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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에 대한 부정》 간담회, 페로탱 서울

객원연구원

작년 ‘미투 운동’을 시발점으로 최근의 ‘몰카 사건’들 까지, 여성의 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들이 재조명 되고 미디어는 물론 출판계 등지에서 활발하게 재토론되고 연구되기 시작했다. 미술계 역시 지난 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 된 ‘신여성 도착하다’ 전을 필두로 많은 페미니즘 전시를 기획,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맞추어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한, 세계적인 갤러리 중 하나인 페로탱(Perrotin)의 서울 갤러리에서도 12인의 젊은 동시대 작가들의 여성성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그룹전을 ‘기념비에 대한 부정(No Patience for Monument)’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인다. 본 전시 전,  4월 4일(목) 오후 2시에 이번 전시를 기획 한 페로탕 뉴욕의 발렌타인 블론델(Valentine Blondel) 디렉터와 페로탕 서울의 고유미 디렉터의 주최로 기자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전시장 전경


브론델 디렉터에 의하면 이 전시는 미국의 여성 작가인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이 1986년에 쓴 ‘소설의 쇼핑백 이론’을 메인 테마로 삼아 기획 되었다고 한다. 르 귄은 그녀의 저서를 통해 통해 역사 속 남성 본위의 기념비중심적 경향을 비판하며 문화가 형성되고 존속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제안을 했다. 이 ‘쇼핑백 이론’은 최초의 도구가 정복을 위한 무기가 아닌 채집을 위한 용기였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로 인하여 인류가 후자를 억누르고 보다 폭넓은 ‘ 영웅적인’ 서사를 추구하도록 길들여졌다고 말한다. 르 귄은 더 나아가 문학 속의 무찌르고 정복하는 내용의 영웅적인 서사가 구시대적이라 주장하며 용기에 기반한 보다 복합적인 구조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르 귄은 이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허용되고 또 문학이 가지각색의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여겼다.



작품 설명을 하는 발렌타인 블론델 페로탕 뉴욕 디렉터(왼쪽)와 박가희 작가(오른쪽)


기념비의 부정은 12명의 작가를 선보이며, 이들의 작품은 전체적인 역사적 묘사 방식에 반기를 든 르 귄의 의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낸다. 이들의 목소리는 예술적 묘사의 역사와 그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비 화 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며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박가희 작가와 작품 Still Life with Flowers, Fish and Hermit Crab(2018)


갤러리 입구에서부터 관객을 맞이하는 박가희의 작품이 이번 그룹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 출신의, 그러나 뉴욕에서 오랜 세월 작업 했던 그녀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와 그 반대로, 성에 대해 개방적인 미국 사회에서 두 체험이 작품 세계를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앙리 루소와 같은 예술가가 연상되는 ‘천진’한 느낌으로 그려진 작품이지만, 박가희가 묘사하는 대상에서 천진난만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낭만적인 장면의 이상이 무너진 모습을 묘사한다.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 된 두 남녀의 성적 행위는 어두운 그림자, 기묘한 포즈의 고양이, 혹은 썩어가는 과일들과 같은 배경 속 오브제들과는 대조된다. 그림을 바라보는 청중은 박가희가 그려낸 모호하고 껄끄러운 장면을 바라보는 불편한 관음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가 동시다발적으로 서술되는 내용을 담아낸다.


제네시스 벨란저(Genesis Belanger)의 작품은 신체의 대리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정교하게 조각되고 흡사 퐁당과 같은 색체가 입혀진 사물이 인간의 모습을 띈다. 일상적 사물이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띄면서 불편할 정도로 친숙한 모습이 된다. 미국 중산층 가족을 대표하는 평범한 아침식사의 조각은 여성에게 강요된 사회적 역할과 이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Genesis Belanger, Decorative Vessel(2019) Stoneware, porcelain, 58.4x25.4x25.4cm,

Unique ©PERROTIN SEOUL


특별히 이번 단체전을 위해 벨란저는 인간형상의 화병을 조형하였는데, 이는 르 귄의 은유적 ‘용기’를 나타내는 동시에 여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평이다. 성적 대상화 되며 페티쉬화 되기도 한 여성의 머리카락이 신체를 집어삼켜 신체 그 자체가 되는 줄리 커티스(Julie Curtiss)의 회화도 선보일 예정이다. 클리브 (비슈누) 에서 머리카락으로 된 밧줄이 서로 얽히고 엮여 신체를 옥죄는 코르셋을 형성한다. 위협적으로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은 대상의 가슴과 복부를 감싸며, 이 중 가슴은 르 귄이 언급한 모성의 ‘쇼핑백’을 나타낸다.


전시회 작품의 전반이 여성이 어떻게 묘사 되었는가를 다루며, 특히 남성적 시선을 전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실리아 헴튼(Celia Hempton)의 회화는 남성의 성기에 집착하여 남성 화가들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기에 집착했던 것을 비판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66)과 유사하게 헴튼의 작품들은 성기를 중심 소제로 다루며 여성 화가로서 그는 음경을 묘사해서는 안된다는 터부에 도전장을 내민다. 쿠르베가 인체의 정면을 묘사했던 것과 달리 헴튼은 후방을 묘사하는데, 이는 치부가 노출된 상태이기도 하며 동시에 미술 역사의 맥락에서 남성의 후방이 묘사된 예는 흔치 않다.



Emily Mae Smith, No patience for Monuments II (2019), Oil on linen, 96.5x76.2cm,

Unique ©PERROTIN SEOUL


역사적 예술 작품의 모작과 팝 아트 풍자 속에 재치 있는 사회적-정치적 논평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인 에밀리 메이 스미스(Emily Mae Smith)의 작품은 해학을 통해 가부장제와 남근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기념비의 부정 II - 이번 그룹전의 타이틀은 이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 에서 크림 더미는 그 소제나 규모에서 기념비와는 반대되며, 몸이 없는 혓바닥은 이 작고 부드러운 상징물을 훼손한다.


단련된 신체를 묘사한 얀슨 스테그너(Jansson Stegner)의 회화는 여체를 묘사함에 있어 기념비적 접근 방식을 동원한다. 스테그너의 작품은 전통적인 초상화의 장르 속에서 여체에 부여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근육질과 미가 조화를 이루며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한 스테그너의 작품은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좁은 잣대에 도전장을 내민다.



3층 전시장 전경


전시는 3층에서 이어지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시장 중앙의 사라 피터스(Sarah Peters)의 청동흉상이다. 그녀의 흉상은 그 모습만 보면 에트루리아의 유물일 수도, 미래에서 온 작품일 수도 있다. 피터스는 남성성을 상징하는 단단하고 무거운 청동을 이용해서 여성성의 심볼 중 하나인 머리카락을 정성 들여 조각했다. 체제 전복적 태도를 접목하여 고대 조각품의 조각 양식을 빌린 피터스의 흉상은 미술 역사에서 여성의 머리를 은유적으로 때어버리는 행위를 바로잡는다. 여성의 신체는 배제한 채 목소리와 주체성을 담은 신체 기관인 머리를 탐구함으로써 피터스는 말하자면 여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Jessie Makinson, Slippery Darling (2019) Oil on canvas, 95x70cm,

Unique ©PERROTIN SEOUL


이번 전시 참여 작가 중 가장 젊은 작가인 제시 매킨슨(Jessie Makinson)의 회화는 젊은 작가답게 기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주로 나타나던 성별 간 대립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매킨슨의 작품은 많은 경우 남성이 전무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한 제안이며, 미술 역사부터 공상과학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영감을 얻는다. 매킨슨은 특히 주인공이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르 귄의 ‘사변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르 귄은 주로 남성작가가 주를 이루는 공상과학 소설에 대한 본인의 관심과 페미니스트 이념 간에 조화를 이루었으며 매킨슨의 작품 역시 유사한 고민이 담겨있다.




노들린 피에르의 작품

(왼쪽) Pure Light (2019), Acrylic and pastel on paper, Unframed: 38.1x 27.9cm, Framed: 47.8x37.3x3.8 cm, Unique

(오른쪽) Hold Me Up(2018), Acrylic and pastel on paper, Unframed: 38.1x 27.9 cm, Framed: 47.8x37.3x3.8cm 


노들린 피에르(Naudline Cluvie Pierre)의 작품은 종교적 회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다룬다. 이번 전시회에 종이에 그려낸 두개의 작품은 작가 본인을 의미하는 광륜을 쓴 여성과 날개가 돋은 천국의 동물을 묘사한다. 그는 또한 기독교적 신심과 역사를 다룬 회화를 재구성하는데, 역사적으로 이런 회화에서 수난을 겪는 남성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피에르의 작품에서는 동일한 자세를 취한 여성이 남성의 자리를 대신한다.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Ruby Sky Stiler)는 조각난 타일을 연상시키는 특이한 작업으로 여성성과 모성을 대표하는 전통적 장면 속에 남성을 묘사한다. 마돈나와 아이 속에 담긴 수사법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은 아이들과 함께 기댄 남성을 묘사하여 다정다감하며 감수성이 풍부한 부성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러한 부성의 부재를 명시화 함으로써 그는 이러한 초상화에 담긴 전통적인 역할상과 그 근원이 되는 가치체계로부터 남성과 여성을 해방시킨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서는 연령대는 비슷하나 국적, 배경, 성별은 다양하며, 국경과 단체를 넘어선 정치적 예술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4월 4일부터 5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원고작성 및 사진촬영: 김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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