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전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전시상세정보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영점 zero-point 전

  • 상세정보
  • 전시평론
  • 평점·리뷰
  • 관련행사
  • 전시뷰어


- 25년간 구축해온 소장품을 통해 미술관 정체성 살펴보다 -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영점》 개최


◈ 6.16.~8.27. 본관 2층 대전시실에서 소장품 기획전 개최… 25년간 축적해온 소장품 150여 점 전시
◈ 총 8장으로 전시 구성, 미술관 정체성 살펴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 조망
◈ 스마트미술관으로의 도약을 위한 소장품 연구 방향성을 모색하는 학술행사 9월중 마련


  부산시립미술관은 오는 6월 16일부터 8월 27일까지 본관 2층 대전시실에서 소장품 기획전《영점》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발간된 『소장품 선집』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시립미술관이 지난 25년간 축적해 온 소장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소장품 150여 점을 통해 부산미술의 정체성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시 제목 ‘영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 일반적 의미인 ‘시작점’, ‘기준점’과, 양자물리학에서 예측 불가능한 에너지로 채워진 진공상태를 의미하는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가 있다.

  소장품 기획전《영점》은 이 두 가지 개념을 확장해 시립미술관의 시작에서부터 이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조망한다. ‘미술관은 무엇을 수집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수집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그동안 부산미술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는 ▲근대기 부산의 작가들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 ▲구상에서 추상으로 ▲확장된 미술의 경계 ▲정신으로서의 평면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다양성의 시대 ▲아시아를 품다 등 총 8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특히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과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장은 부산미술의 역량이 극대화된 시기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미술관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아시아를 품다’에서는 미술관 소장품 중 10%를 차지하는 아시아미술 작품이 전시되며, 이는 부산미술 정립과 더불어 해양성, 개방성에 기반한 부산시립미술관의 정체성과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전시와 함께 소장품 수집·연구를 다각도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소장자원 기초 연구와 데이터베이스 구축, 디지털 환경 속에서 실현 가능한 소장품의 활용 방식 등 그간의 연구 성과와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스마트미술관으로의 도약을 위한 소장품 연구 방향성을 모색하는 학술행사를 9월 중 마련할 계획이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소장품 선집 발간과 더불어 부산시립미술관이 25년간 구축해 온 정체성을 점검해 보는 의미 있는 전시이다”라며, “새 단장(리노베이션)이라는 큰 전환점을 앞둔 지금, 부산시립미술관이 지향하는 글로컬(glocal)*한 미술관으로서의 행보를 이어 나가기 위한 새로운 항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 글로컬 : 세계화지방화, 세방화

  기타 자세한 사항은 부산시립미술관 누리집(http://art.busan.go.kr)을 참조하거나 전화(☎ 051-744-2602)로 문의하면 된다.


BMA 소장품 선집





1. 근대기 부산의 작가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부산과 일본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매우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 왔다. 특히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을 통한 근대화의 물결은 정치, 경제, 생활 등 모든 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만들었고, 이는 문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종전의 전통과 궤를 달리하는 근대화단이 출현하였고, 일본인들이 개최한 전람회와 강습회 등을 통해 서구식 미술이 대중들에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일합방 전후로 부산에는 수많은 학교가 생겨났고 모두 도화과목(미술수업)을 정규수업으로 채택했다. 도화교사들은 대부분 동경미술학교 출신의 일본인들로서 서구식 도안술이나 제도술 같은 것을 가르쳤다. 이들에게 서구미술을 접하게 된 학생들과 미술인들을 통해 부산근대미술의 많은 부분이 형성되었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 중 제작연도가 가장 이른 부산작가의 작품은 1929년도에 제작된 우신출의 <영가대>이다. 이 시기가 부산미술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 때를 전후로 부산미술인들이 본격적으로 전람회 및 공모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1928년 부산출신 작가 임응구가 <우에노 공원>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하였고 그 뒤로 서진달, 양달석, 김원갑, 김종식 등이 입선하였다. 한편, 1928년 《부산미술전람회》가 창립되었고 임응구를 비롯한 우신출, 김원갑, 김남배 등 부산작가들의 수상이 이어졌다. 《부산미술전람회》는 전국 단위의 공모전 형식이었다. 초기에는 경상도 일원의 작가들 위주로 출품되었으나, 전람회가 정착된 이후에는 경성과 일본지역에서도 출품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부산 미술학도에게 큰 자극을 주어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위해 도일하는 작가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김아타, On Air Project 077-1, 077-2, 077-3, 077-4 077-5, 
The Last Supper, 13 People, 140x880cm, Chromogenic print(Ed.1-7), 2007




2. 격동의 역사와 현실의 반영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재한 일본인 작가들은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가고, 일본에서 유학하던 부산 출신의 작가들은 귀국했다.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맞은 한국은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전 분야에서 이념적 갈등이 있었고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주를 이루었다. 재한 일본인 작가들과 동반적 활동을 이어오던 부산미술계는 자력으로 독자적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 흩어진 작가들이 다시 모여 활동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 발발로 부산으로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서울지역과 전국 각지에서 미술작가들이 유입되었다. 당시 부산은 부산지역작가와 서울지역작가를 중심으로 한 중앙화단이 공존하는 문화예술의 1번지였다.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부산미술은 ‘혁토사(경남미술연구회)’, ‘토벽회’, 《부산미술전람회》 등 미술단체와 공모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종군작가회’와 《3.1절 경축미술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중앙화단의 작가 유입은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토박이 작가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견제적인 관계로 나아갔다. 타지역 일부 작가들의 작품에서 추상적 변화를 본 부산작가들은, 그들의 개성에 이질감을 느끼고 향토적 리얼리즘을 더 강하게 고수하려는 의지를 발산하였다. 토벽동인의 결성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이후 부산 서양화단의 독자적인 흐름의 초석이 되었고 토벽동인들을 중심으로 향토적 리얼리즘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여광사진구락부’에 참여한 정인성, 임응식 등이 해방 이후 ‘혁토사’ 등의 활동을 통해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부산 사진의 흐름을 주도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사진은 그 속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그들은 시대의 모습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고 삶을 관통하는 리얼리즘 미학을 사진예술 영역에 끌어들였다. 정인성과 임응식은 당시 주류였던 살롱사진에서 벗어나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운동을 주도했다. 50년대 부산의 ‘생활주의 리얼리즘’ 양상은 미술사를 넘어 한국사진사 맥락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김종식, 부산항 겨울, 31.8x62.5cm, 함석에 유채, 1949



3. 구상에서 추상으로
1960년대 한국 미술계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기성 작가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한편, 과감한 혁신을 꾀하려는 재야 단체들이 등장해 그 기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추상 계열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추상 작가들의 무대가 재야에서 중앙으로 점차 넓혀가게 되었다. ‘구상’과 ‘추상’의 충돌, 이러한 대립구도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알력이기도 했으며, 이 속에서 전개되는 과정이야말로 1970년대 미술계가 더 넓은 모색의 발판을 마련해 나갈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자극이었다.

중앙과 몇 년의 시차는 있지만, 당시 부산 화단에도 추상이 유입되었다. 부산미술 형성과 함께 했던 부산 1세대 작가는 구상미술과 추상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산현대미술을 정착시키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행보와 더불어 국내 미술대학을 졸업한 젊은 작가들의 출현으로 부산미술계는 풍부해졌고 억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자유로운 의지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1965년 부산 1세대 미술 작가들에 의해 개최된 《대한민국 국민미술전》은 당시 추상미술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고, 부산작가들의 향후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부산의 추상미술은 ‘혁’, ‘습지’, 《공간전》, 《부산판화전》 등 미술단체와 단체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류무수, Embryo.79.5, 71.3x60.4cm, 캔버스에 유채, 1979



4. 확장되는 미술의 경계
1970년대 기존 한국 화단을 주도했던 추상미술의 획일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서구의 다양한 현대미술을 한꺼번에 수용했던 한국의 실험미술. 그 시작에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과 1969년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1970년 ‘제4집단’, 1971년 ‘S.T’(Space &Time) 등과 같은 단체들이 있었다. 이 같은 당대의 단체들은 전통적 미술을 벗어나 오브제, 해프닝, 행위미술 등 새로운 매체와 실험을 시도하며 예술 간 장르의 구분을 해체하여 미술의 영역를 확장하고자 했다. 1972년 제1회 《앙데빵당》과 같은 실험무대가 등장했고, 1973년 《대구현대미술제》를 시작으로 전국 단위의 현대미술제가 각지에서 개최되며 실험과 전위라는 용어가 한국미술계에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1968년 ‘혁’ 동인과 ‘습지’ 동인의 작가들이 모여 ‘추상 이후의 미술’이라는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이후작가전》을 개최하였다. ‘모순의 시대’를 살며 실존적 불안을 예술적 실험과 자율성으로 회복하고자 했던 이들은, 단 1회의 전시로 해산했지만, 부산미술의 전위성을 알렸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WORK’(1975), ‘Point’(1977) 등의 단체가 등장하여 실천적 이론을 제시하고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였다. 이처럼 소규모 단체를 통해 실험적 태도를 보이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조형 이념을 구축하려는 개인 활동도 이어졌다. 


박서보, 묘법 No.970520, 228x330cm, 캔버스에 한지, 안료, 1997



5. 정신으로서의 평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 초까지 다양한 실험미술이 시도되었고, 작가들은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 서구에서 새롭게 유입되는 미술 흐름에 관심을 두고 한국미술의 새로운 모색과 지향점을 찾아 종래의 미술계 분위기를 넘어서려 했다. 실험미술이 탈평면 경향을 띠고 있었다면, 다른 일군의 작가들은 평면의 탐구를 심화 발전시켜 나갔다. 제1회 《앙데빵당》(1972), 《서울현대미술제》(1975) 등을 중심으로 수행성과 물성을 강조한 단색회화가 서서히 두각을 보였다. 1975년 일본 동경화랑에서 개최된 《한국 5인의 작가-다섯가지 흰색》전은 단색조 회화를 한국 고유의 미학을 연결해 주목을 이끌어내었다. 이 전시를 기점으로 중앙화단에서는 독자적인 정신세계를 구현해 나간 단색회화가 크게 부상하였다.

서구미술의 수용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전통 기법과 서구기법의 혼용, 그에 따른 혼란은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미술계에도 이러한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부산의 몇몇 작가들은 서구미술의 전통적인 재료기법과 차별되는 독자적 형상미를 탐구하였다. 김홍석, 김종근 등은 물성 자체의 특성에 주목하였다. 화면의 색을 단순화하고 성냥, 실 등 일상에서 보편화된 재료들을 표현의 매개로 활용하여 물성과 행위의 반응을 드러냈다. 그런가하면 김인환, 양철모 등은 우리 전통에서 단청 등 모티브를 차용하거나 오방색 등 색채를 통해 한국적인 주체성을 표현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성된 결과물들은 서구의 추상미술과는 변별되는 자생적 표현의 양식임이 분명하다. 이 시기 일군의 작가들은 ‘혁’, ‘WORK’, ‘Point’ 등 단체 활동을 통해 다른 지역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부산미술의 활동을 알렸다. 그들은 한국미술사 문맥에 위치하면서도 부산만의 독립적 성향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 나갔다. 한편 1973년에 부산시민회관과 탑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규모가 큰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되었고, 전문화랑의 등장으로 부산미술계는 활기를 띠게 되었다. 


박현기_무제(TV돌탑)_1980(2016)



6. 새로운 형상을 향하여
1970년대까지 한국 화단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추상과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성 혹은 저항의 움직임은 새로운 구상회화를 고민하게 하였고, 작가들은 미술성 회복을 주장하였다. 이에 당시의 주류였던 한국의 추상미술은 형상미술과 민중미술이라는 전위병을 만나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형상미술은 처음에는 신구상미술, 형상미술, 신형상미술 등의 용어로 명명되며 수면으로 올랐고 이후 형상미술로 불리게 된다. 형상미술 작가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개별적인 작업세계에 투영시키며 추상에서 형상으로 미술의 표현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1980년대 초반 민중미술이 전국적으로 활발하던 시기에 부산에서는 형상미술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형상미술과 민중미술이 현실을 주목하고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내용과 서사 중심으로 전개된 것은 공통된 분모이지만, 그 방법적 접근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다. 민중미술은 정치적 사건에 직접적으로 집단 가담하는 현장주의적 실천 미술이었다면 부산형상미술은 집단적 의사 표명보다 직면한 상황과 시대 흐름에 주목하고 개인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우리의 상황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바로 사인화랑이 있었으며, 1980년대 지역미술에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한 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사인화랑에서는 부산 최초 ‘형상’이라는 주제로 《인간, 그 서술적 형상》전이 개최되었고 그 후로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형상작가’로 불리는 작가군을 조명하였다. 
부산형상미술은 거대 담론이나 강령을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작품을 통해 개별 언어의 발현이 돋보이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준히 진화해 나갔다. 


 
                     송주섭, 세대(얼굴), 147x78cm, 캔버스에 유채, 1982       송혜수, 부친상 1, 33x9cm, 캔버스에 유채, 1939



7. 다양성의 시대
19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담론이 대두되며 비주류권에 해당하던 문화운동과 장르들이 예술의 영역에 나타난다. 1968년 서구에서 시작된 문화적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젊은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원적인 실험이 이뤄졌고 이는 기존의 모더니즘 미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대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인터넷 상용화로 예기치 못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된다. 세계화와 함께 대중문화의 소비가 가속되는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젊은 작가들은 다양한 대중문화의 요소를 융합하는 작품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의 한국미술계는 다층적인 변화가 있었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였고 1990년 문화부가 신설되었다. 이후 문화예술진흥이 국가 주요정책으로 추진되면서 전국 주요 시도에 국공립미술관이 개관되었다.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한국국제아트페어 등의 개최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로 국제미술계와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그 흐름과 나란히 하고 있다.

1990~2000년대 부산미술계는 역동적인 변화의 시기였다. 부산은 1995년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국제적 수준의 문화예술기관을 계획하였고, 부산시립미술관을 개관(1998)하였다. 그 뒤로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로 시작된 비엔날레가 2002년 부산비엔날레로 개칭되어 국제적 미술 행사로 발돋움하였고 대안공간 섬(1999, 대안공간 반디로 2002년 재개관), 아트인오리(2000), 오픈스페이스 배(2006) 등의 대안공간 출현으로 지역미술계 무대는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체이론연구회’를 시작으로 ‘디지아트(DigiArt)’, ‘미디움(Medium)’, ‘포멧’ 등 미디어를 연구하는 단체들이 많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비디오, 필름, 인터넷, 컴퓨터 등 다양한 매체들을 연구하고 작품화하면서 부산미술계에 커대란 변화를 가져왔다. 

스가 키시오, 周光化(주광화), 200x186x21cm, 나무에 아크릴, 2009


8. 아시아를 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아시아미술 연구와 담론 형성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아시아미술작품을 확보해오고 있다. 현재 미술관 전체 소장품 중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미술 작품은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부산시립미술관만의 특성화된 수집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미술관이 확보한 아시아미술작품은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의 작품이 주류이지만, 나아가 서아시아까지 확장하여 ‘아시아 컬렉션’을 강화한다는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통해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의 장소 특정적 특징인 해양성에 기초하여 아시아미술 중심의 뉴-아젠다 제시와 확산의 리더로서 아시아미술문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추연근, 천마산, 55x78cm, 캔버스에 유채, 1957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