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작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아티스트 김세진의 개인전 《Walk in the Sun》이 10월 23일부터 11월 30일 까지 진행된다. 본 전시에 앞서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에게 이번 전시와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았다.
김세진 작가는 지난 2016년, 도시의 노동자나 이민자 등 소외된 계층을 주제로 한 작품,<도시 은둔자>와 <멸망으로의 접근>으로 한국미술계를 리드할 유망한 젊은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송은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다. 그녀의 이번 전시는 4년만에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개최되는 개인전으로, 다양한 형식의 영상과 사운드로 이루어진 신작 4점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부제인 Walk in the Sun은 제프리 랜디스의 동명 SF 소설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평소 SF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김 작가는 달에 불시착한 우주비행사가 생존을 위해 태양을 쫓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이 삶을 위해 물리적, 가상적 이동(movement)을 멈추지 않는 인간의 여정과 닮아 있다며, 이 부제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Walk in the Sun》전에서는 작가가 노르웨이의 라플란드에서부터 남극의 연구기지까지의 여정에서 촬영하고 채집한 이야기의 기록과 서사로 구성된 네 편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전령(들) (still image) Messenger(s) OLED 모니터에 3D모션 그래픽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LED 라이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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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최첨단 OLED에서 상영되는 우주개 라이카의 이미지는 언뜻 기념 동상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번 전시의 첫 여정은 <전령(들) Messenger(s)>(2019)로 시작된다. 납작한 투명 스크린 안에 우주복을 입은 강아지의 이미지가 마치 박제된 듯, 공허하고 딱딱한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이 개는 ‘우주개’ 라이카(Laika)로 러시아의 우주선 스푸트니크로를 타고 최초로 우주로 간 생명체로 기록 되어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류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동의 욕망과 인류의 역사의 뒷면에 기록된,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동의 시작점에서 희생된 수많은 존재에 대한 업적을 기린다.
3층 전경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 (To the North for Nonexistence)>(2019) 의 한 장면
3층에 마련된 두번째 전시실에서는 붉게 칠해진 강렬한 공간이 관객을 압도한다. 약 15분 가량의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 (To the North for Nonexistence)>(2019)이 상영된다. 이 영상은 스웨덴 북부 및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경에 근접해 있는 라플란드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사미(Sami)족 일원인 아니타 김벌(Anita Gimvall)의 이야기를 ‘아니타로부터의 편지(Letter from Anita)’,’북쪽으로(To the North)’, ‘시간의 땅(The Land of Time)’, ‘추방(Exile)’, ‘태양의 딸의 죽음(The Death of the Sun’s Daughter)’의 5개 챕터에 의해서 진행된다. 아니타는 손주들에게 사미족의 전통과 문화를 가르쳐 주고자 120년 된 전통가옥인 코타를 보존해왔으나, 코타가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의 풍력발전 지역 조성을 위한 재개발을 진행하는 정부와의 마찰이 생기고, 그녀의 집은 결국 불탄다. 이 작품에서 전통과 현대라는 극명하지만 동시에 모호한 경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그 이면의 소외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는 객관적 사실 위주로 담담하고 무심하게 서술한다.
<모자이크 트랜지션(Mosaic Transition)>(2019)
3층 안쪽에서는 <모자이크 트랜지션(Mosaic Transition)>(2019)가 전시되어 있다. 모자이크 트랜지션이란 이미지를 조각 내어 서로 다른 이미지 공간으로 상호 이동하거나 전혀 다른 상태의 이미지로 전환하는 영상의 특수 표현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이름을 가진 김세진 작가의 작품 역시 두개의 분열된 스크린을 통해 이미지가 조각나고 합쳐 지기를 반복하는 영상과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다. 딸각 거리는 마우스 소리가 반복되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을 배경으로 작가가 편집을 거친 뉴스의 몇몇 화면과, 비주얼 맵 등 빠르게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를 따라 화면 캡처, 오버레이 와 같은 시스템 기능들이 쉴 새 없이 작동하며 화면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특히 영상 중반부 나타나는 월드와이드웹(www)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1955-)가 모자이크 된 모습으로 오늘날 소수의 권력층이 행하는 정보의 독점에 따른 개인들의 데이터 통제권 상실, 가짜 뉴스의 무차별 확산 현상을 비판하는 강연의 장면은 이 작품의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즉, <모자이크 트랜지션>은 이처럼 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진보가 이루어낸 허구적 상상력이 실제로 우리의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지를 디지털 무빙 이미지와 리드미컬한 사운드를 통해 묘사하고, 인류가 맞이한 디지털 문명에 대한 현대인의 불가항력적 맹신과 오작동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4층 전시실 전경과 <2048>(2019)
4층에서는 <2048>(2019)이 세 개의 대형스크린에서 상영된다. <2048>은 작가가 직접 남극의 레지던시에서 2주 동안 지내며 촬영한 영상 작업을 토대로, “G”라는 가상의 대륙을 설정하여 제작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2048은 남극조약(남극과 그 주변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연구의 자유보장을 명시한 12개국이 1959년 체결한 국제조약)이 종료되는 해인 2048년을 뜻한다. 사실 남극조약은 개별국의 영유권 주장을 금지하기 위한 협정이지만, 도리어 여러 국가들이 ‘과학’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앞세워 앞다투어 남극에 진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이 거짓 평화가 끝나는 날 아직 개척되지 않은, 천연자원과 광물이 무궁무진한 남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품 <2048>속에서의 “G 대륙”은 인류의 유토피아보다는 산산이 조각난 영유권 분쟁의 중심지이자 디스토피아에 가까워 보인다.
게임 ‘남극탐험’ © けっきょく南極大冒険 KONAMI 1983 JAPAN
작품의 말미에서는 80년대 추억의 게임인 ‘남극탐험’이 등장한다. 추억의 게임에 잠시 웃음이 나왔지만 펭귄이 남극점을 정복하고 하고 즐거워하는 화면에서 저 순진한 웃음이 2028년 남극을 정복할 인류의 미래가 될까, 혹은 웃음이 아닌 다른 표정으로 저 날을 맞이 할까? 라는 개인적으로 여운을 많이 남긴 작품이다.
송은아트스페이스 전경
다양한 영상과 사운드 설치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과거-현재-미래가 중첩된 현실과 가상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우리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사회, 정치적 불균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소외 현상에 대한 작가의 사유와 공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미래로 ‘이동’ 할 수 있는지 고찰하게 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원고작성 및 사진촬영 : 김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