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회고록 펴낸 석남이경성 호암미술관 자문위원
- 미술 속에서 행복했습니다
인터뷰/ 김달진


지난 3월 6일 한남동에 있는 민빌딩 지하 '로탄다'레스토랑에서 석남 이경성선생 팔순연 및 지난 2년 여간 노익장을 과시하며 집필해온 회고록 《어느 미술관장의 회상》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기념회장은 외진 곳이었지만 시간전에 많은 참석자들이 모였다. 1회 석남미술상 수상자인 김장섭씨의 사회로 진행된 기념회는 숭실대총장을 역임한 철학자 조요한박사와 일본 소케츠미술관 데시카하라 히로시관장의 축사로 이어졌다. 단장을 짚고 검은 두루마기에 한복을 입은 석남선생의 답사는 여든을 넘기도록 미술 한 직종에 일생을 바쳤고, 아직도 현역이기에 행복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초대 문화부 이어령장관의 '지화자'라는 선창으로 건배를 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양모관장, 서울대 안휘준교수, 호암미술관 홍라희관장, 영남대 유홍준교수 등을 포함 2백50여명이 참석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

* 미술평론가, 교수, 관장 등의 경력중에서 미술관 관장직에 가장 애착이 많다고 하시는데…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시작으로 홍익대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워커힐미술관장, 일본 소케츠미술관 명예관장을 지냈고 현재는 호암미술관 자문위원입니다. 그 중 네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건설에서 운영까지 맡아 자리를 잡아놓았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미술관의 3대 요소인 작품을 수집하여 수준을 높였고, 건물은 신축하였고, 사람 즉 큐레이터의 양성을 위해 외국 연수의 길을 열어놓은 점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 가장 보람 있으셨던 일은?
국전에 한 때 관여도 했지만 우리 미술의 현대화를 위해 폐지에 앞장을 섰죠. 이 과정에서 권위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작가들, 특히 한국화가의 반발이 컸습니다. 그동안 미술을 통해서 참다운 은인, 지인, 애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한편으로 그들은 타인인 셈입니다.

* 관장님의 인생관은?
지난 삶을 회고해보니 맨 앞에 서지도 못했고 주로 관조하는 자세였으며 경제적으로 부를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몸은 늙었지만 현재도 낭만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서울 사람은 밤하늘에 있는 달과 별을 보지못합니다. 초야에 묻히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는군요.

* 관장님은 여성작가를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국립현대미술관 재직시절 이달의 작가전이나 석남미술상 수상작가중 여성작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체작가 중에 여성작가, 미대졸업생 중 여성의 비율을 보면 알지 않습니까.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이 있는지요
이번 회고록을 일본의 출판사에서 펴내주기도 했고 가을에 도쿄 소케츠미술관에서 8회 개인전을 갖게 됩니다. 이어 내년 2월 석남미술상 수상작가전에 맞추어 강남 모화랑에서 개인전이 있습니다. 그동안 석남미술상을 수상한 작가들이 석남가족을 형성하고 석남미술문화재단을 이끌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근대미술 사학회에서 이번 학회지를 내 기념논총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남 이경성은 미술평론 개척자로 22권의 저서를 냈고, 홍익대교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두차례 역임했다. 현재 슬하에 딸 은다씨와 사위, 손녀, 네 가족이 있다.
(가나아트 1998.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