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카탈로그 서문(long version)_최용대_La forêt전〕
회색 숲에서 발원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 (2편)
김성호(미술평론가)
KIM Sung-Ho(Art critic)
V. 숲의 메타포: 허물기로서의 붓질과 '여백 아닌 여백'
최용대의 최근 작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앞에서 기술했던 작업 방식에 부가하는 일련의 몇 가지 작업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숲의 메타포’를 보여준다.
먼저, 그것은 아크릴 물감과 미디엄을 섞은 안료가 완전히 마르기 전에 실행하는 ‘허물기 작업’을 통해서 발현된다. ‘허물기 작업’이란 무엇인가? 그는 마른 붓으로 물감과 안료가 굳기 전에 나무의 형상과 반대되는 수평적 붓질을 반복함으로써 검은 안료로 그려진 나무의 형상을 해체한다. 나무가 배경 속으로 잠입하고 배경이 나무의 내부로 침투하는 이러한 물감층의 교접현상은 개별체로서의 각각의 나무를 ‘숲’이란 개념으로 묶어 주는 효과를 드러내기도 한다. 각기 떨어져 있던 나무들이 마른 붓질을 통해서 서로의 속살을 나눠주고 받음으로써 ‘숲’이라는 공동체적 양상을 비로소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이러한 그의 ‘허물기로서의 붓질’은 이전에 구축되었던 안개가 자욱한 듯한 효과, 혹은 바람이 부는 듯한 효과를 보다 더 선명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 달리 말해, 그의 이러한 ‘허물기 작업’은 선명하게 ‘보이는’ 나무를 해체하고 흐릿하게 만들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자, 거꾸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유추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 그것은 단순한 심상(心像)의 풍경일 것이며, 어떤 이에게 그것은 인간 세계에 대한 메타포일 것이며, 어떤 이에게 그것은 주체와 타자 혹은 주체와 대상에 대한 철학일 것이다. 그의 회색 숲으로부터 유추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은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그 어떤 것으로 명쾌하게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다방향성을 지닌 것들이리라. 그 뿐인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부터 ‘보이는 무엇’을 발견하는 사건도 관객에게 저마다 다르게 나타날 게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어떠한 범주 속에 있는 것들인지를 상상해볼 따름이다.
둘째로, 그의 작업에 있어 우리가 ‘허물기 작업’이라 부른 이러한 붓질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이고 즉발적인 붓질을 폭발하듯이 쏟아 부어야만 이러한 물감층의 교접 현상은 효과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할 만한 화면을 얻지 못할 경우, 그는 다시 화면을 지워내고 처음의 작업 과정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이러한 제작방식은 그의 작업을 매우 빠르게 성취시키기도 하지만, 역으로 매우 더디게 하거나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기(氣)를 담아내어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획(劃)을 이루는 것처럼, 그는 화면과 대면하는 자신의 즉발적 감수성을 폭풍과 같은 붓질에 실어 숲의 세계를 창출한다.
셋째로, 우리가 유념할 것은, 그의 작업에서 ‘숲의 구성요소가 아닌 무엇’이 개입함으로써 ‘숲’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는 역설에 관한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숲 속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나무, 풀, 곤충, 동물, 흙, 공기, 빛, 바람 같은 숲의 거주자들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숲에 거주하지 않는 무엇이다. 그것은 우리가 앞서 ‘사이 세계’의 개념을 성취하는 것으로 평가했던 ‘검은색(혹은 흰색)의 정방형(혹은 직방형) 캔버스’와 같은 속성의 무엇이다. 그것은 바로 화면 아래 자리한 흰 색의 '여백 아닌 여백'이다. 여백(餘白)이란 사전적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이다. 즉 행하기를 멈추고 남은 '비어 있음'의 공간이다. 우리는 최용대의 회화에서 아랫부분에 자리한 흰색의 공간이 무엇인가의 행위가 멈추고 남은 빈자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거기에 다시 흰색의 아크릴물감이 가득 채우고 있는 '충만함'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것을 '여백 아닌 여백'이라 부른다.
'비어 있음'과 '충만함'을 동시에 실천하는 이 공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던 '부재/존재'의 양면성이 동전처럼 맞붙어 있는 검정색에 대한 사유를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또한, 나무(자연)와 손(인간) 사이에 개입하는 검은 혹은 하얀 캔버스(의 이미지)를 떠올릴 필요도 있겠다. 부재/존재가 맞붙어있고, 대립항을 이어주고 단절된 이미지와 언어들을 재생하고 복원시키는 이 '여백 아닌 여백'의 공간은 그런 면에서 '사이 세계’이자 작가와 관객을 만나게 하는 ‘대화의 창’으로 기능한다.
유추해서 생각해 볼 것은 다음과 같다.
하단의 흰 공간은 마치 눈이 가득 덮인 들판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비워둔 동양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즉 '그리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 결과'를 이끌어내는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학처럼 말이다. 최용대의 회화에서 '여백 아닌 여백'도 동양화의 '여백'과 유사하게 자리한다. 다만 이 공간은 자유로운 필치가 가득한 상단의 공간과 칼(刀)처럼 마주하는 화면 구성으로 인해 공간과 공간을 날카롭게 분할하는 절(切)의 공간을 이룬다는 점에서 상이한 지점을 노정한다. 물론 양자의 공간이 흐릿하게 이어진 작품들도 있지만, 대개의 작품이 이러한 분절의 공간을 확연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모종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특히 하단의 흰 공간은 '그리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 결과'를 이끌어내는 동양화의 '여백'과는 상이하게 '그린 것'으로 '그려지지 않은 효과'를 이끌어내는 무엇이 된다.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흰색 아크릴물감을 거듭 쌓아올려 터럭만큼의 티끌도 용인하지 않는 순백의 매끈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공(空)의 공간으로 탈각시킨 이 하단의 흰색 공간은 따라서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함유하면서 회색의 숲이 자리한 상단의 공간으로부터 이격시킨다. 마치 기차를 타고 뒤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이들이 앉아있는 공간과 풍경의 공간이 이격되듯이 말이다. 이러한 이격의 공간을 메우는 것은 바라보는 이들이 앉아있는 공간이 만드는 여백이다. 따라서 이 '여백 아닌 여백'의 흰 공간은 관객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대화의 공간이자 그들 각자의 대답을 투영하는 티 없이 맑은 거울의 공간으로 해석된다. 관객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여기서 무리하게 규정짓지는 말자. 그것은 대개 쉬이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관객에게 각기 달리 보이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비움/채움', '부재/존재'와 같은 대립항들의 아이러니를 탐구하는 존재론적 미학에 기초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여백 아닌 여백의 공간', 그곳에서 최용대는 오늘도 '쉬이 보이지 않는 의미의 그물망'를 직조하고 있다. 더러는 빠르게, 더러는 느릿하게.
La Forêt 숲, 2012, Pigment, Acrylic on Canvas, 72.5X116.5Cm
La Forêt 숲, 2014, Pigment, Acrylic on Canvas, 89.5X145.5Cm.
La Forêt 숲, 2014, Pigment, Acrylic on Canvas, 52.8X72.5Cm
La Forêt 숲, 2013, Pigment, Acrylic on Canvas, 52.8X72.5Cm
La Forêt 숲, 2014, Pigment Acrylic on Canvas, 49.8X72.7Cm
La Forêt 숲, 2014, Pigment, Acrylic on Canvas, 52.8X72.5Cm
La Forêt 숲, 2012, Pigment, Acrylic on Canvas, 40X120Cm, 2 Pices
VI. 에필로그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라고 하는 화두로부터 출발한 최용대의 작품 세계는 줄곧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한다. 그것은 표현주의적 화풍으로부터 오늘날의 '숲(La forêt)' 시리즈라는 정제된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동일한 관심사였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그의 최근 작업의 특성을 '허물기로서의 붓질'과 '여백 아닌 여백'으로 규정했을 때, 그가 이것을 통해 구현하려고 했던 숲의 메타포란 결국 무엇인가? 그가 “하나의 작은 숲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17) 라며 토로한 바와 같이, 숲(자연)의 메타포는 우리의 인생(인간)이다. 거기에는 오늘날 인간으로부터 대상화된 자연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작가의 소박한 자연관이 자리한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공존을 도모하는 주체는 더 이상 인간에게만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객체로 간주되는 자연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우리가 귀 기울임으로써 가능해지기도 한다.
개인전 전경, 갤러리 그림손, 2012
최용대의 작업은 회색의 숲으로부터 발원하는 '들리지 않는 메시지'와 '보이지 않는 무엇'을 찾는 것에 집중한다. 자연의 목소리를 내 안에 육화(incarnation)된 채로 듣고 이해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앙상한 나무에 붕대를 감고 거울을 매단 설치작품(2004, 2010)을 통해서 자신 안에 육화된 자연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준 바 있다. 이제는 그의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와 그의 '여백 아닌 여백'이 요청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해 우리가 화답할 때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숲에 기대어 서서〉라는 제목의 두 시에서 보여주는 시구들은 우리의 논의를 위해 음미해 볼 만하다.
'네가 오리라 / 기다리던 길 어귀에 / 너는 오지 않고 / 나무들 사이로 / 어둠이 오고 있구나./ (중략) /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것이 / 사람인지 아니면 / 사람의 마음도 모르고 / 유유히 흐르는 저 달빛인지...' 18)
“네가 떠난 자리 / 눈발이 날리고 / 눈 쌓인 들판 위로 / 나목들이 장승처럼 서있다. / 네가 눈 날리는 숲에 있었는지 / 내가 눈 날리는 숲에 있었는지 / (후략)” 19)
상기의 두 시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의 소통이란, 더 이상 주체와 객체 사이의 소통이 아니며, 주체와 또 다른 주체 사이에서의 대화와 소통으로 정의된다. 이처럼 주체와 객체의 벽을 허물고 양자를 주체간의 만남으로 드러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사이 세계'에 대한 조형적 구상은 그의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전한 미덕이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이야기하는 그의 '여백 아닌 여백'은 이러한 수평적 주체들간의 상호작용을 위해 마련해 둔 넉넉한 공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제 30년 화업을 정리하면서 다음 작업을 찾아 나서는 작가 최용대의 새로운 프롤로그가 이와 같은 미학적 바탕 위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개해 나갈지 자못 기대된다. ●
1) 최용대, 「작가노트」, 『CHOI YONG-DAE』, 3회 개인전 카탈로그, 조선화랑, 1999, 쪽수 없음.
2)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La forêt』, 12회 개인전 카탈로그, 갤러리 그림손, 2010, 쪽수 없음.
3) 최용대, 「비둘기와 그림자, 주체와 타자 사이에서의 글쓰기」, 심언주의 시(詩) ‘프리즘’에 대한 평, 『詩眼』, 겨울호, 2005.
4) 여기서는 작가 최용대의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자신의 작품세계를 정초하기 위한 전개기로 규정하고 평가를 후일로 유보한다.
5) 최용대 1회 개인전, (1992. 11. 7~11. 15, 태백화랑), 2회 개인전, (1992, 관훈미술관)
6) 최용대 3회 개인전 (1999. 6. 1~6. 10, 조선화랑), 4회 개인전, (1999, 맥향화랑)
7) 최용대, 「시인(詩人)의 침묵(沈黙)」, 『CHOI YONG-DAE』, 1회 개인전 카탈로그, 태백화랑, 1992, 쪽수 없음.
8) Ibid.
9)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La forêt』, 12회 개인전 카탈로그, 갤러리 그림손, 2010, 쪽수 없음.
10) 최용대 5회 개인전 (2000. 1. 15~3. 19, La Nacelle, centre culturel d’aubergenville, 프랑스),
11)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La forêt』, 12회 개인전 카탈로그, 갤러리 그림손, 2010, 쪽수 없음.
12) 최용대, 〈La forêt〉, 나무, 거울, 천, 철, 290x230cm, 2010.
13)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Ibid.
14)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Ibid.
15) 최용대, 「삶과 죽음 사이의 언어-숲」, ibid.
16) 최용대 13회 개인전 (2012. 3. 28~4. 10, 갤러리 그림손),
17) 최용대, 「무제」, 2011,『La forêt-Choi, Yongdae』, 13회 개인전 카탈로그, 갤러리 그림손, 2012, 쪽수 없음.
18) Ibid.
19)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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