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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 창작 스튜디오 작가와의 대화

이선영

고양 창작 스튜디오 작가와의 대화

 

이선영(미술평론가)

     

1. 강우영

     

한국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일본에서 인터미디어를 전공한 강우영의 장소 특정적인 영상, 설치 작업들은 말에 대해 말한다. 미술도 일종의 언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에 대한 말은 메타적인 차원에 있다. 그러나 관념적이거나 초월적이지는 않다. ‘unspoken words’라 붙여진 일련의 작업들은 타자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말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포함하여 조형예술이 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관계를 묻는다. 어릴 때 작가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던 폭력적인 말, 미술이라는 독특한 언어를 업으로 삼게 된 작가로의 길, 그리고 유학생으로서 분명히 느꼈을 말의 불투명한 물질성을 염두에 둘 때, 말에 대한 강우영의 작업은 메타적 차원을 넘어 자신이 당면한 실존적 문제에 대한 탐구였다고 볼 수 있다. 미술가가 늘 상 다루고 있는 형상은 말과 등치될 수 없다. 말로 될 것을 굳이 형상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이 더 많기에 형상은 존재 의미를 가진다. 

 

세상 질서의 한편에 속한 미술계도 작가에게 끝없이 말하기를 고무하고 강요까지 하지만,  잘 말했을 경우에 조차도 그것은 단지 잘 내뱉은 말, 임기응변에 지나지 않는다. 더 빨리 판단, 분류, 활용되기 위해 말의 비중은 커지지만 괴리감은 극복되지 않는다. 기표가 아니라 실재에 뿌리박기 원하는 이들은 말이 지배하는 피상적 사회에 비판적이다. 2008년의 한 작품에서 공식적인 복장을 상징하는 하얀 와이셔츠들은 유령이나 허깨비 같이 떠돈다. 정보화 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코드로의 환원 과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을 무화시키려는 압박이 존재한다. 말에서 말로 끝나는 공회전의 사회에서 예술 역시 자유롭지 못함은 통탄할 만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이 더 중요하다. 작가 표현대로 ‘울컥 삼킬 수밖에 없는 말’은 몸과 영혼에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강우영의 작품은 말 속에 있는 침묵의 몫에 더 주목한다.

 

 

강우영, [unspoken words], 2008년

  

 

2. 이원호 

     

이원호는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의 규칙에 관심이 있다. 규칙은 구조적으로 작동되기에 구조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이다. 구조로부터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은 구조를 확인 또는 갱신하는 계기가 된다. 그가 다루는 구조는 지하철 계단이라는 공공공간을 점유하며 구걸하는 걸인의 하루벌이에 대한 탐구부터 작가에게 주어진 조건으로서의 전시장 같은 미술계 까지 범위가 다양하다. 걸인이 모은 동전부터 미술관의 벽에 이르기까지 구조를 이루는 사물들이 장기판의 말처럼 배열되면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으로 읽혀진다. 여기에서 구조는 중성적이지 않다. 인간은 구조의 산물이지만, 구조를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갑과 을이라는 권력관계가 아로새겨져 있다. 작가가 다양한 표피적 현상에 가려져 있는 추상적 구조를 다룬다함은 구조를 확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구조를 움직이는 규칙이 보다 분명해지는 과정은 구조와 규칙 자체를 상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사물의 가치는 어떻게 형성 되는가’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작품들은 사회에서 소(유)통될 수 있는 미술작품을 생산하는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드러난다.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진품 명품’에서 가짜로 판명, 판결된 것을 또 다른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가치의 문제와 필연적인 가격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될까. 자본주의 사회의 유일한 판관인 시장 원리는 ‘서로의 이기심에 의한 합의’(아담 스미스)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심리적인 것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무엇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은 궁극적으로 노동가치설을 비롯한 경제적이고도 인류학적 설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인에게 분명한 것은 예술적 가치가 결정되는 과정이 자의적이라는 점, 그것은 조야한 결정론으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지만 절망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현대미술이 사회에 필수적인 보편가치로 고양될 수 있다면, 규칙을 다루는 미술가들의 게임은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원호.[독일의 교민들과 지인들로부터 수건한 600여개의 수건에서 잘라낸 광고 문구], 2010년.

 

 

3. 박은하

     

작가가 ‘플라나리아 패턴’이라 이름 붙인, 종이에 마블링해서 생겨난 형상을 활용했던 박은하의 작품들은 굳어져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유출 또는 분출된 어떤 힘을 가시화함으로서 주목받았다. 은평 뉴타운 지역의 어지러운 재개발지 풍경이나 사람 얼굴이 오래된 밧줄 뭉치로 변해있는 괴기스러운 초상, 쩍 갈라진 대지가 깊이 상처 난 살 같은 느낌을 주는 요즘의 그림은 ‘박은하 표’로 이미 잘 알려진 그 패턴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열심히 그림만 그리던 작가가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 컬렉션을 섭렵하고 다녔던 짧지만 강렬했던 체험이 스스로 ‘동어 반복적’으로 느껴졌던 이전 회화와 단절하게 한 듯하지만, 인물이나 풍경 같은 평범한 광경에서 요동치는 사건을 길어내는 방식은 여전하다. [망가진 바다], [망가진 꽃밭] 등으로 붙여진 작품 제목은 변형에 내재된 파괴적 충동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실제로 망가지기도 했겠지만, 작가의 시선에 의해 더욱 극적인 장면으로 변모한다.

 

그것은 분단이나 재개발 같은 그자체로 민감하고 착잡한 소재를 치장, 또는 과장하는 문제는 아니다. 가령 박은하는 대학과제물 때문에 딱 한번 자화상을 그린 이후, 자화상을 그려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화상에 넘쳐나는 나르시시즘이나 그 과도한 존재감에 대한 거부감에서였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인 것이다. 진실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주변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허상처럼 다가오고, 그것이 허상인 한 유동적인 변화의 과정 중에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주체 역시 과정 중에 있다. 주체와 대상은 서로와의 관계 속에서 진동하고 공명한다. 그것이 바로 감각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끊임없이 카오스와 대결하는 사유를 말하며, 여기에서 ‘감각을 진동시키다-감각을 결합시키다-감각을 트이게 하거나 쪼개거나 비어내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것이 이전의 감각을 지속하면서도 갱신해 나가는 박은하의 새로운 예술적 개념이다.

 

박은하, [망가진 바다], 유화, 2013년

     

 

4. 손종준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잔뜩 날이 서있는 손종준의 작품은 그것이 부착되어질 유기체에 이물감을 준다. ‘절단들의 체계’(들뢰즈와 가타리)인 그 기계들은 유기체와 달리 조립되어 있고 차가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동물과 마찬가지로 기계라는 가설은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의사 라 메트리의 자동인형론부터 현대의 사이보그론과 ‘욕망하는 기계’에 까지 이르지만, 여전히 자연스럽게 수긍하기는 힘들다. 다만, 작가가 주목하듯이 현대사회가 근대로부터 비롯된 기계화 과정을 점차 완수하는 단계이고, 그렇기에 인간 스스로 기계와 접합하여, 또는 그자체가 기계가 되어 공(共)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는 냉혹한 생태 환경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괴상한 보철기구들이 강자들의 공격 무기라기보다는 약자들의 ‘방어수단’이자 ‘자위적 조치’라는 것도 특이하다. 그것은 선제공격이 가장 훌륭한 방어라는 전쟁 교범일까? 

 

아니면 두려움이 공격 본능을 야기한다는 심리학적 가설을 반영한 것일까? 자위적 조치를 위한 기구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물의 의태를 떠오르게 한다. 자연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과장된 의태적 장치들이 때로 멋지다는 것, 그리고 ‘멋진’ 사람—부품들이 잔뜩 들어있는 과학 상자에 몰두하던 소년은 군인이 되고 싶었다--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소망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손종준은 나중에야 미술가도 멋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신을 확장시키는 전능한 도구에 대한 욕망은 소년들에게 일반적이다. 예술 역시 자신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확장이 필요한 이유는 생산력의 증대 외에 현대인들이 자신에 대한 벽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약점이 많은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이런저런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상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손종준의 작품은 타자와 동일자를 막론하고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공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정신적 갑옷의 외화이다. 

 



     

출전; 고양 창작 스튜디오 전문가 방문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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