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시장을 키우고 싶은가? 그러면 초등학생부터 공략하라
조윤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 문화 예술시장을 키우고 싶은가? 그러면 초등학생부터 공략하라
일본의 국민 캐릭터, 헬로 키티. 내가 어릴 때에는 아이들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에 헬로 키티를 이용한 제품이 나왔었다. 같은 종류라도 헬로 키티가 붙어 있으면 훨씬 값이 비쌌다. 그런데 변호사를 하던 어느날, 나는 지적재산권 관련 일로 회의실에서 의뢰인이 건넨 헬로 키티 카탈로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학용품문구류와 팬시 용품의 차원을 훨씬 넘어 백화점 카탈로그같이 다양한 제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성이 고를만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세탁기, 헬로 키티 도형부분은 흰 색으로 구워지지 않는 토스터, 커피 포트, 커피잔 세트, 심지어는 다이어몬드가 박힌 고가의 시계나 장신구에 이르기 까지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제품들이었다.
의뢰인의 설명은 간단했다. 헬로 키티 캐릭터의 인기가 수십 년 계속되다보니, 어릴 때 헬로 키티를 가까이 하며 자란 아이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성인이 된 여성 소비자들이 필요로하는 제품에 헬로 키티를 붙이기 시작해서 급기야 헬로 키티 토스터, 식기는 물론 프라이팬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헬로 키티 매니아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또 다시 헬로 키티를 사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헬로키티가 그렇게 캐틱터 산업의 대명사로 장수를 하는 데에는 바로 이런 사연이 있었다.
내가 고시공부를 할 때에는 아래 위로 많은 선후배 친구들과 공부를 했다. 늘 여나무명이 공부를 하니 밥도 항상 같이 먹으러 다녔다. 그런데 맨 아래 후배부터 맨 위 선배까지 같은 식당에 가려하니 종종 의견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매주 수요일 점심으로 정한 ‘별미의 날’ 어느 식당을 갈 지를 두고는 특히 그랬다. 나보다 불과 두 세살 어린 후배들은 버거킹이나 맥도날드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나보다 겨우 두 세 살 많은 선배들은 햄버거는 끼니가 안 된다며 다른 곳으로 가자 했다. 그 5-6년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식성이 다르다니. 그 가운데 딱 중간이었던 나는 햄버거가 끼니가 되는 편에 속했다. 왜냐하면 내가 중학교 3학년 되던 1979년부터 소공동에 롯데 백화점 1번가와 신반포에 뉴코아 백화점이 생기면서 롯데리아라는 토종 패스트푸드체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만나는 장소였던 롯데리아엘 드나들면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었던 덕에 나는 햄버거가 끼니가 될 수 있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도둑질도 해본 사람이 하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할 수 있듯, 문화 예술도 즐겨보았던 사람들만이 공연장, 전시장을 찾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가만 나둬서는 키우기가 어렵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해야 하는 장르의 예술의 경우,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습관을 길러 줄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무척 시급하다.
일본에는 캐츠 공연 7천회, 라이온 킹 6천회 등, 일본 내 장기 공연 순위의 1위에서 4위까지를 싹쓸이 하며 뮤지컬 시장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시키(四季)라는 극단이 있다. 1953년에 설립된 이 극단은 1964년부터 초등학교 학생들을 초청하기 시작했다. 시작하던 해에 무려 10만명이 넘는 아이들을 초청했고, 1971년부터는 일본 전역의 11개 도시에서 총 300만명의 아이들을 초청해 뮤지컬구경을 시켜주었다. 극단이나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절대 아니며, 교육위원회같은 교육 행정 관청과 협의하여 체계적으로 공연 초청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들은 미래의 뮤지컬 시장의 소비자를 키운다는 생각으로 이런 운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곧 나타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도 이런 정책은 수도 없이 시행되고 있다. ‘투쉬 베를린’이라는 연극 극장과 학교 교육을 접목한 정책이 시작된 1998년에까지도 독일에서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한교에서 연극 교육을 한다는 것이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한다. 이 연계 수업은 아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고, 학교 생활의 소중함을 깨우쳐 주게까지 되었다. 처음에는 불과 12개 학교와 극장이 시작했던 것이 10년을 지나면서 82개 학교까지 확대되었고 3만명의 학생들이 가입되어 있다. 이제는 독일 학교법에 초등학교 교사들은 연극 활동도 가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프로젝트가 청소년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은 물론, 연극을 가까이 해 버릇한 아이들이 자라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향할 수 있는 길까지 터주게 되는 것이다.
작년 11월 대정부 질문에서 나는 문화 예술을 비롯한 창조산업의 시장을 확대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문화 교육과 문화 복지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우리나라 재정 지출의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교육 예산과 복지 예산에 문화 예술을 접목시킬때, 문화 예술의 시장 확대는 물론, 복지를 통해서는 현재의 삶의 질을, 교육을 통해서는 장래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문화 예술 시장을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초등학생들을 공략할 일이다.
-아츠앤컬처 2011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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