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찬경
출품작: 영상, 사진, 병풍, 슬라이드 필름 등 총 9점
간담회: 2019.10.24 10:30-12:30
장소: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세미나실 2, 3 및 5전시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는 2014년부터 10년간 매해 1명의 국내 중진작가를 지원한다. 올해는 작가 박찬경이 이불(2014), 안규철(2015), 김수자(2016), 임흥순(2017), 최정화(2018)에 이어 6번째 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는 분단, 냉전, 민간신앙, 동아시아의 근대성 등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작업들을 펼쳐왔으며 한국의 분단과 냉전을 대중매체나 정치심리적인 관심 속에서 풀어내오기도 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석가모니의 열반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룬 〈늦게 온 보살〉등 신작 8점이 공개된다. 10월 24일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동 3층에서 진행된 기자 간담회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박찬경 작가의 짧은 인사가 있었으며, 임대근 학예연구관의 전시 전체 및 작품 설명이 이어졌다. 이후 5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작가와 학예연구관의 해설이 이루어졌다.
임대근 학예연구관(좌), 박찬경 작가(우)
■ 국립현대미술관 세미나실 2, 3
윤범모: 현대차 시리즈의 박찬경 작가의 전시를 마련해서 이 자리가 더욱 각별하다. 박찬경 작가는 사유하는 작가이고, 담론이 상당히 무게 있게 전시에 담겨있다. 근래에 다른 전시와 비교했을 때 전시장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깊이 있을 것이다. 근년 하반기의 또 하나의 큰 전시중 하나라고 기대한다.
박찬경 작가: 전시에 주어진 기간도 길었고 흥미로운 조건이어서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임대근 학예연구관: 박찬경 작가는 비평가이자 기획자, 작가이자 감독이다. 그는 전통적 미술상을 비롯해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바 있다. 또한 2014년 진행되었던 ‘귀신, 간첩, 할머니’ 예술 감독 등 다양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박찬경은 미술, 미술관, 미술사 등 관습적 미술제도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나 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미술이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본인은 농담을 던지는 전시라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의 범주를 큐레이팅으로 확장하였다. 전시 준비 기간은 약 1년 반 동안 이어졌다.
전시키워드 ‘모임’은 민중, 군중이라는 작가 특유의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하나의 방향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공동체를 민중이나 군중이라 불렀다. 작가는 그런 공동체가 전체주의적 공동체가 될 수도 있고, 전혀 의도와 다르게 왜곡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래서 차라리 재난 이후에 애도 공동체, 서로 위로하는 공동체, 서로와 서로가 따뜻한 연대감을 자랑하는 모임이 대안이 되지 않을까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모임’이라는 소주제를 결정하였다. 이번 전시는 구조적으로 봤을 때 액자구조이다. 보통 액자구조는 소설이나 문학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은 영화, 연극 등 광범위하게 쓰여 지는 방식이다. 미술에서는 액자를 작업의 일환으로 가져온 것은 드문 사례인 것 같다. 그만큼 전체 전시구조를 깔끔하게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있다.
1섹션 ‘작은 미술관’ 중 일부
2섹션의 두 영상 작품〈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 <세트>
작가가 하나의 거대한 박스처럼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큐레이션을 한 전시이다. 5전시실에 가보면 알겠지만 아주 흔한 월 텍스트도 없이 완벽히 흰 박스가 있고 그 안에 전시가 펼쳐진다. 전시는 6개의 공간으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다. 첫 번째 공간에는 ‘작은 미술관’이라는 부분이 있다. 벽면 안에는 작가가 발견했던 끌어온 이미지들이 전시와 유사한 가상적 미술사를 구성하듯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가 연필로 직접 해설을 적은 총 21점의 사진이미지와 1점의 유화작품, 병풍, 비디오 등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작은 미술관’의 뜻은 한편으로는 물리적으로 크기가 작은 미술관을 지칭한다. 나아가 개념적으로는 근대 미술관 이전의 산신당이나 사찰이 일반 민중들이 미술을 감상하게 되는 공간이었다는 점에서 시작된 뜻이다. 어떻게 보면 권위에 의한 강요된 제도에 대한 저항으로서, 개인의 상상으로 재구성된 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두 번째 섹션에는 두 점의 비디오 프로젝션 작품이 있다.〈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는 작가가 피폭현장을 여러 차례 직접 찾아가서,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을 한 것이다. 이 작업은 일본 작가 후쿠시마에 대해 꾸준히 작업해오고 있는 카가야 마시 및, 모리 사토시와 협업하였다. 옆에 전시된 또 다른 작품인 <세트>는 2000년도 작업이다. 북한의 ‘조선영화촬영소’ 남양주의 ‘종합촬영소’ 군부대 ‘시가전훈련장’ 사진들을 일제강점기에서 현재까지 허구적 연대기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작은 미술관의 작업 태도와 연결된다. 두 작품은 모두 사람이 소거된 풍경, 그러나 여전히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을 보여준다.
3섹션 ‘해인’ 전경
4섹션 작품〈늦게 온 보살〉중 한 장면
세 번째 섹션은 ‘해인’인데, 여기에는 넓은 광장이 나온다. 16개의 정방형 콘크리트 판들이 바닥에 놓여있고 그 뒤쪽으로는 평상이 있다. 본래 해인이라는 것은 만물이 도장으로 찍은 듯 바닷물에 뚜렷하게 비쳐 보인다는 의미의 모순적 표현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의미를 보다 유머러스하게 풀어내어, 바다를 도장 찍듯이 아스팔트에 찍으면 어떨까 하고 시도하였다. 계속 흐르면서 온 세상을 비추는 존재인 인터넷 스트리밍이나 빅데이터의 은유를 콘크리트라는 무거운 소재로 재현을 한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박이소 작가가 작년 과천관에서 선보인 바 있는 콘크리트 배 작품과 대구를 이루기도 한다. 항해할 수 없는 배를 박이소 작가가 만들었다면, 박찬경 작가는 항해할 수 없는 바다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 섹션 ‘늦게 온 보살’은 55분 동안 이어지는 흑백 영화의 제목이다. 영상에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한 여성은 방사능 옷과 탐지기를 들고 방사능에서 벗어나려고 움직인다. 다른 여성은 등산복을 입고 있는데 바다를 건너오는 부처님을 애도하는 것처럼 유추되는데, 이 여성은 어떤 장소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이 두 사람의 축을 가지고 사람들이 하나의 장소에, 컨테이너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각자의 방법으로 컨테이너에 집결하는 등장인물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생겨나는 자생적인 모임, 애도 공동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상영실 들어가기 전에는 두 기둥을 나타낸〈주련〉이 있다. 왼쪽에는 사각형 네거티브(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구절 ‘지옥은 비었다. 모든 악마들이 여기 와 있으니’)와 오른쪽에는 둥근 원형의 네거티브(불교 경전에 나오는 구절 ‘지혜의 눈으로 보면 지옥은 비어있다’)가 있다. 서구와 동양의 사상이 부딪히는 모습이기도 하고 이런 형태는 전시장 전체에 흐르는 구조이다. 이 두 네거티브는 영상에 겹쳐진 두 여성, 두 시선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5섹션 ‘맨발’ 전시 전경
6섹션 작품 <5전시실> 설치 전경
다음 섹션 ‘맨발’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기기가 있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서 열반한 석가모니의 고사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석가의 장례 때 화장을 하려해도 관에 불이 붙지 않다가 그의 애제자 가섭이 나타났을 때 부처가 두 발을 관 밖으로 내밀었고, 그제야 관에 불이 붙었다는 설화에서 왔다. 작품이 굉장히 썰렁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설화와 같은 것이 어떠한 반향도 일으키지 못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작품〈모임〉은 벽면에 걸려 진 많은 이미지들에 붙은 제목이다. 여러 사찰에서 촬영한〈쌍림열반도〉에 등장하는 동물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만화적 동물 그림은 엄숙한 전시장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도 이번 전시가 가지고 있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 섹션에는〈5전시실〉이라는 모형이 놓여있다. 이 모형은 5전시실을 1:25로 축소한 것이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열반이라든지, 후쿠시마 문제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관객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줌 아웃 시켜 바라보게 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완결된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의 기획이며 상상이다. 또한 기무사 지하의 감금과 취조를 연상시키는 계단을 모델 바닥과 전시장 바닥으로 길게 연장하였다. 다시 말해, 상징과 실제의 연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옆으로는 브레히트의 “어떻게 하면 정신적인 마약 거래에서 벗어나 환상의 장소를 경험의 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구문이 벽면에 적혀있다. 브레히트는 사람들이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깨어남(소격)을 요구했던 작가인데, 이를 인용한 것은 미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하는 작가의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전시가 기승전결이 없는 것 아닌가 싶을 수 있는데, 실제로 작가는 치밀하게 기승전결을 없애는 작가이다. 콘크리트 바닥과 동영상에서 이야기하는 바다와 물, 박이소의 배, 후쿠시마 해일을 연상시키는 후쿠시마의 흔적 이런 것들을 연결해 볼 수 있을까 하는. 또는 북두칠성을 징으로 표현하는 작업에서 징의 여러 가지 의미와 여기서 재난 바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징이 가진 무속적인 의미나 ‘작은 미술관’ 섹션에 있었던 칠성각의 모습까지 등을 관객들이 개별적으로 내러티브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내 내러티브는 이런 것이다 라고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스스로 작은 미술관을 만들기 원하는 것이 박찬경의 의도이라고 할 수 있다.
액자구조를 좀 더 정리하자면, 5전시실의 작은 미술관은 미술전시, 미술사라는 우리가 흔히 안전한 프레임이라고 생각하는 그 프레임 자체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이 안에서 여러 작업들이 흩어져서 모여 있다.〈후쿠시마, 오토래디오그래피〉,〈세트〉,〈주련〉,〈해인〉,〈늦게 온 보살〉,〈맨발〉,〈모임〉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11월 8일부터 12월 5일까지는〈해인〉작품 앞에서 매주 1회 다섯 명의 전문가들이 이 전시와의 직 ‧ 간접적인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다. 강연프로그램은 본 전시의 한 가운데로 옮겼는데 이는 작가가 처음부터 주장한 바이다.
작품을 직접 설명 중인 박찬경 작가
■ 5전시실
박찬경 작가: ‘작은 미술관’에 있는 벽은 미술관 규모에 비해 높이가 낮다. 어떻게 보면 회랑, 돌담을 따라가듯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술관이 왜 높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들어있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보이고, 다른 각도에서는 무엇이 보이느냐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관람이 될 것이다. 이응노는 ‘작은 미술관’의 메인작가로 초대한 작가이다. 그의 군상이 중요한 이유는 광주민주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선취하고 있다. 1980년대는 민중, 농민, 노동자처럼 무리가 범주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응노의〈군상〉에서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펼쳐져있다. 이들이 활달한 하나의 모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68운동의 영향이 이 작품에 있지 않나 싶다.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대가 이 시기에 수묵화로 그려졌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놀랍게 느껴졌다. 반대 벽면에는 기무사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차경은 미적인 것이지만 여기서는 미적인 것만은 아니다. 두 이미지의 배치는 1970, 1980년대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1980년대의 이응노의 작품을 다르게 보기 위함이다.
이 섹션은 주관적으로 서술된 미술사이다. 손 글씨를 벽면에 쓴 이유도 이를 드러내는 방식인 것이다. 박이소가 과천에 배를 설치 할 때 나도 현장에 있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가라앉기 위한 배. 그의 배가 1994년에 만들어졌기에 세월호 전이지만 충분히 세월호를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 나는 가라앉는 바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해인〉을 만들었다. 담양의 소쇄원 담장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도 있는데, 재미있는 것이 담은 시야를 일정하게 가리는 정도의 담이지 사람의 움직임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는다. 공간의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는 구성인 것이다. 이번 전시장의 벽도 완전히 막힌 것이 아니라 끝으로 따라가다 보면 끝이 뚫려 있다. 건축적 방식으로 전시를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건축가와의 협업이 중요했다.
칠성각 이미지
칠성각 이미지와 대응되는 징과 꽹과리 7개
〈해인〉은 회랑을 따라 들어오면 마당 같은 공간에 있다. 옛날 정원들을 보면 연못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고 만든 것이다. 시멘트 조각들은 높이가 같으나 하나만은 높이가 다르다. 물이라는 것은 시멘트와는 정반대되는 성질이다. 오히려 가뭄, 증발의 방식이 시멘트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앞에서 릴레이 토크가 이루어질 것이다. 전시 마지막 코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전시 공간을 재현한 모형이다. 관객 자신이 어떻게 공간을 지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모티브들의 그 깊이까지, 그리고 그 뒤에까지도 생각할 수 있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모형 옆의 징으로 만든 북두칠성은 ‘작은 미술관’ 코너에 있었던 칠성각 이미지와 비교해서 배치한 것이다. 무언가를 기원하는 장소로서의 미술관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 질의응답
Q 다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한 번도 제대로 된 근대화를 해 본적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우리의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나 판타지가 무엇이냐 물어볼 때 대답을 못하는 때가 많다. 이번 전시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A 박찬경 작가: 우리는 지역의 이상향이 무엇일까를 예전부터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 전시에도 그런 것이 여기저기에 있다.〈모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부처가 열반했을 때 그 주변에 모여 슬퍼하는 동물들이 나온다. 이런 그림들이 조선말이나 근대에 그려진 것이 있다. 슬픈 장면이 화려하게 묘사된 장면들이 많은데 단순히 슬퍼하는 모습과는 다르다. 이것이 나한테는 이상한 느낌을 준다. 혹은 두 발을 내미는 부처가 있는 장면은 위대한 성인이 돌아가셨다 라는 의미보다 이미 사건이 끝난, 즉 부처가 열반을 했는데 애제자가 늦게 온 것에 대해 환영하는 제스쳐와 유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불교문화로서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요즘 목적 없이, 이윤이나 동기 없이 모이는 모임이 점차 어려워지는 상황이라 생각이 들어서, 이상향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 미술관, 미술제도의 질문은 오늘날 꾸준히 미술관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술관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단선적인 미술역사의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어떠한 새로운 내러티브를 쓰고 계속해서 사유할 수 있을지에 대해 현대의 많은 미술가들과 비평가, 미술기관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찬경 작가에 의해 수집되고 선택된 이미지들이 나열된 ‘작은 미술관’ 파트 역시 미술사 혹은 역사 안에서 구성된 이야기가 아닌 재편집의 방식이다.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 1년에 한 번 선정되는 어찌 보면 작가로서는 대표 개인전의 하나일 수 있는 전시에 해당 질문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미술은 미술에 대한 대화이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러한 맥락을 뒷받침 한다고 할 수 있다. 전시는 2019년 10월 26일부터 2020년 2월 23일까지 서울현대미술관 5전시실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