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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연 작고 10주년 기념전>을 보고

고경옥 / 이랜드문화재단 큐레이터

현재 국내에는 북한미술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인접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현대미술은 90년대 이후 국내에 지속적으로 소개되었으나, 북한미술은 아직까지 생소한 영역이다. 우리나라는 해방과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는 반쪽짜리가 되었다. 1950년 이후 한국미술사 역시 남한만의 반쪽의 기록인 것은 분단국가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작가인 ‘함창연’의 전시는 북한미술을 국내에 소개하는데 있어가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밀알미술관에서 열렸던 <함창연 작고 10주년 기념전>은 고인의 10주기년을 기념하여 열린 전시로, 그의 대표적인 판화(목판화, 에칭, 석판화)와 유화작품, 그리고 드로잉 등을 선보였다.

함창연은 식민지시대 1919년 평북도에서 출생하여 1940~50년대 평양미술대학의 배운성에게 사사받았다. 식민지시대 유럽에서 공부한 배운성에게 지도받은 함창연은 서구의 다양한 판화기법을 습득하고, 이후 폴란드의 바르샤바미술대학에서 수학한다. 귀국한 이후에는 북한의 평양미술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쓴 북한의 대표적인 판화가이다.

이번 전시는 함창연의 자화상을 중심으로 그의 내면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과 다양한 인물화가 주를 이루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예술가란 지극히 체제만을 위해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개인은 없고, 국가를 위한 도구로써의 인간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과 소련의 대부분의 미술이 선전포스터나 주체사상 등을 강조하는 작품을 만드는데 예술가를 동원한 것에서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데올로기를 배제한 개인의 실존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함창연 자화상은 흥미롭다.

1956년에 제작된 <자화상>에서 37세의 함창연은 당당하다. 거친 목판화의 칼맛과 어우러져 젊은이다운 패기와 기운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모습은 20년이 흐른 1976년에 제작된 <회상>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난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57세의 작가는 유학시절 폴란드의 이국적인 풍경을 재현하고, 자신의 얼굴과 오버랩 시킨다. 기억 속에 박제된 풍경을 회상하는 쓸쓸한 표정이다. 1980년에 제작된 <자화상>에서도 그는 말을 하고 있다. 한 손에는 붓을 들고, 굳게 다문 입을 통해 예술가로서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991년에 제작된 <자화상>에서는 더욱 초라한 모습니다. 이 작품은 세로가 130cm인 대형 자화상인데,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를 배경으로 함창연 자신이 쓸쓸하게 서 있다. 예술가로서의 자유의지가 박탈된 현실에서 슬픔이 녹아있다.

예술창작에 있어서 자유는 생명이다. 자유가 거세된 예술이란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이나 다름이 없다. 함창연이라는 한 개인의 자화상 시리즈를 통해 사유의 자유가 박탈된 예술가의 비애를 살펴보았다. 우리에게 북한미술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반쪽짜리 역사가 아닌 온전한 한국미술사를 위해 앞으로 미지의 영역인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가 많은 결실을 맺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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