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등장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미술 개념은 18세기에 이르면 둘로 분화한다. 순수미술(fine art)과 응용미술(applied art)이 그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오늘날 의미에서의 순수미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문학(liberal arts)의 일종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의 그림을 가리켜 “시각적으로 표현된 논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고급한 정신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이 중요했고, 그런 점에서 저급한 육체노동의 산물(vulgar art)인 중세미술과는 달랐다. 역시 그런 점에서 르네상스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감성적 측면이 아니라 지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18세기에 이르면 ‘순수예술(pure art)’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이제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것은 지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감성적인가 아닌가에 있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서 미술 역시 순수미술과 비(非)순수미술(응용미술)로 구분되었다. 칸트 미학이 잘 보여주는 것처럼, 순수미술은 어떠한 현실적 이해관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아름다움 그 자체만의 표현이었으며,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응용미술은 순수하지 않은, 반쯤만 미술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응용미술은 실용미술(useful art), 장식미술(decorative art) 등으로도 불렸다. 당연히 순수미술은 우월하고 응용미술은 열등한 것이라는 차별적 관념이 생겨났다. 고급미술(high art)과 저급미술(low art, lesser art)이라는 구분은 그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The Arts & Crafts Movement)’의 정신을 계승한 20세기의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은 19세기의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조형예술의 평등을 추구했고,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는 그 정점이었다. 이제 응용미술, 즉 디자인은 순수미술보다 열등한 분야가 아니라 회화, 조각과 나란한 근대 조형예술의 일원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09년 개관한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 ⓒ wikimedia

2027년 세종시에 설립될 예정인 국립디자인박물관 조감도 ⓒ 국립박물관단지
디자인박물관의 탄생
“오늘은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날이다.”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 개막식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엑스포라고 불리는 박람회의 원조는 프랑스였지만, 이를 국제적인 규모로 개최한 것은 영국이 처음이었다. 25개국에서 1만 3,000점의 전시물이 출품되어 164일간 열린 박람회는 대성공이었다.
박람회는 요즘 말로 하면 ‘디자인 전쟁’의 장이기도 했다. 박람회장인 수정궁(Crystal palace)은 최초의 유리 조립식 건물로서 건축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전이며, 출품된 전시물들은 산업과 기술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측면에서도 관심과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박람회는 최초의 산업국가 영국이 국위를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개최한 것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산업 생산품의 조형언어는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시대는 공예로부터 디자인으로의 전환기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취향(taste)과 양식(style) 논쟁이 벌어졌다.
박람회가 끝나고 주요 출품작들을 소장하기 위해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최초의 공예박물관이자 디자인박물관이다. 이후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도 잇따라 공예박물관 또는 장식미술관이 설립되었다. 이처럼 서구 근대에서 산업과 예술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역동적으로 전개되었다.
한국에서는 2027년 세종시에 국립디자인박물관이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추진 상황은 모르겠지만, 국립디자인박물관이 한국의 빅토리아앤알버트박물관으로서 한국 근대 조형예술의 새로운 장(章)을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