을 계승해서 발전시키고 있다.


대구사진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통과 진보가 교차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예술사진 스타일인 살롱사진과 리얼리즘사진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이 시도하는 아방가르드적인사진 혹은 현대영상사진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시기가 이때이다. 이때 활동한 사진가 중에는 전국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독창적인 조형언어를 보여주거나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모색한 사진가들이 있다. 그들이 작년 9월에 ‘2012 대구사진비엔날레 특별전 II 대구현대사진의 여명’을 통해서 소개된 김재수, 구자춘, 남해경, 이수종 등이다.

김재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진교육자로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또한 지역의 사진가들에게 원로서 정신적인 영향력을 끼쳤고 존경받았다. 사진에 관한 이론과 정보가 부족하던 시절에 일본에서 발행한 잡지를 통해서 얻은 지식을 지역의 사진가들에게 제공했다.

그의 작품에서도 당대의 다른 사진가들과 마찬가지로 조형적인 시각성과 리얼리즘적인 내용적이 어우러져서 작품의 외피(外皮)와 내피(內皮)가 형성되었다. 다분히 형식주의적이지만 작품마다 1960년대 당시의 문화가 드러나고 있어 시각정보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작가의 사진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구자춘은 서민들의 삶을 기록했다. 현실을 기록한 사진이지만 다큐멘터리적인 태도로 사진 찍기를 한 것이 아니라 아카데믹한 구도에 의존해서 조형성을 추구했다. 당시의 주류적인 사진경향인 생활주의사진에 영향을 받아 회화주의적인 소재로부터 탈피해서 현실을 표현대상으로 삼았지만 미의식은 여전히 조형적인 살롱사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기억속에서도 점점 더 잊어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남해경은 포토저널리스트 출신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단체 중에 하나인 대구사진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신문기자를 그만두고서는 상업스튜디오를 오랫동안 운영한 상업사진가 이기도 하다. 그는 당시의 주류적인 경향인 생활주의사진이나 걸작주의적인 사진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사진언어를 생산하기도 했다.

특별한 사건이나 뉴스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평범한 일상에 숨겨져 있는 사회적인 현실을 포착한 것이다. 그래서 작품마다 촬영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한국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변모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진아카이브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준다.

수종은 1970년대 당시에 중요한 신인작가 등용문인 ‘동아사진콘테스트’를 통하여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45년생인 작가는 이전세대들이 추구한 탐미주의적인 사진이나 걸작주의사진에서 탈피하여 사진의 영상언어적인 기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동아사진콘테스트’에 입상한 이후에는 단사진이나 걸작주의 사진에서 탈피하여 연작사진으로 독창적인 영상언어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에서도 문학적인 상상력이 느껴진다. 교통사고라는 특정한 사건을 연출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상황을 시각화 한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작가로서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대구출신의 원로사진가 중에서 미처 제도로부터 주목받지 못한 사진가들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국가 전체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고, 사진의 사회적인 위상이 열악했지만 예술로서의 사진의 매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일찍이 인식했다. 그래서 사진문화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가꾸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이 토대가 되어 오늘날의 사진문화가 꽃 피었다.

이들 외에도 사진사적으로 의미가 있지만 자료가 발굴되지 못하고 있는 사진가들이 많이 있다. 역사는 팩트(fact)를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사진은 20세기 후반부터 빠르게 발전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서구의 사진역사 및 현대사진을 파악하고 연구하는데 치중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사진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데는 소홀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나마도 서울중심으로 연구되고 알려졌다. 우리 사진사가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사진미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좀 더 폭 넓게 역사를 연구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및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제도적인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보다도 좀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의 사진역사를 연구하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월간사진예술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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