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Popland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현대미술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와 변별력에 바탕을 둔 소위 종 다양성의 논리가 지배적인 편이다. 삶의 양식이 다변화되면서 이에 따른 표현욕구 역시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삼국의 현대미술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그 경향을 한자리에서 비교분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록 일정한 시차를 두고 어슷비슷한 근대화의 경험을 공유해왔다고는 하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배경이 다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토양이 다 틀린다. 그 와중에서도 공통점을 비교적 뚜렷하게 부각하는 사례가 있다면, 아마도 아시아적 형태로 변용된 팝아트의 경향성일 것이다.
그 변용된 과정을 보면, 한국에서 팝아트는 소위 코리안팝의 형태로, 일본에서는 재팬팝 혹은 마이크로팝의 형태로, 그리고 중국에서는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팝의 개념으로 정착된다. 코리안팝은 대중문화 현상을 광범위하게 차용하는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갈래인 매체미술을 계승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서 전통문화 중 민화를 차용해 현대적으로 각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재팬팝은 일본 대중문화를 견인해온 두 축인 망가(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탄탄한 저력을 바탕으로 여기에 오타쿠의 문화적 현상을 탑재하는 형식을 띤다. 그 대표주자는 단연 무라카미 다카시다. 작가는 근래에 루이비통 로고를 차용한 디자인으로 소위 명품 로고 차용 붐을 선도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에서 냉소적 사실주의는 사실상 중국 아방가르드미술로 통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근대화 이후 물밀듯 들어오는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충돌하는데 따른 반응이다. 차제에 중국아방가르드미술의 소위 4대 천왕으로 알려진 작가들을 보면, 위에 민쥔, 팡 리쥔, 장 샤오강, 그리고 왕 광이를 들 수가 있다. 동어반복적인 초상, 공허한 웃음, 방관적이고 무기력한 개인들의 집단초상화를 공유한다거나(위에 민쥔, 팡 리쥔), 억압적인 현실을 비현실적인 분위기의 향수로 각색한다거나(장 샤오강), 자본주의의 물신 아이콘을 차용해 중국의 정치경제적 현실을 풍자한다(왕 광이).
특히 왕 광이는 소위 정치팝의 선두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도 중국 작가들 중엔 정치팝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서 특히 마오를 차용하는 예가 많다(리 샨, 쉬에 송, 위 요우한). 이번 전시에서 새삼 확인한 것이지만, 중국의 냉소적 사실주의나 정치팝이 유독 스펙터클의 경향성이 강해 보였고(특히 슈퍼마리오를 닮은 아바타를 내세워 과거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추격전을 벌이는 역사적 현실을 게임소프트웨어에 탑재한 펑 멩보), 이는 최근 국내 현대미술의 스펙터클 경향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재판팝의 경우에는 귀엽고 예쁘고 깜찍한 소위 팬시적 감수성이 그로테스크한 이질감과 결합된 독특한 감각의 종류를 확인해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귀엽고 폭력적인 이중인격을 내재화한 어린아이(나라 요시토모), 식량이 고갈된 미래에 클론인간(특히 여자클론)을 만들어 식량을 대체한다는 가상현실을 통해서 여성의 공공연한 상품화와 함께 퇴폐적이고 외설적인 욕망을 암시한 경우가 그렇다(아이다 마코토). 그리고 뛰어난 CG 기술을 이용해 판타지와 함께 일종의 유사 리얼리티를 열어놓기에 이르기까지(오다니 모토히코).
형식적인, 그리고 의미론적인 스펙트럼
이번 전시는 한중일 작가 42명의 150여점의 작품이 출품되며, 전체 전시를 <대중의 영웅>, <스펙터클의 사회>, <억압된 것들의 귀환>, 그리고 <타인의 고통> 등 총 4개의 섹션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대중의 영웅> 섹션과 관련해서는 영웅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함께, 진정한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각종 대중매체의 캐릭터와 스타들이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것에 주목했다.
그 경우를 보면, 박정희와 마릴린 몬로의 얼굴이 하나로 중첩된 이중초상 형식의 그림을 통해서 한국과 미국의 애증의 관계를 예시하기도 하고(김동유), 아디다스, 구찌, 스타벅스 등 소비문화 시대의 욕망의 아이콘을 마치 문신처럼 몸에 새긴 소위 문신맨을 통해서 현대인의 욕망을 표상하기도 하고(김준), 미국의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각종 캐릭터를 전통적인 한국화의 방법으로 그려내 소위 문화충돌현상과 상호영향사를 표현하기도 하고(손동현), 미국 만화영화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와 일본 만화영화 캐릭터인 아톰을 합성한 아토마우스를 통해 혼성문화의 한 전형을 제시하기도 하고(이동기), 미국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톰과 제리를 소재로 하여 이 캐릭터들을 무슨 자연사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발굴 보존된 고생물의 유적처럼 재현하기도 하고(이형구), 핑크몬스터에 연이어진 사이보그를 통해서 유혹적이면서 폭력적인 팜므파탈의 원형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풀어내기도 한다(이불).
말보로 담배의 아이콘을 차용한 낙타인간을 통해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서구 자본주의의 물질적 가치관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현대 중국의 딜레마를 표현하기도 하고(죠우 티에하이), 미켈란젤로 등 서양의 고대 조각상에다가 인민복을 입힌 조각상을 통해서 인민복으로 상징되는 혁명이 과거지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풍자하기도 하고(수에이 지앙꿔), 가면 쓴 인물을 통해서 개성을 상실한 시대와 익명성 뒤에 숨는 현대인의 이중적 초상을 풍자한다(쩡 판쯔). 그리고 자기차용으로 유명한 모리무라 야스마사는 자위대에서 연설하는 미시마 유키오를 차용하고, 히틀러를 차용한 찰리 채플린을 재차용한 일련의 작업에서 정치적 언설의 공허함을 풍자한다.
그리고 섹션 2에서는 <스펙터클의 사회>를 주제화한다. 주지하다시피 스펙터클의 사회는 프랑스의 사회미학자 기 드로브의 상황주의 미학(정해진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그리고 개별적인 상황논리에 따라서 형식이 결정된다는)에 연유한 것으로서, 영화적 현실을, 미디어적 현실을 갈파한 것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픽션 같은 현실과 더불어 현대인은 진정한 현실참여주체로서보다는 방관적이고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전시에서 주제는 현대도시의 스펙터클로 나타나기도 하고(미아오 시아오츈), 마구 변형되고 무한 증식되는 이미지와 더불어 오히려 판단력을 잃고 마는 현대인의 딜레마로 표현되기도 하고(나카하라 코다이), 무중력 공간 속을 부유하는 의미 없는 사물들로 표상되기도 하고(쩡 하오), 옥수수 통조림에 등장하는 그린 자이언트의 상품 캐릭터가 현실적인 인격을 얻는 것으로 현상하기도 하고(후쿠다 미란), 현재로부터 미래에 접속하는 장치인 타임캡슐을 통해서 욕망을 판타지로 구현해주는 허구적 현실로 형상한다(정연두).
그리고 섹션 3의 <억압된 것들의 귀환>은 주지하다시피 프로이드에 연유한 개념이다. 의식은 무의식을 억압하고, 정신을 몸을 억압하고, 문명은 자연을 억압하고, 제도는 욕망을 억압하고, 정상성은 비정상성을 억압하고, 캐니는 언캐니를 억압한다. 이렇게 억압된 힘들이 소거되지가 않고 차곡차곡 쟁여지는 저장고가 헤테로토피아이다(미셀 푸코). 이런 억압된 힘들로 인해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를 혁명의 잠정적인 계기로 본다. 즉 억압된 것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서 되돌아온다.
전시에서 공성훈은 인스턴트식품이나 일회용 물품처럼 예술작품자판기를 통해서 누구든 손쉽게 예술을 소비할 수 있는 시대를 매개로 사실상 미술계의 권력으로 등극한 미술시장을 이런 억압의 주체 내지는 왜곡의 주체로서 풍자한다. 그리고 박윤영은 실제 서사와 허구적 서사, 현실과 픽션을 씨실과 날실 삼아 긴밀하게 직조해낸다. 그렇게 직조된 서사에는 논리로 환원되지가 않는 알레고리가 있어서 이로부터 특유의 아우라를 발생시킨다. 캐나다 밴쿠버의 픽톤 호수에서 일어난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포르노그래피를 끌어들여 그 극적 효과를 더했을지는 모르나, 종전 작업에서의 암시가 갖는 힘은 오히려 약화된 느낌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스펙터클의 전형적 형식이 아닌가.
너무 손쉽게 스펙터클로 옮겨가거나 해결한 느낌? 그리고 최우람의 기계생명체는 점차 개체에서 풍경으로까지 확장하면서 진화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섹션 <타인의 고통>에서는 대중과 타자의 관계(타자론)를 다룬다. 주체와 타자, 타자와 타자, 제도와 개인, 미디어(매스미디어)와 개인의 관계를 다룬 이 항목에서 그 관계는 대개 억압적인 현실과 폭력적인 현실로 그려진다. 이 현실은 특히 중국작가들에게서 첨예한 인식을 얻는다. 이를테면 문화대혁명은 폭력적 현실이 돼 되돌아오고(양 샤오빈), 서구 자본주의의 물신은 전통적 가치관을 지우는 망각의 계기로서 작동된다(옌 샤오팡).
이번 전시는 그동안 지엽적으로 선보여져왔던 한중일 삼국의 변용된 팝아트의 경향을 대규모로 개괄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런 점에서 그 자체 새로울 것은 없으나, 그 경향을 한자리에 모아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부여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통해서 지금까지 부분적으로나 개별적으로 알려져 왔던 사실을 전체적인 조망 속에서 재확인시켜주고 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