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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홍성담 화백의 ‘유신풍자화’, 어떻게 봐야 하나 _비혼여성 희롱한 반여성적 작품

황진미


출산이란 소재로 공격하는 대상은
‘보수’ 정치인 아닌 ‘여성’의 처녀성
이런 성희롱적 조롱이 과연 풍자인가

점입가경이다. 홍성담 화백의 그림 ‘골든타임’에 대해 박근혜 후보 진영이 사법대응을 밝힌 데 이어 홍 화백이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 ‘출산-1’을 올렸다. 여성의 생식기에서 뱀의 몸통을 한 박정희가 태어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이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상의 후보자 비방 혐의로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나는 위 그림들에 사법적 판단을 가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비판의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그 비판의 초점이 예술은 정치적 선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느니, 예술은 혐오스러워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조야한 예술인식에는 반대한다. 또한 그림이 음란하거나 패륜적이란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 그림이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차별적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굳이 출산이라는 성적 소재를 써서 풍자하는 대상은 ‘보수’ 정치인 박근혜가 아니라, ‘여성’ 정치인 박근혜다. 즉 정치인이라는 기득권이나 유신을 옹호하는 보수적 이념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소수자적 특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대상의 강자적 측면이 아닌 약자적 측면을 조롱한 것으로, 이는 성·인종·장애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에 해당된다. 오바마에게 ‘깜둥이’라고 말하거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절름발이’라고 부르는 건 권력에 대한 풍자가 아니라 ‘혐오발언’이다. 지난 총선 때 불거진 콘돌리자 라이스에 대한 김용민의 ‘강간 발언’ 역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공격한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그를 공격한 것이기에 문제가 되었다.

박근혜의 ‘여성’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 홍 화백은 “박근혜의 처녀성과 몰지각한 여성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한” 것이라 답했는데, 이는 매우 퇴행적이다. 물론 박근혜의 성녀 이미지나 여성 대통령론은 허구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여성적 가치를 실현하리란 기대도 무망하고, 그간 여성적 가치와 가장 먼 정책과 조직문화를 보여 온 새누리당이 갑자기 이를 운운하는 것도 민망하다.

그러나 그동안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유리천장’에 부딪혀 온 여성들에게 ‘여성 대통령 자체가 정치개혁’이라는 구호가 솔깃한 위로로 들리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정치에서 소외됐던 40~50대 여성 지지자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반대 진영에선 박근혜가 생식기만 여성일 뿐, 출산·육아 등 여성 일반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기에 ‘진정한 여성’이 아니란 논지를 펴왔다. 박근혜가 ‘아버지의 딸’로 정치에 입문한 뒤 가부장적 질서를 흔드는 정치를 해오지 않은 점에서 그가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진정한 여성’이란 논의가 비혼 여성을 배제하고 있으며, 비혼 여성의 처녀성을 문제 삼는 홍성담식 조롱이야말로 반여성적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대 진영은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비판과 더불어 바로 그 유일한 여성적 지점인 ‘생식기’를 조롱함으로써, 박근혜에게 여성 일반의 경험인 ‘성희롱’을 선사한다. 텔레비전 광고 속 박근혜는 유세 중 맞은 칼침을 강조한다. 조롱의 칼끝은 그를 박해받는 여성 정치인으로 재규정할 것이고, 여성 대통령론이란 허구적 프레임은 비로소 그 내용을 얻을 것이다. 총선 때 김용민 파문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필패다.


- 한겨레신문 2012.11.30

http://www.hani.co.kr/arti/opinion/argument/563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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