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인상주의
2. 표현주의(1),(2)
3. 자연주의, 사실주의, 신사실주의
4. 절대주의와 추상회화
5. 입체파
6. 미래파
7. 초현실주의
8. 다다이즘
9. 팝아트
10. 아방가르드, 트랜스아방가르드
11. 신구상주의와 자유구상
12. 개념미술
13. 미니멀리즘
14. 설치미술
15. 행위미술,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
1. 인상주의 - 빛과 색채의 향연우리는 사람의 인상이 변하는 것에 대해 흔히 얘기 한다. 일테면 그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했는데 후에는 그렇지 않더라는 식으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는 격언도 있다. 이처럼 사물의 본질은 쉽사리 알기도 어려울 뿐더러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사물의 인상은 그것이 처한 상황과 사정에 따라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감각적인 것이다.
이렇듯이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물의 불변한 본질보다는 변화무상한 인상을 그린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인상을 변하게 하는 주범으로 ‘빛’을 꼽는다. 그들은 사물이 고정된 고유색(자연색)을 가진다는 사실에 대해 의의를 제기한다. 사물의 고유색(자연색)은 사실 무수한 빛의 색점들이 사물의 표면에서 혼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따라서 빛의 밝기와 기울기가 변화함에 따라 사물의 색채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더불어 빛의 파장이 고정된 것이 아니듯 사물의 색채 역시 유동적인 것으로 본다. 그리고 빛의 광점에는 무채색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파렛트로부터 검은색과 흰색을 추방한다. 무채색의 사용이 불가피할 때에는, 예컨대 음영을 처리할 때에는 원색을 혼합한 색점들로 그것을 대신한다. 이러한 빛의 성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충실히 실천에 옮긴 화가로 클로드 모네를 들 수 있다. 그의 「루앙성당」과 「건초더미」, 말년의 「수련」연작은 빛의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의 색채를 표현하기 위해 동일한 모델이 각기 색채를 달리하며 수 점씩 반복해서 그려졌다.
한편 빛의 광점들이 사물의 색채는 물론 그것의 형태마저도 결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등 빛에 대한 인상주의의 관념을 보다 철저하게 실천한 예를 신인상주의 화가인 쇠라와 시냑의 점묘화법에서 엿볼 수 있다. 쇠라의 「그랑자드의 휴일」과 「멱감는 사람들」에서는 사물의 모든 윤곽선이(아우트라인이) 선으로 표현되는 대신 철저하게 색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점묘화법이란 점묘법 혹은 분할주의라고도 하며, 말 그대로 모든 형태를 점으로 묘사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인상주의는 고흐와 고갱, 세잔느 등의 후기인상주의로 이어지는 것이 통설이지만, 인상주의와의 차별성이 현저해짐에 따라 현재에는 이들을 관련짓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이 인상주의로부터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입고 있음은 사실이다. 흔히 이들 세 사람은 현대미술과 관련해 의미있는 장을 연 화가로 간주된다. 고흐는 빛의 색점과 파장이 표현하는 운동성을 극대화하고 내면화함으로써 표현주의의 장을 열었다. 고갱은 색점을 색면으로 극대화시킴으로써 색면주의 화파의 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 두 화가에 비해 세잔느는 현대미술과 관련해 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흔히 세잔느는 입체파의 등장을 예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보다 더 결정적인 사실은 사물의 불변적인 본질을 추출하려 한 점이다. 그리고 회화의 자율성을 인식한 점이다. 사물의 불변적인 본질을 추출하려는 세잔느의 생각은 인상주의의 변화무상한 인상 표현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2. 표현주의(1) - 인간 내면의 비극적 세계관의 표현독일의 미술사학자인 빌헬름 보링거는 자연조건이 비교적 우호적인 남부유럽 라틴계열 민족의 미술양식과 자연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북유럽 게르만계열 민족의 미술양식이 근본적으로 서로 상이하다고 보았다. 쉽사리 사물과의 감정이입을 경험할 수 있는 라틴계 화가들은 긍정적인 자연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물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는 자연주의적 미술양식을 발전시켰다. 이에 반해 북유럽 화가들은 비극적인 세계관과 비우호적인 자연의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경외감과 불안감을 바탕으로 사물의 외형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일정정도 왜곡시켜 표현하거나 아예 아무런 이미지도 재현하지 않는 추상주의적 회화양식을 발전시켰다. 이렇듯이 서로 다른 자연조건을 미술양식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링거는 간주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북유럽인의 비극적인 세계관과 자연관은 표현주의 화가들의 관념에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표현주의 미술의 진정한 기원은 세기말 이전 중세 북유럽 고딕양식에서 이미 그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지역적으로 역시 북유럽에 속하는 엘 그레코와 그륀네발트 두 화가에게로 소급된다. 특히 이들 양식을 특징짓는 사물의 외형을 왜곡시키는 태도는 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과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표현주의 양식이 근자의 신표현주의와 그룹 「코브라」에 이르기까지 특히 독일어 권을 중심으로 강한 지역성을 띠며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점을 결코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표현주의는 세기말의 불안한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실제로 일각에서는 특정 시기와 무관하게 불안정한 형국이 지속될 때는 언제든지 표현주의 양식이 등장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표현주의는 사물의 외형을 보여지는 대로 그린다기보다는 느껴지는 대로 그린다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시지각적 묘사 혹은 재현이기보다는 사물에 대한 작가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표현하는 태도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이 여타의 양식에 비해 작가 개인의 세계관 혹은 자연관이 보다 충실히 반영되고 있으며, 정신병리학적인, 심리학적인 분석과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다.
표현주의의 특징은 사물의 외형에 대한 왜곡과 강한 원색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이때 왜곡이든 원색이든 이들은 하나같이 작가의 주관적인 심경을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사물의 외형과 색채의 사용이 자의적으로 해석된다. 심할 경우에는 사물 본래의 모습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기도 한다. 이 말은 특히 색채의 경우, 사물의 고유색 혹은 자연색과 무관하게 색채가 느낌의 상징태로 기능함을 의미한다. 예컨대 빨간색은 열정과 불안을, 초록색은 광기를, 검은색은 속박과 암울함과 죽음을, 파란색은 금욕과 절제를, 흰색은 순수 혹은 순결을, 보라색은 불건전함과 정신적인 질병을 각각 상징한다. 따라서 이러한 색채들이 작가의 주관적인 심경 변화에 따라 사물 본래의 자연색을 무시하고 마구 쓰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본웅의 그림 「여인」은 육체의 감옥(검은색의 아우트라인)에 갇힌 작가 개인의 고뇌를, 혹은 모델의 열정과 불안(빨간색)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이 그림이 그려진 1930년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황과도 일치하고 있다.
* 그룹 「코브라」;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텔담 세 도시를 지역적으로 묶는 그룹 차원의 미술운동. 카렐 아펠과 알레친스키가 대표적인 화가임.
2. 표현주의(2) 표현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하나는 미술사 속에 등장하는 특정 시기의 특정 양식을 지시하는 표현주의를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굳이 미술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심경에 담고 있는 바를 외부로 드러내거나 객관화하는 과정 자체를 ‘00를 표현한다’는 말로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어휘의 포괄적인 사용은 표현주의 미술의 다양한 형태의 등장을 근본적으로 가능케 했다. 한마디로 일반적인 어휘가 미술 속의 특정 장르를 지시하기 위해 채택되고 한정된 것이다.
표현주의 미술의 양식적 특징은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형태의 왜곡과 자의적인 색채의 사용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예의 최초의 등장은 세기말을 전후한 유럽 대륙 전역에 걸쳐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야수파에서 살필 수 있다. 그 이전에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 격인 두 화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상파와 관련한 반 고흐와 에드바르트 뭉크가 그들이다.
반 고흐는 철저하게 자의적인 의미로 색채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격렬한 붓 놀림을 보여줌으로써 표현주의 미술의 본격적인 등장을 예비하고 있다.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로서의 반 고흐의 기질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된다. 즉 화가는 “인간의 끔찍한 정념을 표현하는 (내지르는 듯한) 고함을 강한 원색으로 강조한다”고 적고 있다.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태생인 에드바르트 뭉크는 북유럽 특유의 습한 기후로부터 우울한 기질을 이어받고 있으며, 세기말의 정서를 불안감의 파토스(비극적인 열정)로 표현함으로써 표현주의 화가들의 진정한 스승으로 간주되고 있다.
독일 표현주의 미술은 1905년에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최초로 결성된 다리파(디 브뤼케)와 1911년에 역시 독일의 뮌헨에서 결성된 청기사파(디 블라우라이터)로 대표된다. 다리파에서 다리의 의미는 도래할 새 시대와 구 시대를 잇는다는 뜻으로서, 니체의 아포리즘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그룹명에서 아방가르드 특유의 혁명적인 전언이 느껴진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와 에리히 헥켈, 그리고 에밀 놀데 등이 있다.
그룹 청기사에서 청기사의 의미는 청색이 가지는 상징성, 즉 도래할 미래를 예비하는 유토피아니즘적인 의미와 그 미래를 개척하는 선구자로서의 기사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주된 화가로는 칸딘스키와 폴 클레 등이 있으며, 그 성격은 엄밀하게 말해 표현주의적이기보다는 본격적인 추상적 형식 이전의 예비단계에 가깝다. 그룹 청기사파는 이후 유명한 바우하우스를 통해 현대적 의미의 미술교육 개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한다.
1899년 마티스에 의해 시작된 프랑스 야수파는 이후 블라맹크와 드랭 등의 화가를 포함한다. 야수파의 표현주의적 성격은 마티스 자신의 다음과 같은 전언에 반영되고 있다. 즉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표현이다. 색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표현을 도와주는 것이다.” 야수파라는 명칭 자체는 특히 소박파 혹은 프리미티비즘 아트(원시미술)로 분류되는 두아니에 루소의 그림을 거의 직접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프랑스 야수파는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 비해 특정 운동으로서의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아마도 운동에 참여한 화가들의 경향이 공통된 성격보다는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진 탓일 것이다.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야수파 이외에 표현주의적 경향성을 강하게 띤 동시대 화가들로는 벨기에의 제임스 앙소르와 프랑스의 조르쥬 루오와 카임 수틴,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코코슈카 등을 들 수 있다. 앙소르는 카니발 행렬에서 흔히 사용되는 해골 가면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잔혹성과 비열함을 들추어내고 있다. 루오는 창녀들을 정신을 결여한 비겟덩어리로 냉담하게 표현해냄으로써 인간성 상실의(정확하게는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의) 고발과 함께 종교적인 경외감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푸줏간에 걸린 고깃 덩어리를 묘사하고 있는 수틴의 그림은 해체된 인체를 연상시켜 섬뜩한 느낌을 준다. 그의 그림에서 고깃 덩어리와 인체는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이후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코코슈카의 그림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성행한 학문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학문적 분위기란 다름아닌 프로이드에 의해 세상에 처음으로 고개를 내밀게 된 정신분석학 혹은 정신병리학 등의 심리학의 본격적인 등장을 말한다. 모델의 내면에 숨겨진 심리를 포착해내려는 코코슈카의 태도에서 당시 학문적 성과의 반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표현주의 화가들은 특히 인간과 인간이 놓여진 상황으로서의 사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자연주의, 사실주의, 신사실주의 - 객관적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과 실천적인 참여
일반적으로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에는 반드시 그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상에 대한 화가의 태도가 그의 회화세계로 표현된다. 화가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해서 그릴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을 그릴 수도 있다. 한편 대상은 실재하는 유형의 것일 수도 있으며, 실재하지 않는 무형의 관념 혹은 상징 혹은 상상력 혹은 무의식이 될 수도 있다. 특정한 대상을 다루고 있지 않은 듯이 보이는 추상회화조차 사실은 화면 내에서의 조화, 리듬, 긴장, 역동성 등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화가가 무엇을 표현하느냐에 따른 유형, 무형의 일체의 것이 대상이 된다. 이렇듯이 대상에 대한 화가들의 태도와, 무엇을 대상으로 간주하느냐에 대한 화가들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가능하다.
미술사 속에는 이렇듯이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회화세계를 만날 수 있지만, 그 중심축을 형성해온 것은 아무래도 다음과 같은 태도일 것이다. 즉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유형의 자연을 대상으로, 그 자연의 외관을 충실히 재현, 모사한 그림을 말한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근본적으로 이러한 태도와 관련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굳이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다룰 당위성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종래의 단순한 재현적 회화로만 그 의미를 제한한다면, 그로부터 현대적 현상으로 불리울 만한 어떠한 특이성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들 미술운동이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 당당한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진정한 자연 혹은 사실로 간주하느냐에 대한 관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데 기인한다.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는 원래 미술보다는 문학을 중심으로 한 현상이었다. 19세기에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 경험주의, 기능주의, 계몽주의 철학에 근거한 자연주의 미술은 세기말에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그 당위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후 자연주의란 말은 기법적으로 대상의 외관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렇듯이 자연주의 미술이 원래의 의미가 크게 퇴색된 것에 반해, 사실주의 미술은 기법적인 측면보다는 관념적인 측면을, 즉 무엇을 진정한 사실 혹은 현실로 간주할 수 있느냐에 따른 논쟁을 발전시킴으로써 항구적으로 유효한 개념이 되고 있다. 특히 사실주의 미술이 내재하는 비판적 기능성은 이러한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사실주의는 다르게는 리얼리즘 혹은 현실주의로도 불린다. 물론 리얼리즘이란 말은 사실주의의 역어(譯語)이긴 하지만, 거의 독자적인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주의 미술은 크게 19세기 구스타브 쿠르베의 “철저하게 본 것만 그린다”는 교시를 중심으로 한 양식, 도미에의 시니컬한 풍자, 1920년대의 독일 표현주의 좌파로부터 발전한 신즉물주의, 1912년 혁명 이후의 멕시코 벽화운동, 10월 혁명 후 구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등으로 대변된다. 이들 예로부터 간취되는 사실주의 미술 개념은 하나같이 객관적 현실의 충실한 재현 이상의, 예술가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요구하는 윤리성 혹은 동시대적 당위성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1950-6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팝아트와 1960년대 초 프랑스의 신사실주의 등을 들 수 있다. 팝아트는 진정성을 결여한 이미지를 실제하는 참 현실로 간주함으로써 인스턴트적이고 일회적인 유행 감각, 대중문화, 스타쉽 등을 즐겨 소재로 다룬다. 한편 신사실주의 미술은 대량생산된 공산품 체제를 동시대의 진정한 현실 혹은 자연으로 간주하고, 폐기처분된 공산품을 재현하는 대신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리얼리즘의 반대는 허위주의”라는 레비스의 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말은 사실주의 미술이 단순히 기법적인 측면 이상의, 화가의 진실된 현실 인식을 요구하는 실천적 개념임을 말해준다.
4. 절대주의 회화와 추상미술 -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한 내재율의 회화현대미술에서 추상회화의 등장은 바질리 칸딘스키라는 한 천재적인 화가의 이름과 연관된다. 그에 의해 시도된 최초의 추상회화는 1910년으로 소급된다. 추상회화의 의미에 대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화가와 관련한 두 일화가 전해 오고 있다. 즉 칸딘스키가 본격적으로 화가로 전향하기 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인상파전을 보고 받은 느낌과, 뒤집혀진 그림에 대한 1909년경의 경험이 그것이다. 칸딘스키는 당시 인상파전에 출품된 모네의 「건초더미」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을 표현한 그림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제목을 보고서야 건초더미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지만 미심쩍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모네가 말년에 그린 「건초더미」는 사실적이고 재현적인 기법 대신에 인상주의 고유의 화법을 발전시킨 그림이었다. 그림에서 건초더미는 그것에 가해지는 빛의 세례를 표현한 특유의 화법, 즉 중첩된 필촉의 색점들로 인해 고유의 형체와 양감이 거의 해체되어 있었다. 또 다른 사건은 해거름에 작가가 우연히 아름다운 그림과 마주친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뒤집혀진 채로 화실의 구석에 놓여져 있던 작가 자신의 그림이었다. 이들 두 사건이 작가로 하여금 회화에 있어서의 대상과 주제, 그리고 재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결국 작가는 외부적으로 실제하는 대상의 설정이 회화의 필연적인 조건이 아님을, 회화는 특정 대상을 재현하지 않고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일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러한 인식은 이후 추상회화의 본격적인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추상회화란 흔히 어떠한 외적 대상도 재현하지 않는 미술을 말한다. 대신 재현의 대상은 인간 내부의 심상의 표현으로, 혹은 회화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옮아간다. 인간 내부로 옮겨진 대상은 무의식의 표현으로, 상상력의 표현으로, 정념(기분, 정서)의 표현으로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표현을 낳는다. 이렇듯이 인간의 내면적 정신적 성질과 결합한 추상회화를 흔히 뜨거운 추상 혹은 서정적 추상이라고 한다. 예컨대 유럽의 앵포르멜(비정형) 회화와 타시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와 액션 페인팅, 그리고 마크 로드코에서 볼 수 있는 일부 초기 색면파 회화가 이 범주에 속한다. 엥포르멜 회화와 타시즘은 장 포틀리에의 「인질」 연작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유럽인의 총체적인 실존적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잭슨 폴록과 윌렘 드 쿠닝으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와 액션 페인팅은 회화라는 특정 행위 자체를 강조하는 전면 회화(올오버 페인팅)를 특징으로 한다. 마크 로드코의 색면 회화는 강한 종교적 심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듯이 뜨거운 추상 혹은 서정적 추상 회화는 인간의 내면적인 정념을 반영하는 경향성이 짙다.
이에 반해 회화의 본질로서의 대상 표현은 점.선.면 혹은 평면 혹은 색채 등을 회화의 본질로 간주하고, 그것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를 말한다. 이와 관련한 모리스 드니의 전언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즉 그에 의하면 회화란 화면 위에 “재현되거나 서술된 특정 사건 혹은 이야기이기 이전에 일정한 색채로 뒤덮인 평면”을 의미한다. 더불어 회화에 대한 순수한 감상의 표현을 주장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회화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에 의하면, 절대 회화란 평면과 최소한의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된다. 한편, 회화의 궁극적인 본질을 ‘평면’으로 간주한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적 형식주의 회화 관념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살필 수 있다.
추상회화의 대상은 외부 세계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피에트 몬드리앙의 신조형주의 관념에 의하면 세계의 본질은 수평선과 수직선의 교직, 청.적.황의 삼원색, 흑색, 백색, 그리고 회색 등의 최소한의 색채 구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 한편, 세계를 원통과 기하학적 형태로 환원하고자 한 세잔의 태도 역시 그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이 회화 혹은 외부 세계의 본질을 표현하는 추상적 회화관념은 특유의 논리적 전개로 인해 흔히 차가운 추상 혹은 기하학적 추상 회화로 불린다.
5. 입체주의 미술 - 사물의 본질에 대한 기하학적 환원 인상주의가 인간의 시지각적 감각에 의존하는 감각적 미술이라고 한다면, 표현주의는 사물에 대한 화가의 감정과 느낌을 반영하는 주정주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주의는 현실에 대한 전형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객관주의 미술이라 할 것이다. 반면 입체주의 미술은 인상주의의 감각, 표현주의의 주정주의적 태도, 그리고 사실주의의 현실에 대한 객관적 반영을 거부한다. 특히 사물의 외양이 변화무쌍한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인상주의 화파의 태도를 불완전한 세계 인식으로 간주하는 한편, 사물의 외양보다는 일정정도 불변하며 항구적인 사물의 본질을 추구한다.
1907-1914 년간에 걸쳐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한 입체파 미술은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되는 양식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1907-9 년간에 걸친 세잔의 영향을 반영하는 시기와, 1910-12 년간에 걸친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 그리고 1913-14 년간에 걸친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이다. 특히 회화의 자율성에 의지해서 논리적으로 화면을 재구성하는 세잔의 화법과 교리는 입체파 초기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간주된다.
분석적 입체주의는 대상을 해체시켜, 이를 다시 기하학적인 자잘한 단면들로 재구축하고 있다. 대상의 외양이 해체될 뿐 아니라, 배경 화면과 대상과의 경계 역시 허물어지면서 상호 침투한다. 이미지와 배경 화면을 포함한 일체의 묘사 대상이 해체되어 등가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연상케 하는 복잡한 화면 효과가 ‘트롱프뢰이유’(눈속임 효과. 초현실주의 회화의 주요 기법) 화법과의 연관을 상기시킨다. 삼차원적인 사물의 존재성을 해체해서 이차원적인 평면 위에 재구축을 시도하는 태도는 이후 현대미술에서 주요 개념이 되고 있는 ‘평면적 화면’ 현상을 가속화하게 된다. 특정 시점으로 귀결되는 전통적 의미의 원근법이 해체되는 대신 복수시점, 다시점, 전방위적 시점을 채택함으로써 사물의 이면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대상을 가능한 일체의 시점에서 포착하고 있다. 사물의 사실적 묘사에 의존하는 점진적 음영법이나, 음영을 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드라마틱한 효과를 배가하는 키아로스큐로(명암법)를 거부함으로써 평면적 화면효과를 꾀한다. 이외에도 제한된 채색을 사용하는 등 단색조의 화면을 추구함으로써 현란한 색채가 사물의 본질을 흐릴 수 있음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 시기의 화면은 입체파 미술의 두드러진 특성을 충실히 반영하는 동시에 입체파 특유의 회화적 순수성과 전언을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다.
종합적 입체주의는 상대적으로 더 간결해진 화면과, 이미지와 배경의 재분리, 그리고 추상적인 양식화된 화면과 대상을 환기시키는 요소와의 조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이 시기와 관련해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성과로서, 이후 현대미술에서 중심 개념이 되고 있는 ‘오브제’에 대한 인식을 들 수 있다. 입체파 화가들에 있어서 오브제에 대한 인식은 콜라쥬(풀로 붙인다)와 파피에 콜레(종이를 붙인다)의 형식을 취한다. 콜라주와 파피에 콜레의 표현을 위해 종이, 신문, 활자, 기호, 나무조각, 무늬목 등 일상으로부터 직접 채집한 오브제가 차용된다. 이렇듯이 오브제에 대한 인식은 손으로 직접 그리는 평면회화라고 하는 전통적인 회화 개념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된다.
인체를 포함한 자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물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점 역시 눈에 띤다. 아마도 사물의 항구적이며 불변적인 본질을 관찰하는데 기울어진 입체파 화가들에 있어 정물은 변화무쌍한 자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사물의 본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입체파 미술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현실을 거부하는 반사실주의라기보다는 작가의 주관에 의해 현실을 재해석하는 비사실주의에 가깝다. 한마디로 개념적 리얼리티가 현실적 리얼리티를 대치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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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래파 - 부정과 거부의 정신1909년 2월, 프랑스의 유력한 일간지 「피가로」 지를 받아 본 파리의 보수적인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이탈리아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개제한 「미래주의 선언」 때문이었다. 신문에 실린 마리네티의 글은 일체의 전통과 규범, 특히 예술에서의 아카데미즘의 고루함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폭력과 모욕의 정당화, 무례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체의 예술적 전통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실제적인 최초의 시도로 평가되는 「미래주의」가 세상을 향해 포문을 연 순간이었다.
선언문은 반전통, 반규범, 반도덕, 반교회, 반종교, 반아카데미즘, 반미학 등의 안티(틀화된 가치관을 거부하는 태도)를 정당화하고, 과거에 속한 일체의 가치관의 정체성을 의문시하는 한편, 무정부주의와 절대자유, 전쟁과 폭력, 혁명과 투쟁, 도래할 미래를 미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렇듯이 미래주의로부터 시발된 예술에서의 안티 개념은 연이은 다다이즘에서 ‘무조건적인 파괴’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돌이켜 보면, 미래주의의 안티 개념은 무모하리만치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주요한 덕목 중 하나인 ‘부정의 정신’을 잉태하는 자궁의 역할을 했다.
현실에 대한 예술가의 표현은 대략 현실에 접근하는 태도와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태도,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된다. 전자를 리얼리즘 미학으로, 후자를 이상주의 미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동시대적 삶의 직접적인 표현에 기울어지며, 특히 동시대를 기계 혹은 기술이 지배하는 새로운 문명 시대의 도래로 간주하고, 과거에 속한 일체의 권위를 의문시한다. 따라서 종래 예술의 주요한 덕목으로 간주되던 조화, 비례, 통일, 고상한 취미, 균형, 숭고, 우미 등의 가치를 기계의 동세가 보여주는 정확성, 역동성, 속도감, 기관차가 내는 귀가 멍멍한 소리와 소음 등의 표현으로 대체한다. 기계의 역동성은 그 자체로 남성적 힘을 상징하며, 따라서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인 여성은 거부된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현실에 대한 참여와 혁명 의식은 보수와 전통에 대한 단순한 부정을 넘어, 보수와 전통을 일소할 수 있는 구실로서 전쟁을 미화하고, 결과적으로 군국주의의 정체에 동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더불어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적 경향으로 인해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파시즘적 혐의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래주의의 논쟁적, 선동적 성격과 정치적 경향에 대해 말해준다. 집단적인 운동과 프로그램, 빈번한 선언문의 발표와 행동강령의 제시 등, 전례가 없는, 전적으로 미래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처음 시도된 표현 형식들이 이후 예술과 정치의 상관성 및 담론에 주목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속도감과 운동성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회화와 조각 고유의 공간적 조건에 시간의 요소를 도입한다(원래 조형예술은 특정의 가시적 공간을 점유하는 공간예술로, 음악과 무용 등 공연예술이 시간예술로 알려져 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시간에 대한 관념은 동시성 개념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일테면, 가동 중인 기계 혹은 달리는 말을 마치 고속 촬영한 연속 필름을 보는 듯 모티프의 연이은 동작을 겹쳐지게 표현한다.
예술의 소재(재료)에 대해서도 종래의 관습적인 틀을 넘어선다. 일테면, 회화와 화폭(캔버스 천), 조각과 대리석 혹은 브론즈라는 소재에 대한 틀화된 등식을 넘어서, 철과 금속조각, 거울과 유리, 종이와 마분지, 시멘트와 콘크리트, 말총과 헝겊, 기호와 활자, 심지어 전기광선(빛의 다이나미즘을 표현)까지 수용된다. 기법적으로는 콜라주(인쇄물 등을 화면에 붙이는)와 아상블라주(일상으로부터 채집한 잡동사니를 누적해 보여주는)가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간단없는 실험적 추구를 반영하고 있다.
7. 초현실주의 미술 - 무의식적인 욕망의 비밀에 대한 탐구초현실주의 미술은 지그문트 프로이드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한 유태인 천재와 더불어 그 역사적인 서막을 연다. 그의 중요한 학문적 성과는 무의식의 비밀을 밝힘으로써 의식과 함께 인간의 인식지평을 증대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현실로 존재하는 의식층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무의식(잠재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주로 유아기 때 억압된 욕망들이, 특히 성적인 욕망들(리비도)이 무의식의 지층을 형성한다. 이 사실을 프로이드는 1910년에 출간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어린시절의 추억」에서 분석하고 있다. 저작에서 프로이드는 「」모나리자」 혹은 「성녀 안나」 등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 묘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생아라는 유년기의 특이 상황을 연결시킴으로써 억압된 성적 욕망이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관념은 근자의 정신분석학(적) 비평의 전범이 되고 있다. 그 방법에 의하면, 작품에 드러난 특정 표현은 작가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어떤 억압된 욕망의 반영이다. 반영은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상대적으로 왜곡된, 우회적인, 암시적인 형식을 취하기 쉽다. 그 방법의 곧이곧대로의 적용은 문제가 있지만(실제로 프로이드의 관념에 있어 성적 욕망과 특정 표현을 지나치게 일치시키려는 태도가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렇듯이 의식에 반영된 무의식은 꿈, 백일몽, 환각, 환영, 환청, 편집증, 정신분열증, 과대망상증 등의 매개를 통해 현실과는 다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논리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꿈에 대해서는 쇼펜하우어가 프로이드를 앞서고 있다. 그가 1850년에 출간한 「환영에 대한 소고」에 의하면, 꿈의 재현능력(사물의 생생한 묘사와 현실감)이 단순한 상상력의 재현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꿈에 등장하는 직관적인 사물들 하나하나는 어떤 진리 혹은 본질 혹은 예견, 심지어 논리적인 보편성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넘어서서 현실 그 자체를 드러낸다. 꿈의 재현은 자연의 질서 혹은 법칙에 종속되지 않은 사물 자체의 본질을 토대로 한다.
쇼펜하우어의 저작에 보다 직접적인 세례를 받은 키리코는, 현실 속에서는 친화력을 가지지 못하는 사물들을 화면 내에 공존하게 함으로써 마치 꿈의 장면을 가감없이 옮겨 놓은 듯한 암시성이 풍부한 회화를 남긴다. 키리코는 자신이 그린 회화를 ‘형이상학적 회화’라고 명명함으로써 쇼펜하우어와의 관련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흔히 ‘사물의 전치’로 알려진 초현실주의 회화의 주요한 방법론이 되고 있다. 그 골자는 이질적인 사물들을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전혀 예상치 못한 어떤 표정과 의미를 사물들로부터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사물은 애초의 표정과 의미를 상실하는 대신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로트레아몽의 시적 단상이 발전한 것이다.
편집증과 관련해서는 살바도르 달리의 회화를 예로 들 수 있다. 달리의 회화에 있어 편집증은 비현실적인 풍경이나 상황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것의 치밀한 재현(묘사)으로 드러난다. 일테면 잠자는 시계나 더위에 땀을 흘리며 녹아내리는 시계, 지지대를 필요로 하리만치 무거운 졸음 등의 표현이 그렇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방법을 ‘편집증적 비평’이라는 말로 명명하고 있다. 아마도 편집증을 통해 세계를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달리의 방법 혹은 태도를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이성의 왕국인 현실에서는 정신적인 모순이나 착오 혹은 정상의 결여로 치부되지만, 근자에 들어 그것이 무의식의 지층을 이루는 보편적인 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받아들여짐에 따라 단순한 정신적 질병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정상적인 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예술에서는 신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영감의 순간성과 우연성을 포착함으로써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받아들여진다.
8. 다다이즘과 마르셀 뒤샹불어 사전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다다’(dada)란 말을 찾아낸 트리스탄 차라에 의하면, 그 말은 어린이의 의성어로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이 말은 일체의 무의미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의미로서 의미를 대체하기 위해 채택되었다. 반미학으로서의 부정과 파괴를, 예술의 본질로서의 절대 자유를 정당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이 말은 철저하게 무의미 자체를 지시하며, 따라서 다른 말이어도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성격적으로 아방가르드(전위예술)의 부정적 관념에 이어지는 다다는 예술에서의 무목적적이고 맹목적인 파괴를 추구한다. 파괴 자체가 가치관의 절대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아방가르드의 얼굴이 혁명이라고 한다면, 다다의 그것은 파괴이다. 다다에서 파괴란 의미 이전의 문제이다. 마치 ‘무목적적 행위’라는 임마뉴엘 칸트의 예술 정의에서 행위를 파괴로 대체한 듯하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예술 정의에서 아폴론적인 질서로 균형 잡힌 세계 지평을 디오니소스적인 혼란으로 흔들어 놓는 듯하다. 그 배경에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이래로 근대를 이끌어온 서구의 합리주의와 그 중심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회의가 존재한다. 총체적인 세계 인식에 대한 신뢰를 소박한 유아론으로 규정하고, 파편화된 세계 인식으로 그것을 대체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에 이어지는 길을 열어놓는다. 사물이 담지하는 본질을 해체하고, 의미의 전복을 추구하는 등 현대미술에서 여러 양상으로 자기를 반영하는 일체의 해체주의적 징후 역시 이미 다다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의미로부터 탈의미로, 재현(사물의 외관을 닮게 묘사하거나 특정 사실을 반영하는)으로부터 소재(재료 혹은 모티프) 자체에 대한 주목으로 인식 전환이 요청된다.
사실주의 회화가 구스타브 쿠르베와, 추상회화가 바질리 칸딘스키와, 입체파 회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그리고 초현실주의 회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연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셀 뒤샹은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이러한 일반화가 사태를 편협하게 유도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 등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반화의 가장 큰 난점은 세부의 특수성이나 세목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의 문법은 보다 쉽고 빠르게 사태의 이해에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미술에 대한 뒤샹의 태도는 오브제의 ‘우연한 발견’과 ‘작가의 의도’ 자체가 작업으로 인식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레디메이드(예술가의 우연한 선택에 의해 예술품의 권위가 부여된 기성품)의 직접적인 차용에 대한 뒤샹의 관념에 반영된다. 예컨대 작품 「샘」에서 뒤샹이 한 일이라고는 남성용 변기를 화랑에 전시한 것이 전부다. 이 작업에서 뒤샹은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이게 하는 요인으로서, 작가의 심미적 가치가 아닌 작가 외적인 예술계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즉 어떤 사물을 작품화, 신비화하는 화랑이라는 특정 공간의 주술적 능력을 문제시하고 있다. 이렇듯이 예술계로부터 생산되는 담론(일테면 예술의 정의와 관련한) 자체를 작업화하는 뒤샹의 태도는 예술가의 심미적 창조 능력과 관련한 종래의 예술관념과 결별하면서 차후 개념미술의 본격적인 등장을 예비하고 있다.
한편, 작품을 구분하는 장르상의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은 종래의 회화는 물론이고 조각으로도 범주화하기 어렵다(아마도 설치란 말이 적절할 것이다). 여기서 뒤샹은 회화 혹은 조각 고유의 장르적 특수성보다는 그 전체를 아우르는 큰 개념인 예술적 표현을 다루거나, 예술에 대한 개념 혹은 정의를 표현의 매개로 삼는 태도로 전환하고 있다. 어떤 표현이 예술적이기만 하다면, 그것이 회화인지 혹은 조각인지 하는 등의 장르적 특수성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크로스오버(탈장르) 혹은 토탈아트(총체예술)의 길을 예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다이즘에서의 ‘파괴’란 예술작품에 대한 주권을 예술가 개인의 창조적 능력으로부터 예술계(예술가를 포함한) 전체로 전이 혹은 증폭시키는, 종래의 예술관과의 결별을, 지각변동을 말한다.
9. 팝아트 - 통속적인 이미지의 재현 팝아트는 현재의 지배적인 문화현상이랄 수 있는 대중문화 이론과 담론이 문화의 전면에 등장하는 데 있어서 그 배경이 되고 있다. 그 저변에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에 천착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미학적 시각에 토대를 둔 오랜 논쟁이 존재한다. 특히 후기 막시즘의 시각에 근거한 하우크의 상품미학 이론은 예술에서의 대중문화 수용 문제를 순수조형예술로부터 디자인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함으로써 예술 및 대중문화와 관련한 제반 담론의 본격적인 논의를 증폭시키고 있다. 여타의 이론적 성과는 예술적, 미학적 문제를 사회학으로까지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현재에는 사회학의 성과 혹은 그것의 언급이 없이 예술에 대해 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팝아트가 주목했던 여타의 대중문화 현상 자체가 원래 사회학의 주된 논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다.
팝아트는 예술의 표현을 통해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거나, 무의식적인 표현을 통해 미답의 영토를 탐구하거나, 예술의 자율성을 통해 심미적인 형식을 추구하는 등의 환원주의적이고 엘리티시즘적인 예술과 관련한 일체의 전통적인 태도를 거부한다. 대신 일상과 대중문화라는 문화의 지층 혹은 표층으로부터 소재를 취한다. 종래 예술관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인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며, 키치와 캠프, 그리고 펑키 스타일과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진정성을 결여한 복제 이미지를 실제 혹은 현실로 간주하며, 인스턴트적이고 일회적인 유행감각, 대중문화, 스타쉽 등을 주된 소재로 다룬다. 이러한 사실은 애초에 원본이 없는 (복제) 이미지 혹은 원본을 대체한 (복제) 이미지로 현재의 대중문화를 정의하는 장 보들리야르의 전언과 일치한다.
팝아트는 주로 영미권을 주축으로 한다. 그 기원은 1950,60년대에 비틀즈로 대변되는 대중음악이 국제화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대중음악이 팝아트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간주된다. 순수미술에서의 기원은 포토몽타주의 형식을 빌어 중산층의 거실풍경을 재현한 리차드 해밀턴의 1956년 작품 「무엇이 우리 생활을 이토록 달라지게 하는가」에 소급된다. 이 그림은 자본주의가 초기의 생산 중심구조로부터 소비 중심구조로 전이되면서 일상을 어떻게 변질시키는지를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경향 역시 50,60년대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변하는 비트 세대의 문화 양식과 일치한다. 라우젠버그의 정크 아트(쓰레기 미술)는 폐타이어와 동물박제, 그리고 때에 전 침대 등의, 일찍이 소재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일상으로부터 가져와 작품화함으로써 팝아트의 진정한 선조가 된다. 그의 작품으로부터 어떤 정신적인 가치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예술을 지고한 것으로부터 일상에 밀착된 표현으로 끌어내리려는 팝아티스트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 라우젠버그의 예술관념은 근래에 대안미술의 한 형식으로 제시되고 있는 아브직아트(저급 혹은 저질예술)에도 연결된다.
대표적인 팝아티스트랄 수 있는 앤디 워홀은 일상의 사물과 상품화된 이미지를 가감없이 제시한다. 예컨대 브릴로 상자를 슈퍼로부터 가져와 화랑 바닥에 진열하거나, 실크스크린 공법으로 캠벨 수프 깡통과 달러 지폐와 코카콜라 병의 복제 이미지를 재현하거나 한다. 한편, J.F.캐네디와 마릴린 몬로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대중적인 스타들의 이미지를 브로마이드 혹은 타블로이드 판 사진으로부터 차용(패러디)하기도 한다. 특히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재현한 복제 이미지의 나열은 종래 예술작품의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되던 예술가의 개성 혹은 천재적 산물을 뜻하는 오리지널리티 개념을 익명성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 외에 로이 리히덴슈타인은 만화 이미지를, 제임스 로젠퀴스트는 광고와 간판 등의 상업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등 팝아트는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해석의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 널리 알려진 통속화된 기호를 다룬다.
10. 아방가르드와 트랜스아방가르드 - 신화의 파괴 이후, 신화의 차용과 재해석전위예술을 뜻하는 아방가르드(Avant garde)는 정치적으로 좌익과 동일시되며, 특히 미래파로 대변되는 이탈리아의 미술 현상을, 혁명적 경향성을, 정치적 태도를 지시한다(아방가르드라는 말 자체는 불어의 군사용어로부터 유래했다). 메니페스토로 대변되는 미래파의 빈번한 선언문의 발표는 그 자체로 예술가가 자기를 표현하는 또 다른 형식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 형식에 있어서 정치적 발언과 구분되지 않는 메니페스토는 주관적인 성역에 칩거하던 예술가를 광장으로 내몰아 정치적 당파를, 개인을 넘어선 집단을 이루게 했다.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예술가 자체는 리얼리즘 미학에 토대를 둔 것이며, 개인보다는 집단적 실천을 꾀하는 이탈리아의 아방가르드는 선동적이고 정치적인 경향을 노출시킴으로써 리얼리즘 미학에 연결된다.
예술과 정치의 상관성에 눈 뜨게 했으며, 예술적 표현 역시 이데올로기의 한 형식이라는 인식을 가능케 했다. 예술을 지식의 한 형식으로 보아 지식(예술을 포함한)을 권력이 자기를 행사하는 도구로 인식한 미셀 푸코의 태도와 예술을 원죄적 불안으로부터 인간 실존을 해방시키는 구제책으로 인식한 니체의 태도가 비교된다. 이러한 철학적 인식 혹은 담론은 아방가르드의 전면적인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 의식의 방임과 해체를 꿈꾼 요셉 보이스의 자유대학의 구상과, 인간의식의 개조에 간여하는 행위 자체를 조각의 프로세스로 인식한 최근의 한 사례 역시 아방가르드와 무관하지 않다. 발언하는 예술, 선동하는 예술, 이데올로기의 한 형식으로서의 예술의 전범이 되고 있다.
일체의 부르주아적 가치관의 거부와 함께 인간의식을 개조한다는 유토피아니즘의 반영이 나치즘과 파시즘의 전면적인 등장을 가능케 한 배경을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제들마이어는 기존의 가치를 거부함으로써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아방가르드의 도덕적 관념과 그 표현에 대해, 저급한 삶의 기능과 미개한 형식, 비유기적인 형식, 부조리한 형식, 정신력을 결여한 인간의 자율성 등을 편애하는 것으로, 한마디로 종교적 경건성과 인간 실존의 무게를 결여한 형식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트랜스아방가르드 역시 이탈리아 미술의 한 경향이며, 아방가르드의 정치적 발언의 증대와 상대적으로 빈약한 회화적 성과를 거부하는 대신, 비정치적인 회화와 다시 그리는 회화로의 회귀를 꾀했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에 걸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와 80년대 이후의 신구상주의 미술 운동을 포함한다. 원생미술 혹은 소재미술을 뜻하는 아르테 포베라는 말 그대로 회화의 소재 자체의 표정에 주목하는 태도를 취한다. 특히 회화의 바탕재와 안료 등의 소재가 내재한 마티에르(질감) 효과에 천착한 화가들의 태도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앵포르멜(비정형 회화) 혹은 누보 리얼리즘(신사실주의)과 무관하지 않다. 산드로 키아, 엔조 쿠키, 밈모 팔라디노, 프란체스코 클레멘테에 의해 주도된 신구상주의 미술은 현재 진행형의 상태에 있는 이탈리아 현대 미술의 한 사조이다.
한편, 아방가르드 미술의 정치적 급진성은 자본주의의 논리와 만나면서 키치(상품화된 미술)로 전락할 수 있다. 예컨데 팝아트, 히피문화, 펑크문화, 비트문화 등의 원래 반사회적 저항문화가 내재한 일탈이나 반보수주의나 급진주의는 쉽게 시장성있는 소비 상품으로 전이될 수 있다. 실제로 저항문화의 생활양식이 수익성 있는 거대한 사업이 되고 있는 현실을 접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