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추상미술의 태동, 주경
고충환 | 미술평론가
한국의 현대미술은 크게 1950년대 앵포르멜 경향의 회화, 1960년대 아방가르드 경향의 실험미술, 1970년대 단색화 경향의 회화, 1980년대 민중미술 경향의 형상미술(단순한 구상과는 구별되는, 현실 참여미술)로 구분된다. 그중 앵포르멜 경향의 회화와 단색화 경향의 회화가 형식적으로 추상미술을 표방하면서 이전의 아카데미 풍의 재현적인 회화와는 다른 평면 회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세기 초 우리보다 먼저 추상미술이 태동한 유럽에서도 그렇지만, 추상미술의 등장은 재현 위주의 평면 회화의 생리며 판도를 바꿔놓은 미술사적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1950년대 앵포르멜 경향의 회화를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로 봐도 좋은가. 그 전조는 없는가. 그 전조에 해당하는 화가가 일본 유학 후 귀국한 1930년대 처음으로 추상미술을 시도한 이후 일관된 자기 형식을 일구면서 현재에 이른 김환기와 유영국이다. 그러므로 김환기와 유영국, 두 화가야말로 한국추상미술의 실질적인 선구라고 해도 좋다. 그렇게 한국추상미술의 선구는 1930년대로 소급되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에 1930년대 이전에 이미 추상미술이 시도되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1923년 주경이 그린 <파란>이 그것으로, 더욱이 당시 화가의 나이는 불과 18세에 불과해 실제 작품 제작연도 추정에 의구심이 제기된 것이다(이구열). 더욱이 작가는 이후 몇 차례 시도해 본 추상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화력을 자연주의풍의 사실적인 그림으로 일관한 것도 의구심을 더했다. 이러한 의구심 때문일까. 우여곡절 끝에 작가 주경이 국내 최초로 추상회화를 시도한 것은 맞지만 이후 지속성과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는 만큼, 한국추상미술의 진정한 선구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작품 <파란>(波瀾)은 어떤 그림인가. 우선 작품이 알려진 배경을 보면, 주경은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에 자신의 그림 총 5점을 출품하는데, 그중 구상 2점과 비구상 2점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다. 구상 작품은 각 1926년 작 <정물>과 <마도로스파이프가 있는 정물>이며, 비구상 2점이 1923년 작 <파란>과 1930년 작 <생존>이다. 그리고 연이은 1974년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는데(서울 예술진흥원 미술회관), 이 전시에서도 역시 작가의 다른 구상 작품과 함께, 문제의 작품 <파란>과 <생존>이 소개 전시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립현대미술관이 작가의 문제작을 소장하게 되면서 작가 주경이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대외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다.
그림을 보면, 직선과 곡선이 불규칙하게 교차하는 폐허의 잔해 위로, 한 줄기 칼날처럼 드리워진 빛의 세례가 역동적인, 그리고 여기에 어쩌면 암울하고 불안정하고 이율배반적인 분위기가 한눈에도 추상적인 내적 에너지(파토스)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분출에 천착한, 1909년 미래주의 선언과 함께 태동한 이탈리아 미래파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제목 그대로라면, 폭풍에 휩쓸려 난파된 선체를 추상화로 그린 그림이다(김인환). 일제강점기 당시의 암울한 시대 감정을 난파된 배에 빗대 그린 그림인가. 그런데, 정작 작가는 다만 집안의 파란을 충동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했다. 추상이니 전위니 하는 현대미술 개념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의식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이구열, 작가와의 인터뷰). 비록 1921년부터 일본 유학파인 고희동을, 1923년부터는 막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이종우를 사사하긴 했지만, 당시 작가는 주로 인체를 소재로 한 연필 소묘에 진력하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고 그림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출현은 전적으로 우연의 소산인가. 아니면, 때 이른 출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좀 더 실증적인 다른 환경적 요인은 없었는가. 1920년대 당시 부친은 다른 사업과 함께 서점을 경영하고 있어서 작가는 일본에서 간행된 미술 잡지를 구독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서양 현대미술에 대한 동시대적 경향을 잡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1920년 7월 7일 자 동아일보에는 변영로가 시론 <동양화론>을 투고해, 새로운 시대정신이 반영된 새로운 표현 방법의 동양화-조선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근대 서양의 미래파 화가들은 동작을 그리기 위하여, 가령 남이나 여가 공원에 산보하는 것을 그릴 때, 그들의 팔과 다리를 무수히 그린다고 한다(아마도, 동시성의 표현). 하여간 동작을 표현하는 신화법을 주출하지(떠내지) 아니하여서는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이외에도 1920년 7월 20일 자 동아일보에 김찬영이 기고한 <서양화의 계통적 가치>라는 글을 통해서, 1922년 잡지 <개벽> 10월호에 임노월이 기고한 <최근의 예술운동(유럽)-표현화(칸딘스키 화론)와 악마파(아마도, 보들레르의 데카당스)>라는 글을 통해서, 1922년 <신민공론> 신년호에 노자영이 기고한 <미래파의 예술>이라는 글을 통해서 미래파가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노자영은 기고한 글에서 “미래파에게는 혼탁과 동란이 가장 적절한 그들의 제목이었다...마음의 상태를 기리는 회화라야 한다”고 적고 있어서, 내면의 격정과 파토스를 표현하는 새로운 화법의 창출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1920년에는 일본에서 <미래파미술협회>가 창립해 각 동경과 오사카에서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작가는 1928년 일본 유학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접하고 있었고, 이로부터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림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이경성은 이 그림에 대해 입체파와 표현파 그리고 구성주의가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서, 국내에서 서구 미술의 도입기라 할 수 있는 1920년대에 이미 이런 추상회화가 등장한 것에 대해 한국 근대미술사의 일대 사건으로 평가한다. 최순우 역시 이 그림을 두고 당시로서는 몹시 새로운,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하면서, 주경이야말로 한국화단의 근대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모더니스트의 한 전형이라고 평가한다.
이경성과 최순우의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는 윤범모의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평가와 비교된다. 윤범모는 이 그림에 대해 본격적인 추상미술 운동의 일환으로서 제작된 것이라기보다는 내적필연성을 결여한, 작가의 사적 세계를 표출한 경우로 평가한다. 윤범모의 이러한 평가는 이 그림이 일관된 의식하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 <계간미술> 필자들의 견해와도 일치한다(1979년 10호). 여기서 필자들은 이 그림이 추상회화를 의식하고 그려진 것이기보다는 사사로운 심경을 그림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는데, 이는 그때까지 추상화를 본 일이 없다고 한 작가의 고백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작가의 이러한 고백은 이 그림이 새로운 사조를 나름으로 베껴본 것이라는 계간미술 필자들의 견해를 일축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그러나 추상회화에 대한 일관된 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는, 이러한 견해가 한국 근대미술사에 있어서 이 그림이 갖는 위치(위상)를 흔들어 놓지는 못한다. 사사로운 내적 경험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 되었든, 여하한 경우에도 그림을 추상적인 기법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작가가 이미 당시에 특정의 화법에 구속받지 않은 자유로운 회화적 발상이 가능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가는 <파란> 이외에도 <생존>(1930), <격조>(格調, 1932), <경음악>(1959,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나의 앞길>(1974), <기구>(祈求, 1974), <겨울은 나를 보고 있다>(1974)와 같은 일련의 추상회화 작품을 남긴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 가운데 작품 <생존>은 작가가 일본의 미술학교에 유학하던 시기에 제작된 그림이다. 참고로 작가는 1928년 동경의 천단화(川端畵) 학교에 입학, 1936년 동경제국미술학교(현재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전신)를 거쳐, 1942년 14년간의 일본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대구에 정착한다.
평론가 이경성은 이 그림이 비형상 계열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대담한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앵포르멜 회화의 전조로 평가한다. 미처 앵포르멜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온 작품으로, 앵포르멜의 대표작가이자 선구자인 볼스를 연상시킨다고도 했다. 참고로 앵포르멜은 유럽 전후에 해당하는 1940년대 이후 피폐해진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태동한 비정형의 추상회화 경향으로, 앙드레 브르통과 함께 초현실주의의 한 분파를 이끈 조르주 바타이유가 주창한 무정형의 개념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앵포르멜이 태동한 유럽에서마저 이전에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미증유의 회화 경향을 선취한 것이 놀랍다. 보기에 따라서 미래파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 <파란>과는 또 다른 주목과 연구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품 <경음악>은 제목 그대로 소리를, 음악을 추상적이고 회화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이다. 각기 다른 질감의 소리가, 음색이, 음률이, 음질이 서로 어우러져 합주 되고 협주 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연상작용을 매개로 시각과 청각처럼 서로 다른 감각이 하나로 통한다고 본 칸딘스키의 공감각 개념에도 부합하는 그림이다. 칸딘스키와 폴 클레와 같은, 평소 그림과 함께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화가들과 함께, 1912년 오르피즘(큐비즘의 한 분파로, 고대 그리스의 음악 신 오르페우스에서 유래한)을 창시한 로베르 들로네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참고로 전통 미학에서는 음악을 수학과 그 격을 같이 하는, 가장 추상적인 예술로 보기도 했다. 여기에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알려진 소리예술 혹은 소리조각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이한 점으로는 <나의 앞길>, <기구>(祈求), <겨울은 나를 보고 있다>와 같은 일련의 추상회화 작품들이 1974년 한 해에 집중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혹 그 해(작가의 개인전이 열린)에 신상이나 심경에 무슨 변화라도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이로써 작가가 추상회화에 대한 일관성과 지속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에는 일정한 어려움이 따른다는 생각이다. 그림을 보면, 불안정하고 역동적인 기운이 감도는 작품 <파란>과도, 내적 파토스를 응축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의 작품 <생존>과도 사뭇 다른, 유기적이고, 부드럽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그림이다. 형식논리에 천착한, 모더니즘 패러다임에 연유한 순수추상으로서보다는, 서사적인 제목이 암시하듯 자기반성적인 경향을 심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작가 주경은 대부분의 화력을 자연주의 화풍의 사실적인 그림에 진력했지만, 그 와중에 그가 남긴 추상회화가 한국 근대미술사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져놓고 있다. 1923년 작가가 18세 때 그린 그림 <파란>이 한국 최초의 추상회화란 점이 그렇고, 1930년에 그린 작품 <생존>이 1950년대 국내를 넘어 1940년대 앵포르멜이 태동한 유럽보다도 빠른 선취를 보여주고 있는 점이 그렇고, 1959년에 그린 그림 <경음악>에서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 시각과 청각과 같은, 서로 다른 감각이 하나로 통한다는, 공감각을 실현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몇 안 되는 추상회화지만,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일관성과 지속성의 결여를 지적하고는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추상이니 전위니 하는 개념을 의식하고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작가의 천부적인 발상이 자기를 실현한 경우라고도 생각해 본다. 개념 규정과 헤게모니가 아니라면, 추상에는 사전에 정해진 길도 없고 답도 없다고도 생각해 본다. 다만, 자유 영혼을 위한 열린 공간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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