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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적 장으로서의 산수풍경

이선영


산수 유람기 전 | (9.24--10.31, 갤러리 잔다리)
유락산수 전 | (10.23--11.29, 이천 시립 월전미술관)




고풍스러운 전시제목이 붙여진 산수 유람기와 유락산수전은 약 한 달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기획전으로, 산수나 풍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주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들이 참여하였지만, 출품작의 면면은 디지털프린트나 설치, 조각까지 망라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먼저 양 전시에서 가장 많이 시도되는 스타일은 산수와 풍경의 접합이다. 전통적인 동양화의 기법으로 완성된 산수화에 현대적인 풍경이 가미되는 식이다. 가령 산수유람기 전의 김보민은 멀리보이는 동양화 풍의 산악과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도시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유락산수 전의 박영길, 서은애, 이현열은 수묵이나 채색으로 완성된 산수화에 현대적인 여가생활의 면면을 박아 놓았다. 동양화 풍으로 완성된 화면에 아주 작게 삽입된 보트놀이나 행글라이더, 야영을 하는 장면들이 그럴듯하다.

신하순처럼 장지에 수묵으로 현대식 휴가의 풍경을 그리는 경우에도 전통과 현대는 대조되면서 결합된다. 그러한 자연이 사라져가는 현재, 전통기법으로 그려진 산수화는 저 머나먼 곳에 있을 유토피아적인 공간처럼 보인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현대적인 삶의 풍경은 이물감이 있으면서도 환상적이다. 그래서 장면들은 풍자적이면서도 때로는 이상주의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양면성은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소격시키는 장치들로 작동한다. 모형을 만들고 실제 공간이나 사이버 공간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간의 꼴라주를 시도하는 임택의 [옮겨진 산수유람기]에서, 고풍스러운 산수와 현대적 풍경의 결합은 새로운 버전으로 거듭난다.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형식은 지도의 모델이다. 유락산수전의 김봄처럼 산수화에 현대적인 삶을 삽입하는 방식이 지도처럼 죽 펼쳐놓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산수유람기 전의 임선이처럼 실재하는 산의 지형도에서 따온 등고선이 그려진 평면들을 쌓는 식으로 실제의 축소모델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김봄은 서울 성곽 안에 문화재, 현대식 건물, 헬기, 사람들, 지형지물이 다시점으로 배열하였고, 임선이는 인왕산을 등고선 모형으로 재현한다. 임선이의 작품은 실재를 모방하는 방식의 하나인 지형도로 실재를 추상화하고 정량화하면서도, 엄청난 노동 과정을 통해 사물이 가질 수 있는 무한한 층과 겹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것은 지형도로 해독할 수 있는 기호이자, 동시에 보여지는 이미지(그림, 조각, 사진)일 수 있다. 조르주 장은 [기호의 언어]에서 인간이 지도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지도를 ‘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를 용도에 따라 ‘읽는’ 태도이다. 그에 의하면 초창기 지도를 만들 때부터 전통적인 지도제작술은 실체를 모방한 기호를 선호했다. 실체를 모방한 그림으로 지도를 그리는 지도제작사는 동시에 화가였던 것이다. 지도 제작은 보다 추상적이고 과학적인 방향으로 진보되었지만, 미지의 세계상을 보여주려는 욕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김봄의 작품에서는 실제와 닮은 기호의 구상적 표현과 약호의 추상적인 표현 사이에 절충이 일어난다. 기호적 표시는 실물이 축소된 실제의 지형지물과 중첩되는 것이다. 고지도나 현대적 지형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 지도의 모델은 원근법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전형적인 풍경화의 방식을 벗어난다. 그것은 동양화의 다시점에 가까우며, 서양화의 경우에도 근대의 지배적인 시각체제로 확립된 일점 원근법과는 다른 모델에 의거한다. 마틴 제이는 시각성의 문제를 연구한 [모더니티의 시각체제들]에서 하나의 시선에 의해 세계를 총체화 시키는 전형적인 르네상스식의 원근법과 북유럽의 미술을 대조시킨 바 있다. 그에 의하면 네덜란드 미술의 모델은 바로 지도인데, 평평한 표면으로서의 지도는 공간에 대한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개념이 부족하다.

그것은 데카르트식의 합리주의가 아니라, 관찰에 한층 더 비중을 두는 베이컨 식의 경험주의에 가깝다. 그것은 총괄적으로 설명되기 보다는 묘사되는 것이고, 전체적인 유기적 질서와 깊이보다는 단편적이고 세부적이며 풍부하게 나뉘어진 표면에 주목한다. 전형적인 원근법은 전적으로 세계 밖에 존재하는 비역사적이고 무관심적이며 탈신체화 된 주체에 특권을 부여하며, 세계는 멀리서만 인식된다. 그러나 근대 이전이나 근대 이후의 시점은 이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눈 대신에 다원주의를 지향한다. 이 세계는 이상적인 한 점에 위치하는 관객을 염두에 둔 원근법적인 창에 한정되지 않고,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는 감상자의 위치와는 무관심한 세계이며, 창을 넘어 확장하는 듯이 보인다.




마틴 제이가 설명한 ‘시각체제’의 대조를 통해 이 작품을 해석하자면, 지도적인 풍경 속에 펼쳐진 현대적 삶은 리얼리즘적인 서사(narration)가 아닌, 자연주의적 묘사(description)에 가까운 것이다. 산수풍경 속 장면들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모티브가 없고 산재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 속에 드러나는 삶의 단편들은 어떤 정합적인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개별적인 국면들로 머물러 있다. 환경으로서의 산수와 풍경, 그리고 삶의 단면들이 서로 관계없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각 장면들은 재미와 충격을 준다. 선험적이고 전체적인 틀에 의거하지 않고 개별적 경험을 강조하는 태도는 몸과 실제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양 전시에 모두 참여한 김윤재는 인체 조각 위에 구현된 산수풍경을 보여준다. 작품 [금강산]은 두상의 이마 부분이 산수로 연출되었고, [그리움을 기억하다]에서는 누워있는 소년상의 다리에 산수가 자라난다. 산에 대한 관념이나 두발로 직접 등반을 했던 경험이 연상된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조인호의 산수는 한눈에 들어오는 지형도 같으면서도, 위아래를 구별할 수 없다. 여기에서 산수는 시시각각 전개되는 장면들에 눈과 발이 직접 가닿으면서 이어지는 역동적인 시각 체험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경험적 방식은 일점 원근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공간을 확장한다. 확장된 시공간은 투명 필름을 이용하여 첩첩산중을 겹겹의 층으로 설치한 진현미의 작품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깨알 같은 글자로 이루어진 유승호의 산수화나 시서화 전통을 그림일기 같은 일상적 방식으로 번안한 노석미의 그림은 메아리나 나지막한 이야기 같이 귀를 일깨우는데, 이 청각성은 근대의 지배적인 지각방식이 정해놓은 시각적 경계를 넘어서곤 한다. 양 전시의 산수풍경들은 전근대나 근대이후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동시성(simultaneity)이나 장(場)--맥루한의 ‘지구촌’ 개념에 내포되어 있는--을 통해, 근대의 균질적인 시공간 질서에 기반 한 선형적 질서를 와해시킨다.

출전-공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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