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카탈로그 서문〕
‘성/속(聖/俗)’의 세계에 흩뿌려진 유산
김성호(미술평론가)
아담의 유산-원죄로부터
작가 윤영화에게서 창작의 화두란 무엇일까? 이번 개인전의 부제, 《유산: 남겨진 것과 남겨질 것에 대한 기억과 사색》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이다. 이 전시명은 ‘과거적 유산에 대한 기억과 미래적 유산에 대한 사색’이라는 의미로 얼추 풀이된다.
사전적 의미에서 ‘유산(遺産, Heritage)’은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재산”이자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이다. 그것은 인간(만)의 흔적이다. 자연이 신의 영역이라면, 문화는 다분히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유산의 기원은 기독교 신화에서 원(原)인간인 ‘아담’의 세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훼의 직접 명령이었던 금단의 선악과를 취한 후 죽음을 형벌로 받아야만 했던 아담의 ‘원죄(原罪, original sin)’가 바로 그것이다. “먹지 마라”는 야훼의 율법과 “정녕 죽으리라”라는 예고된 형벌을 거스르며 ‘뱀의 유혹과 아담의 욕망’ 사이에서 잉태한 원죄란 분명코 인류 최초의 ‘유산’이다. 그것은 밀턴(Milton)이『실낙원』(1667)에서 진술하는 ‘죄와 죽음(인간이 형벌로 받은)’의 근원임과 동시에 칸트(Kant)가 『판단력비판』(1790)을 비롯한 일련의 역사철학에서 논하는 ‘문화(인간이 이성과 자유의지로 실현한)’의 기원이 된다.
윤영화는 작가노트에서 “어쩔 수 없이 시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떠안고 살아야하는 운명의 몸짓들...”이라는 언급을 통해서 원죄로부터 기원하는 인간 존재의 필연적 운명을 인식한다. 또한 “우리가 그 원죄의 굴레로 허우적대는 몸짓들 속에서 과연 한줄기 빛을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그의 문제 제기는 우리로 하여금 복잡다기한 현대를 종교적 심성으로 살고 있는 한 예술가의 비장한 소명의식마저 엿보게 한다. 아담의 유산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창작의 화두란 과연 무엇일까? 윤영화에게 그것은 ‘다원문화와 혼성이미지’로 가득한 ‘오늘, 여기의 문화’로부터 천착하는 ‘성(聖)예술(L'Art sacré)'이라는 참조점(reference point)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흥미롭게도, 이번 전시에 출품하는 6점의 ‘회화/조각적’ 설치작품 중 특별히 한 작품은 그가 이전부터 줄곧 천착해온 성(聖)예술에 관한 전반적인 특성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윤영화가 종교적 도상(Icon)을 극단적으로 회화에 적용하던 1990년대 파리 체류기의 작품들, 2000년대 전후에 그것들로부터 탈피를 시도했던 사진 기반의 그리드(grid)연작들, 그리고 2002년 귀국 후 회화의 재해석으로 시도했던 일련의 ‘포토드로잉 & 포토페인팅’, 나아가 최근의 영상, 설치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모든 작업의 형식들을 한데 녹여낸 작업으로 읽힌다.
〈바람아 불어라ㅡSanta Maria Del Fiore_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에게로..〉라는 작품이 그것으로, 우리는 여기서 그가 추구해 온 ‘성(聖)예술’의 메시지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이미지와 오브제를 안치한 12개의 액자들을 제단화의 형식, 혹은 십자가 아이콘과 엇비슷하게 배치한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미지 군집체 중에서 제일 위에 도드라지게 배치한 ‘성모 마리아’ 아이콘 〈La Virgen del Perpetuo Socorro〉은 이러한 독해를 십분 가능하게 한다. 생각해보자. 성화로부터 풍경, 동물의 회화 혹은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복제 이미지들을 화려한 액자 안에서 만나게 하는 키치적 조합으로 인해, 작품 이미지는 그것의 본래적 의미를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개입하는 그리드(grid) 그물망은, 투과체가 야기하는 반투명성으로 인해, 이미지의 디테일을 일정부분 가려 개별체의 특성들을 중화시킴으로써 각기 다양한 이미지들로부터 ‘절대자로부터 창조된 세계’라는 공유의 지점을 건져 올린다. 즉 그리드 그물망은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보이는 것’의 심층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매개자의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여기에 부가하여, 좌대 위에 올라서서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는 이러한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은유의 장치가 된다.
오늘날 아이콘(Icon)의 그리스 어원인 에이콘(Eikon)은 원래 ‘물질적, 외형적’ 모방 외에도 ‘비물질적, 내면적’ 모방을 함께 지칭하는 용어였다. 헬레니즘을 계승한 로마교회에서 아이콘이란 '보이지 않는 신’의 ‘외형적/내면적 정체성’을 '보이게 하려는' ‘신현(神顯, theophany)’의 장치로 고안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이미지/텍스트’를 함께 보이기 위한 장치였다. 따라서 아이콘을 통해 문맹의 이교도를 전도하던 당시의 로마 기독교인들에게, 아이콘이 곧 우상(Idol)임을 선언하는 레오3세의 성상파괴(iconoclasm)운동은 ‘보이는 아이콘(이미지)’에 대한 억압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신’의 말씀(텍스트)에 대한 모독에 다름 아니었다.
따라서 성(聖)예술에 천착하는 윤영화의 작업에 있어 관건은 오늘날 팽만한 이미지의 홍수 속에 가려진 아이콘의 ‘이미지/텍스트’ 합체라는 본성을 끊임없이 성찰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성(聖)을 드러내 보이는 소명 같은 것이리라.
‘성/속(聖/俗)’ 내 성소
두 개의 패널이 쌍을 이룬 하나의 작품 〈Blue Heritage-Red Heritage(청색유산-적색유산)〉은 ‘이미지/텍스트’ 합체라는 전통적 아이콘이 담고 있던 본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현대적 조형언어로 변환을 시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납판 혹은 담요를 씌운 각각의 패널 위에 Blue Heritage와 Red Heritage라는 텍스트를 네온으로 설치하고 그 위에 조화(造花) 혹은 노끈을 올려놓은 나무의자 하나씩을 부착했다. 그는 ‘유산’이라는 작품의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드러내면서도 블루와 레드 사이의 의미론, 납판, 담요의 질료 등에서 간파되는 이미지에 대한 해석의 주체적 역할은 순전히 관객에게 돌려준다.
그가 텍스트의 비교적 명징한 의미론과 병치해서 질료의 이미지가 상기시키는 의미 해석에 대해 관객에게 전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한 작품들은 그 외에도 또 있다. 작품〈12개의 액자〉와〈6개의 의자〉가 그것이다. 전자에서 우리는 예수의 12제자들이 감당했던 전도의 사역을 위임받은 현대인의 소명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화리본이 상기시키는 기쁨과 축하의 사건들 그리고 금, 은, 동박의 종이들이 은유하는 천국 상급에 대한 기대, 아울러 빈 액자들에 대한 채움의 기대 등이 교차하는 이 작품에서 관객들은 이 시대의 제자적 소명에 대한 작가의 요청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후자의 작품에서 관객은 야훼의 6일간의 창조사역을 떠올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6일간의 노동과 7일째의 안식이 교차하는 우리의 일상에서 신앙인에게 요청되는 빛과 소금의 역할도 상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윤영화,〈12개의 액자〉, 2012.
성과 속이 뒤섞인 오늘날에 ‘맛을 잃지 않는 소금’으로서의 제자적 소명을 요청하는 그의 메시지는 또 다른 질료들이 가득한 영상, 설치작 〈The Great India(위대한 인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먼저 우리는 소금(언약)이 쌓여있는 반대편에 책들(유산)을 태우고 남은 재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장면을 목도한다. 구약성서에서 속죄와 정화를 목적으로 머리에 뿌리던 ‘재’는 이번 전시에서 ‘소금’과 더불어 ‘제의(祭儀)’의 장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문이 된다. 한편, 소금이 흩뿌려져 있는 바닥에 드문드문 놓인 56개의 접시들, 천장으로부터 매달려 있는 매듭 맺은 밧줄은 인도로 상징되는 ‘성/속(聖/俗)’의 세계로부터 구원을 향해 떠나는 우리의 영(靈)적 여정을 상징한다. 인도가 불교, 힌두교를 비롯한 4대 종교의 발상지라는 종교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인구가 소수임을 상징할 때, 그 곳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영원한 이방이자, 여전히 미지의 사역지일 것이다.
전면 벽에 투사되는 교차 영상들 중 〈자전거인력거꾼의 꿈(Dream of a ricksha man)〉이란 영상은 〈위대한 인도〉라는 전체 작품명 안에서 작가가 찾아나서는 영(靈)적 모험을 상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영상은 작가 윤영화가 인도의 한 인력거꾼의 자전거에 올라타 그가 인도하는 미지의 세계를 이방인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담히 기록한 것이다.
윤영화,〈The Great India(위대한 인도)〉, 2012
여기에 나신으로 ‘불’을 찾아나서는 자신의 퍼포먼스 영상과 더불어 자신의 나신을 스크린 삼아 ‘불빛’의 이미지를 투사시킨 영상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은, 소금, 재, 밧줄 등의 질료와 맞닥뜨리면서 제의적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킨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빛’이란 근원적인 존재의 현현(顯顯)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구약 전승에서 모세가 호렙산에서 야훼에게 소명(召命)을 받을 때 떨기나무 위에 나타난 불꽃과 불은 “스스로 있는 자”의 신현(神顯)이지 않은가? 회심한 바울이 만났던 ‘빛으로 나타난 예수’는 또 어떠한가? ‘불’과 ‘빛’은 ‘비가시적이고 근원적인 존재의 가시화’를 은유한다.
최근 성곡미술관의 한 기획전시에 발표한 그의 ‘빛영상설치’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윤영화가 최근에 ‘불’과 ‘빛’의 현현을 탐구하고 있는 일련의 영상, 설치작업들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그런 차원에서 그가 이번 전시에서 만들어낸 풍경은 소금, 재, 접시, 밧줄과 같은 인간 문명의 질료들을 가지고 불, 빛으로 은유되는 ‘신’을 찾아나서는 제의적 공간으로 함축된다. 그것은 그가 ‘성/속(聖/俗)’ 내에서 찾아 나선 미지의 ‘성소(聖所)’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마치 척박한 ‘지금, 이곳’에서 ‘신발을 벗어야 할 거룩한 땅’을 분명코 찾아낼 수 있다는 작가의 신실한 신앙의 발로이자 그것을 실천하는 묵상 수행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윤영화, <Heritage-Under the table / 유산(遺産)-테이블 아래>, 성곡미술관
Digital Video Installation(time:15')_Variable Size
2beam projector, salt3t, LED, braids, table, door, wire, welded wire mesh, root_2012
절망을 뚫고 피는 꽃들
윤영화는 “종교의 시대가 지나가고 미디어와 복제의 시대라 일컬으며 세속의 승리를 구가하는 지금 역시, 성과 초월의 개념이 과연 미술을 통해 말해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작업을 지속해왔다. 미술을 통해 성(聖)과 속(俗)을 연결하려는 그의 창작 태도는, 칸트에게서 자연(신의 영역)과 문화(인간의 영역)를 연결하는 인간의 반성(reflection) 활동과 조우한다. 칸트에게서 반성이란 실낙원 이전의 신화적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기 보다는 불균형상태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미래적 상황과 관계한다. 칸트에게 있어 문화란 다분히 자율적 인간이 기획하는 반성적 실천으로 미래를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칸트에게 있어 ‘철학적 신학’이란 ‘인간학’에 다름 아니다. 윤영화에게서 미래란 이번 전시명에서 드러나듯이 ‘남겨질 것에 대한 사색’과 교차한다.
그의 작품 〈절망을 뚫고 피는 꽃들〉은 칸트의 인간학에 대한 하나의 오마주(hommage)처럼 보인다.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내팽개쳐진 낡은 소파 위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절망의 현재적 유산을 타개하는 미래적 사색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윤영화,〈절망을 뚫고 피는 꽃들〉, 2012
“나는 예술행위를 통해 인간실존의 궁극적 자유구현과 해방을 위하여, 회화와 사진, 영상, 설치 및 퍼포먼스 등 접근방법의 형식적 토대로 그 외연의 확장을 기하면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삶을 긴밀히 연결 짓는 존재의 근원적 명제와 그 서사(敍事)를 딛고 드넓은 聖의 영역에서 맘껏 유영(遊泳)하고 싶다.”
이처럼, 그에게 미래적 유산은 세상 속에 정체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흩뿌려진 ‘성/속’ 내 유산으로부터 추출해내는 ‘성(聖)’의 영역이다. 즉, 선과 악, 희망과 좌절, 피안(彼岸)과 차안(此岸)이 흩뿌려진 ‘성/속’ 안에서 성(선과 희망)의 피안을 건져내는 일이다. 현재적 ‘성/속’의 세계로부터 성의 세계를 일구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로써 그것을 찾아나서는 윤영화는 사진/회화/영상/설치/퍼포먼스는 물론이며 텍스트/이미지, 버벌 커뮤니케이션/논버벌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조형언어를 부딪히게 만들고 그 충돌로부터 생기는 인고(忍苦)의 열매를 기대한다. 보드리야르(Baudrillard)로부터 미술이 무가치하다고 선고받은 이 시대에 흙, 불, 물, 바람, 그리고 소금에 이르기까지 ‘바슐라르(Bachelard)’ 식(式)의 ‘몽상(rêverie)’의 재료학을 구사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것은 아래의 작가의 진술처럼, 주어진 답을 찾아나서는 과정이 아니라 앞서 제기했던 것 같은 유의미한 질문들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일일 것이다.
“현대예술은 그 의문에 대한 답변인으로서가 아니라 광기 어린 괴팍한 질문자로서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고, 내가 아직까지 예술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어리석게도 바로 그 사실에 집착하는 까닭인지도 모를 일이다.” ●
출전 /
김성호, “성/속(聖/俗)의 세계에 흩뿌려진 유산”, (윤영화전, 2012. 12, 9~12. 15, 한전아트센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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