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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노박, 이불 / 인간 안팎을 둘러싸는 공간의 위상학

이선영


인간 안팎을 둘러싸는 공간의 위상학
마르코스 노박 전 | 9.1--10.15, 공간화랑
이불 전 | 9.16--10.15, PKM Trinity Gallery


공중에 둥 떠 있는 매혹적인 설치물들이 있는 이불과 마르코스 노박의 전시는 근대로부터, 또는 그 이전의 머나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대를 통과하여 결정화된 공간의 위상학(topology)을 다룬다. 그들의 작품 구조는 순간적인 시각을 통해서 그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모더니즘 스타일의 작품과는 달리, 서서히 그 안팎을 둘려봐야 하는 과정, 즉 몸과 시간이라는 변수가 중요하다. 겉도는 기표들은 욕망이 추적하는 핵심적 실재를 붙잡기 힘들게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과정 자체를 즐긴다.

잡다한 재료들이 동원되었으나 순수의 결정체 같은 표면들과 작은 덩어리들이 한데 뭉쳐 있는 구조물을 보여주는 이불의 경우, 모더니즘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한 작가의 역설어법을 담고 있다. 단백질 구조에서 출발한 마르코스 노박의 작품은 타자를 동화해야하는 영양섭취의 과정을 장구한 진화적 시간대에 실어서,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질성의 실체를 탐구한다. 이들의 작품이 발산하는 강한 현존성은 작품에 내장된 토포스, 즉 위치와 장소들의 특이한 관계에 힘입은 바 크다. 그 작품들에 나타나는 공간성은 무엇인가를 수동적으로 담아내는 용기(container)가 아니라, 구조들 간의 특수한 연결망 그자체이며, 이 연결망은 예상치 못한 매개 고리를 가지면서 단절됨 없이 이어진다.

이들의 작품은 몸을 구성하는 입자인 단백질로부터 몸을 감싸는 공간인 건축에 이르는 구조들에서 출발하는 입체적 다이아그램이지만, 이러한 배치와 배열이 귀결되는 지점은 구조 그자체가 아니라 구조화이며,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 속에서 구조들의 진정한 기원이 되는 이질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맥락화 된다.




[sternbau]로 명명된 설치물 몇 점과 그것들을 뱅 둘러싸고 있는 많은 드로잉들은, 실제 공간에 구체화된 어떤 작품과 그것의 기원이 된 무수한 착상들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이번 전시에 공개된 이불의 드로잉들은 조각이나 설치의 전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회화 작품 같은 밀도와 완성도를 가지곤 하지만, 입체작품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대 건축이 조각이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조각은 건축을 닮아간다. 포스트모던 시대를 구가하는 ‘거대담론의 종말’(리오타르)이라는 또 다른 거대담론을 빗댄 ‘나의 거대 서사’(이불)로서의 작품들은 건축이라는 거대 구조를 조각적 스케일, 그리고 개념과 아이디어의 다이아그램으로 변주하면서 시작한다.

이불이 2차원 또는 3차원 상에서 펼쳐내는 지형도의 출발점은 ‘집단적인 이상향의 갈망’이 솟구쳤던 근대이다. 이 전시의 작품은 바우하우스 류의 근대를 참조하고 있지만, 이불이라는 대표 아이콘이 부상되었던 근대와 탈근대의 변증법이 한국사회에도 존재했다. 1987년에 ‘뮤지움 창립 전’으로 시작된 이불의 작품 여정은 근대에서 탈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와 정확히 겹쳐진다. 유리와 크리스탈, 철, 그리고 알루미늄 등이 접합되어 만들어진 [sternbau] 시리즈는 바이마르 시대의 건축가인 브루노 타우트의 이상적인 도시 개념과 이미지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세계대전이라는 파괴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재건의 시대를 꿈꾸었던 열정의 산물인, 수정처럼 빛나는 꿈의 도시 이미지는 근대의 유토피아적 이상을 예시한다. 산업혁명이 마련해준 새로운 재료들은 이전시대의 변색된 자연물과 퇴물이 된 문화유산의 칙칙함을 걷어내고, 투명하게 빛나는 이성과 객관의 시대를 열어주는 듯했다.

그 시대의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는 ‘투명하게 밝은 새로운 세계가 서광 속에 번쩍이며 그 최초의 광선을 투사한다. 그 가치란 영원한 변화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빛과 공기에 담긴 수직의 도시’(르 꼬르뷔제)처럼 공중에 붕 떠 있는 이불의 작품은 그 시대의 열정을 공유한다.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건축은 이후 일체의 장식을 거부하는 기능주의로 나아갔다. 이불의 작품은 각이 지고 경쾌하며, 투명하고 빛나는 것에 대한 근대건축의 취향과 일치하지만, 모더니즘의 몸통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합되며 마찬가지로 다른 것을 발언한다. 그녀의 작품에 넘쳐나는 과도함과 잉여, 풍부한 장식성은 모더니즘의 어법을 뒤집는다.

근대 건축의 이상은 분명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그것은 이내 이데올로기화되면서 폐쇄적인 것으로 전락했다. 유동성과 열림에의 파토스로 가득한 이불의 작품이 주목하는 지점은 굳어진 근대가 아니라, 발생기의 근대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어떤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대량생산된 기계적 부품들은 객관성이나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새로운 기능을 위해 배열된다. 이불의 작품에 복귀된 시간과 몸이라는 변수는 새로운 공간성을 촉발한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잡다한 재료들의 여정은 매순간 낯설게 펼쳐지는 가변적 상황을 창출한다. 순수함을 보존하기 위해 폐쇄성과 균질성을 요구하는 유토피아적 지형은 수많은 균열과 분기의 지점들로 해체된다.

유토피아의 완전무결성은 토대 없는 심연의 공간을 향해 열린다. 순조롭게 풀릴 것 같지 않은 공간적인 뒤엉킴은 유토피아가 아닌 헤테로피아의 모습이다. 근대의 초월적 차원을 벗어나면, 유한한 부피도 무한한 표면으로 겪어내야 하는(또는 향유하는) 또 다른 위상학이 펼쳐지는 것이다.




‘Amons Acids; of Gods and Proteins, of Places and Planets’라는 복잡한 부제가 붙어있는 마르코스 노박 전은 인류 문화사를 자연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바라본다. 전시장에 샹들리에처럼 매달린 10개의 구조물들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단백질의 화학식 모양을 변형한 것으로, 지구라는 행성에서 진화를 거듭한 생명체, 그 중에서 인공적인 것으로서의 예술품을 만드는 존재의 체내 구성성분을 나타낸다. 마르코스 노박의 작품에 나타나는 위상학은 필수 아미노산이라는 소우주적 입자에 내포된 공간관계들이다. 구별된 앞판과 뒷판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이 구조들의 이질성을, 보다 구체적인 물질성으로 폭로하는 것은 시험관에 담겨 소화중인 음식물들이다.

10개의 필수 아미노산 화학식이 새겨 있는 10개의 시험관 안에는 고깃덩어리나 식물들이 소화액에 섞여 있다. 학습과 창조의 과정 역시 영양 섭취와 같은 과정으로 간주하는 작가는 설치의 부산물들인 무기물들 역시 시험관에 담아 놓았다. 한국의 상징으로 다가온 공간 사옥 주변의 은행잎들도 전시장 내벽에 붙어서 천천히 시들어가고 있다. 다양한 공간으로부터 취해온 것들은 어김없는 시간의 시험을 거치면서 이 순간에도 변화한다. 전시장에 늘어진 낡은 밧줄과 전선줄은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간의 궤적을 선적으로 연결한다. 종으로 횡으로 이어지는 연결망들이 강화될수록 빈 공간은 더욱 커진다.

진화라는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들이 명료하게 드러나듯이,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아톤(Aton)으로부터 원자(atoms)까지’ ‘인류 역사와 문화의 광대한 지평과 조우하는’(마르코스 노박) 지향의 기저를 흐르는 것은 혼합주의적 시각이다. 그것은 하나의 장소(유일신)가 아닌, 복수의 장소들(다신교)을 지시한다.

복잡하게 비틀리는 평면으로 구조화된 단백질 덩어리들은 자연이 가지는 역동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특정한 공간적 방향이 있는 시간적 성장형식이다. 덩어리 안에 접혀 있는 구조는 성장과 진화의 방향을 가리키며, 공간에 압축된 시간성은 향후에 펼쳐질 생명의 역량을 보여준다. 마르코스 노박의 작품은 연결되기 위해 분리되어 있으며, 그 사이의 공간에 내재된 차이들을 드러낸다. 작가는 차이가 발생하는 균열이나 장소를 애써 은폐하지 않는다. 분리와 연결의 방식을 새롭게 구조화함으로서 사건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과학자와 예술가의 공동과제로 나타난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것은 구조이지만, 구조는 정태적이지 않다. 구조는 그것을 교란하는 요소들에 열려 있으며, 교란적 요소는 구조 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생성하는 원동력이 된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교란요소들(비대칭) 없이 어떠한 구조(대칭)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문화사와 자연사를 총괄하여 다루는 마르코스 노박의 작품에는 이러한 역설적 힘들이 관통한다. 분자적 차원의 단백질 구조는 시험관에서 변환과정에 놓여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입체적 분자구조는 전이의 과정 그자체이다. 전시장은 다양한 분기점을 가지는 위상적 변환이 일어나는 장이 된다.

이 변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죽은 듯이 정지된 평형상태가 아닌, 역동적인 탈 중심화이다. 이러한 운동형식은 문화와 생명의 진화과정에 내재된 불연속성과 도약, 우연성과 창발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거기에는 단단한 지반이나 뿌리, 인과론적 연속성의 논리가 부족할지 모르지만, 생명과 문화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장시키려는 힘은 충만하다.

출전 | 아트인 컬처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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