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미술과 더불어 살아 왔지요 " 이경성 "

인터뷰 / 이경모 편집장
사진 / 배기우 기자

우선 우리 『미술세계』가 창간 18주년과 『어린이 미술세계』의 새로운 창간을 기념하여 제정한 '자랑스런 미술인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큰 상을 저에게 주신 『미술세계』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어려운 가운데서도 국내최초로 월간 미술지를 창간하여 18년간이나 이어온 『미술세계』에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 치하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어린이미술세계』의 창간은 매우 시의 적절하고 바람직한 결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로 인하여 『미술세계』가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건강은 어떠하신 지요? 독자들이 궁금해합니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거동이 불편하고 글쓰는 일도 쉽지 않군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지팡이에 의지해 거동하고 있었지만, 지난가을 청주에 다녀오다가 고속도로상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매우 불편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집에서 독서를 하며 소일을 하다보니 심신이 맑아져 마음은 편하군요.
그래서 어제는 밖에 나가 오랜 벗인 조요한박사(전 숭실대 총장)를 만나 저녁식사도 하고 담소를 나누고 왔죠.

평생을 미술비평 및 미술관 건립, 그리고 후진양성을 하며 바쁜 삶을 살아오셨는데 혹시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 회고록(어느 미술관장의 회상, 1998 시공사 刊)에도 밝힌바 있지만 저는평생을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팔십평생을 미술이라는 한 직종에서 살아왔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그리고 적당히 가난해서 마음의 죄를 덜 졌다는 것, 적당히 고독해서 낭만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평생을 같이 살아온 처를 7년전에 먼저 보낸 것은 이미 노경에 접어든 저에게 큰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미술관 관장, 교수, 평론가,미술사가로 미술에 관한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인생은 선각자의 슬픔이랄까, 깊이 보다는 넓이에 중점을 둔 연구였습니다.
말하자면 숲을 갈아서 밭을 일구는 일을 했지만 거기에다 씨를 심고 거두지는 못한 거지요. 그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일 수 있는 거죠.

선생님은 평생 20여권의 저서를 발표하는 등 미술이론연구에 몸바쳐오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수 차례의 개인전을 갖는 등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계신데…?

작품활동이랄 거까지 있나요. 이제 글쓰는 일이 힘에 부치니까 소일로 그림을 그리는 거지요. 40여 년 전부터 여기(餘技)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그림이 모여지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 전시를 하게되더군요. 그런 가운데 석남 미술상을 위한 기금마련을 구실로, 또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방편으로 전시를 갖게 되어 어느덧 개인전이 10여 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는 2월에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이 잡혀있는 것으로 아는데 작품은 잘 되어 가시는지요?

그 동안 틈틈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하는 회고전 성격의 전시회이기 때문에 작정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전시를 해 볼까 했는데 다행이 가나아트센터 측에서 흔쾌히 전시장을 빌려주고 모란미술관에서는 화집도 만들어 준다고 하여 전시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개인전과 더불어 수화 김환기선생에 관한 책도 내신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나옵니다. 원래 이 책은 1980년도에 『수화 김환기-내가 그린 점 하늘 끝에 갔을까』란 제목으로 출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이 되었던 것을 20년만에 증보하여 내놓게되었습니다.원래 수화와는 홍대시절 늘 가깝게 지내던 처지이고 지척에서 그의 인간 됨과 작품의 제작과정을 보아왔던 터이기에 다시 펜을 든 것이지요.

요즘 근황은 어떠신 지요?

집에서 틈틈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보내고 가끔 지인 들을 만나 담소를 나누면서 보냅니다. 다리도 불편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하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군요. 친한 친구인 이대원 같은 경우는 그림을 그리니까 말년에도 윤택하게 보내는데 평론가인 저는 늙어 글도 못쓰고…. 진작 화가로 전업할걸 그랬나 봅니다.(웃음)

미술세계 200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