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문예연감] 2008시각예술 : 사진-판화, 미디어-설치미술, 서예, 미술이론-평론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미술창작과 이론김성호(중앙대 겸임교수,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I. 머리말 디지털 복제 시대에 이른 작금에 사진, 판화, 미디어, 설치, 서예에 이르는 창작의 현장은 눈에 띄게 변모했다. 미술이론과 평론의 주제와 내용 역시 창작의 실제와 발맞추어 변모해나가고 있다. 상기한 장르의 2008년 미술계의 창작 현장과 이론의 분석과 평가를 통해 이러한 변모의 지점이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II. 사진-판화 사진과 판화의 위상은 오늘날 많이 변모했다. 이른바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무한 복제와 무한 변형이 가능해지면서 최소한의 에디션을 강조하던 두 장르의 위상이 일품성을 강조하는 순수 예술의 지위를 견지하기에 버거운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예술성을 담보하는 조건으로 내걸었던 최소한의 복제 기준 틀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두 장르는 이러한 위기사항을 보다 더 발전적인 예술유형으로 정초하고자 부단히 노력중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사진과 판화가 미술을 향하여 이미 오래전 끝난 싸움에 끝없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일이거나 또 한편으로는 사진과 판화가 현재 처한 위기와 한계를 자신만의 장점으로 역전시켜 전력투구하는 일이다.
II-1. 사진계의 주요 전시와 행사-사진의 역사와 정체성 모색
최근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사진 창작이 용이해지면서, 사진계의 문을 두드리는 일반인들의 노크소리가 잦아졌다. 아마추어 사진동호회들의 집단창작의 힘이 사진현장의 갤러리 안으로 파고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사진계에 입문하려는 일반인들의 전문사진가에 대한 부러움은 여전하다. 예술사진의 아우라는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다는 자각이 일반인들에게 사진을 배우면 배울수록 팽배해지기 때문이다.
2008년 한국의 사진계는 아무나 창작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 아님을 천명하는 듯이 보인다. 〈매그넘 코리아〉(7.4-8.24,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글로벌 보도 사진가 그룹 매그넘 에이전시의 소속 사진가 20인의 사진전이다. 매그넘은 유명한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외 3인이 1947년 창설한 유서 깊은 그룹이다. 유명작가들이 찍으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려는 듯, 전시는 작가 20명이 2006년 한국에 직접 방문해 찍은 사진들로 구성되었다. 매그넘의 이와 같은 방식의 프로젝트는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 시도였다. 매그넘의 명성과 더불어 국내 사진전 가운데 최대 관객을 유치한 이 전시는 관자들에 따라 호불호의 평가를 받았다. ‘역시!’라는 평가와 ‘기대 이하’라는 지적. 후자의 지적이 빈번했던 까닭은 진실을 기록하는 스트레이트 사진의 진면목이 오늘날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한 사진들에 길들여진 관객의 기호를 충족하기에는 미흡했다는 평가에 근거한다.
오늘날 사진의 위기 앞에서, 사진의 존재 근거란 ‘의미 있는 형식과 기록’임을 강변하려는 듯, 대형전시들은 기록이라는 사진 매체의 위상을 강조하는 유형이 유독 많았다.〈한국현대사진 60년:1948-2008〉(8.15-10.26, 국립현대미술관)이 대표적 예이다. 전시는 건국 이래 전쟁 휴유증, 독재와 개발시대의 현대화 과정, 민주화의 요구, 부의 편재와 가난한 민중의 대비, 한국의 자연과 같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기록들을 보여준다. 작금의 디지털 메이킹 포토의 실험까지 연계선상에서 함께 보여주고 있는 이번 전시는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전시기획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사진계에서는 작가선정에 이의를 제기한 비판 또한 없지 않았다.
〈사진의 힘-21명의 프랑스사진가들〉(10.30-2009.1.11, 성곡미술관)은 주한 프랑스 문화원 개원 40주년 기념 전시로, 21세기 프랑스 현대사진가 21인의 100여점의 오리지널 프린트들만 모아 기획되었다. 회화 같은 사진, 영화 같은 사진 등 중견작가들의 대규모 사진전이었다. 『2008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12.13-2009.1.15, 구 서울역사)은 ‘인간풍경(Human Scape)’라는 주제 아래 (안을) 바라보다, (타인을) 느끼다, (밖으로) 나가다 등의 3개의 소주제를 지닌 전시와 대중들의 참여를 유도한 다채로운 부대행사와 특별전으로 구성되었다.
특이한 제목의 〈39조 2항〉(12.6-2009.2.15, 아트선재센터)은 전시주제를 병역의무에 관한 헌법조항에서 따왔다. 전시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한국사회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그것에 관한 우리의 기억을 현대적 어법으로 다듬어낸 사진가들의 출품작들로 채워졌다.
『제1회 서울포토페어(SPF)』(4.9-4.13, 코엑스)가 사진인의 많은 관심 속에 출발했다. 아시아 최초 포토페어임을 알리는 사진전문지 포토넷이 주관한 이 행사는 갤러리 참여와 작가 참여를 병행하였다. 토마스 루프, 바네사 비크로프트 등 해외 유명작가와 더불어 국내 중견, 신진을 두루 포함한 이번 행사는 다수의 작품을 백만 원 이하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사진 작품 소장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지역에서의 대형전시와 다채로운 행사도 많았다.
『2008대구사진비엔날레』(10.31-11.16, 대구 EXCO)는 오늘날의 사진 담론을 포함하면서도 정치, 사회적 배경과 물리적 공간을 공유해왔던 동북아시아의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망각의 시간들을 거슬러 올라가 사진 매체의 출발지점을 되새기게 한 전시였다. 주제전인 〈동북아 100년전-오래된 기억〉이나 〈한중일 현대사진전-내일의 기억〉 모두 과거의 기록이란 중심축 아래 현재적 실험을 포함하는 전시들로 꾸려졌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진행사인 『제2회 대구사진비엔날레』는 10개국 200여명 작가, 1,500여점의 작품들이 참여한 가운데, 7만여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면서 국제전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특이한 점은 본전시보다 구본창 감독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세계의 유명 사진 전문가들을 초대해서 진행한 포트폴리오 리뷰 코너가 높은 평가와 함께 더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7회째를 맞이하는 『동강사진축제』(7.25-8.24)는 여기, 여기에서라는 주제로 지역주민과 사진 애호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방식의 행사로 기획되었다. 동강사진상 수상자전과 동강사진기획전-장소와 장소 상실이 개최되었고 동강사진상에는 작가 강홍구가 선정되었다. 부대행사로 세계 유명 큐레이터를 초청한 동강사진워크숍과 국제사진 워크숍이 진행되었고 이들과 함께 국내작가들의 포트폴리오 리뷰 등이 진행되었다. 대중과 사진전문가를 만나게 하고 서울중심의 행사로부터 이탈한 지역 사진계의 활성화를 위한 행사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전주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사진 워크숍 2008 전주〉(7.16-7.26, 전주 한옥마을)는 사진에 관심 있는 모든 참가자들이 성남훈, 노순택 등의 사진가와 송수정, 최연하 등의 기획자들과 함께 촬영과 포트폴리오 제작에 이르는 전 과정의 워크숍 행사를 열었다.
〈다음작가주니어 사진 페스티벌〉(7.22-7.23, 서울유스호스텔, 산림문학관)은 사진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 대상의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100명의 학생들이 구본창, 김중만, 이상엽 등 사진전문가들과 함께 미디어 교육 및 전문가 멘토링에 참여했다.
사진계의 수상 소식도 빈번했다.
김아타가 제6회 하종현 미술상을, 제1회 이동석 전시기획상 수상자로 한국 근대사진 아카이브 연구자인 이명민이 수상했다. 제7회 다음작가상 수상자로 탈북인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윤수연이, 2008강원다큐멘터리사진사업에는 백종하, 백지순, 이성은, 임재천, 임지원이 선정되었다. 사진비평상에는 평론과 작품 영역으로 나뉘어 김태정(평론 부문)과 김성훈, 김소희, 박승훈, 임상업, 장진희, 장지영, 전병철(작품 부문)이 선정되었다. 갤러리뤼미에르가 격년제로 여는 뤼미에르국제사진상은 핀란드 아리 카키넨이 수상했다. 한편, 이명동사진상은 2007년에 이어 2008년에도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했고 3회에 이른 한미사진상은 2008년부터 사진이론 활성화를 위한 학술연구프로젝트로 전환되었다.
II-2. 판화계의 주요 전시와 행사_사진계와 더불어 모색하는 외연 확장
판화계는 대중성의 기반을 상실해가면서 오히려 대중과 판화 애호가들을 적극 끌어안는 전시 유형이 대세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오랜 기획 이후 마련된, 〈한국현대판화 1958-2008〉(2007.12.14- 2008.2.10)은 1부 전시인 〈한국현대판화의 전개 1958-1989〉와 더불어 동시대 신진판화가들의 작품을 고찰하는 2부 전시인 〈한국현대 판화 신세대 흐름〉전을 마련했다. 50년 역사의 판화의 의의와 위치를 점검하는 대규모 기획전의 양대 흐름 중 하나를 최근 판화미술의 동향을 살피는데 주력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전시기획의 일반적 양상과는 차별점을 설정했다는 평가이다. 특히 2부 전시에서는 찍는다(print)는 판화의 원리를 고수하면서도 사진전사, 레이저컷팅, 캐스팅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판화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신세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학술행사와 고3 학생들의 관람후기 공모를 통한 유럽미술관 탐방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둔 것은 판화미술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취지로 읽힌다. 전시에는 최영림, 정규, 이항성 등 130여 명의 작가의 400여 점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판화계 미술인구가 그다지 많지 않은 관계로 인해, 중대형 규모의 전시들마저 비중감을 지닌다. 이들의 자족적인 세력 확장에는 사진계와의 연합이 최근 가시화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이른 복제미술의 외연확장이 초래케 한 자연스러운 결합이기도 하지만 판화계의 절치부심한 생존 전략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사)한국판화미술진흥회는 2005년부터 판화계의 단결된 미술행정의 노하우와 사진계의 급증한 미술인구를 수렴하는 방식으로 사진계와 힘을 합쳐 (사)한국판화사진진흥회로 개명하고 판화의 외연을 확장해온지 4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2004년 10회를 마지막 행사로 마감한 〈서울판화미술제〉가 2005년부터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로 변신하면서 글로벌아트페어로 외연을 확장해온지 4회째를 맞아 2008년은 11개국 63개 화랑 참여를 통해 행사의 덩치를 크게 키워냈다. 국고지원금 1억을 포함하여 총예산 4억 규모의 비교적 적은 예산이지만, 아트페어 운영의 노하우를 살려 다양한 특별전과 대중 대상의 프로그램들을 운영했다. 순수 미술제는 아니지만 대중들에게 SIPA는 판화와 사진의 흐름을 이해하는 길라잡이가 되었고 판화 및 사진 인구의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는 평가이다. 다만 갑작스런 글로벌 시장 침체로 아트페어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울러 (사)한국판화사진진흥협회는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으로 매년 진행해온 벨트 공모에서, 2008벨트아티스트로 김소희, 조현숙이 선정되었다. 아시아벨트아티스트는 SIPA에 참여했던 작가들 중 우수 작가를 선정하여 다음 행사에 초대하는 프로그램으로, 2008년에는 인도작가 딜립 샤르마가 선정되었다.
캐나다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순회하는 전시인, 제2회 『MAAPS 국제판화비엔날레(The Maritimes And Atlantic Printmakers Society)』(9.23-10.13, 한양여대 행원갤러리)는 캐나다, 미국, 한국, 중국의 4개국, 작가 48명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비엔날레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지만, 세계의 판화미술을 순회의 형식을 통해 조망하고 소개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이다. 2009년에 15회를 맞게 되는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_서울』이 국내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소 부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디지털 시대의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역시 외연확장을 두고 활로 모색에 적극적이다. 『200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는 출품조건을 '에디션이 가능한 모든 평면, 입체 작품을 원칙으로 하며 모노프린트, 디지털이미지, 기타 판화기법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작품도 포함됨'으로 명기함으로써 판화의 개념적 정의를 새로이 시도했다. 즉 디지털 프린트를 포함한 사진의 영역과 에디션이 가능한 조각의 영역까지를 두루 포함하면서 외연확장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드러낸 셈이다. 복제성와 복수성의 개념을 통해 전통 판화의 개념을 준수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변모하는 판화의 개념을 확장하는 시도를 통해 외연 확장을 시도한 이번 일반 공모전에는 김소희와 조현숙이 대상 없는 우수상에 선정되었다. 회원을 대상으로 한 2008신설 프로그램인 지명 공모전에는 작가 배남경이 V.A.P.(Very Active Printmaker)로 선정되었다.
한편, 판화과는 현재 극히 일부대학에 남아있다. 그 중 2008년 20주년을 맞은 추계예술대의 판화과의 2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성인식장〉(7.2-7.8, 관훈갤러리)이 열렸다. 판화과의 성년식을 축하하기 위한 단순 행사가 아닌 판화의 현재적 위상을 점검하는 의미 있는 협력프로젝트로 기획되어 동문작가, 재학생 등이 대거 함께 참여했다.
II-3. 복합을 내용으로 삼은 다채로운 기획전들_사진가, 판화가 그리고 미술가들의 조우
상업성, 비상업성의 경계 위에 올라선 사진과 판화 장르의 현재적 모색은 두 장르의 결합뿐만이 아니라 미술과의 복합적 양상을 지향한다. 즉, 이러한 복합의 기제는 사진과 회화, 조각 등의 영역이 교차하는 매체 확장의 의미로서의 내용은 물론이고, 사진, 판화 전공자 출신이 아닌 미술가들의 사진, 판화 매체를 통한 작업으로까지 지칭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다양하게 펼쳐졌다. 2008년에는 이러한 내용의 기획전들이 유독 많았다.
〈A Sweet Illusion〉(4.25-5.5, 갤러리한길)은 강은주, 노은정 두 젊은 기획자가 마련한 전시로, 일루젼을 착시가 주도하는 환영으로부터 확장되는 환상으로 재정의하고 사진을 미술과 이미지의 차원의 영역으로 조망하면서 꾸린 기획전이었다. 여기에는 조각의 과정을 거친 후 기록되는 사진, 사진에 가필된 회화, 사진 이미지를 재구성한 회화 등 다양한 조형언어를 담은 출품작들을 통해 사진과 회화, 실재와 가상의 미학을 다음의 멘탈 일루젼(mental illusion), 옵티컬 일루젼(optical illusion), 아티피셜 일루젼(artificial illusion)이라는 3가지 카테고리의 환영으로 조명했다. 황혜선, 양연화, 이민호 등 9인이 참가했다.
〈포토 온 포토그래프〉(7.4-8.17, 금호미술관)이나 〈사진, 회화를 입다> (10.8-28, KT아트홀) 또한 사진을 중심으로 장르의 매체 확장의 변모 지점을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획전이었다. 〈메타픽션전> (6.19-7.17, 두산갤러리〉은 ‘코리언 영아티스트’의 두 번째 전시로, 회화, 조각, 사진의 매체적 경계 확장과 실재와 환영 사이의 문제를 탐구한 작품들로 꾸려졌다. 구성연, 권정준, 유현미, 장유정, 주도양이 참여했다.〈풍경과 상상, 그 뜻밖의 만남〉(7.16-10.5, 아람미술관)은 일상의 풍경과 상상의 풍경을 매칭한 환영의 확장된 주제 아래 박형근, 백승우, 사타 등의 작가가 참여했다. 장르별 영역 확장에 따른 관심이 표방된 위와 같은 전시 외에도 사진을 이미지의 위상으로 재고하면서 텍스트와의 관계를 조망한 〈메타-텍스트, 메타-이미지〉(10.17-11.9, 광주시립미술관) 역시 사진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사진전에 참여한 미술가 출신의 사진작업들이 눈에 띄었다. 〈2008Wake Up_한국사진의 새로운 탐색〉(2.13-2.26, 김영섭사진화랑, 갤러리룩스, 갤러리나우, 아트비트갤러리)은 4개의 사진전문 갤러리의 연합전이다. 큰 주제 아래 각기 다른 소주제들로 이루어진 이 전시에는 강홍구, 김병걸, 이민호, 이소영, 전소정 등 주로 미술의 장에서 활동하던 이들의 사진 작업들이 두루 포함되었다. 〈포토...포토?〉(3.14-4.6, 갤러리선컨템포러리)에서도 고상우, 김준, 데비한, 임상빈, 이상현, 홍성도 등의 사진 비전공 미술가들의 사진계 진입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었다. 최근에 이르러 이와 같은 양상은 사진 매체 뿐 아니라 판화 매체의 다수의 기획전에서 보편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특히 앞서 언급한『2008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에서, 특별전으로 마련되었던 〈다양한 매체에서 탄생된 예술작품의 시나리오〉는 윤세희, 함영훈, 임택, 안세권, 베른트 할브헤어, 김정명, 홍지윤, 이장원, 신은주 등, 각자 사진이나 판화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외에도 대다수가 회화, 조각, 비디오 영상, 한국화의 장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미술가들의 사진, 판화 매체 접목의 작품들을 대거 선보였다.
II-4. 만개한 개인전-미시적 세계들의 파노라마
국내 사진인구의 증감과 판화계의 외연 확장 등을 통해 외국작가의 국내 개인전과 국내작가의 개인전이 만개했다. 먼저 외국작가의 국내 사진 개인전을 살펴본다. 〈윌리엄 클라인〉(2007.12.15-2.17, 갤러리뤼미에르), 〈아라키 노부요시〉(2007.12.8-1.12, 금산갤러리), 〈샌디 스코틀랜드〉(2007.12.6-2.3 공근혜갤러리), 〈칸디다 회퍼〉(1.25-2.26, 국제갤러리), 〈다니엘 리전〉(5.28-6.10, 갤러리나우), 〈토마스 엘러전〉(2.20-3.22, 더컬럼스갤러리), 〈옌스 울로프 라스테인전〉(3.8-4.19, 한미사진미술관), 〈헬렌 반 미네전〉(3.6-4.26, 아이엠아트갤러리), 〈엘코 블랑전〉(3.12-4. 27, 갤러리뤼미에르), 〈베르나르 보이타전〉(6.5-6.28, 가인갤러리), 〈수잔 더저스전〉(6.13-7.13, 조현화랑),〈후우궁전〉(7.2-7.15, 아트비트갤러리), 〈조엘 메이어로이츠전〉(7.3-8.3, 공근혜갤러리), 〈베르너 크루거전〉(7.3-8.5, 더컬럼스갤러리), 〈아리 카키넨전〉(7.10-8.10, 갤러리뤼미에르), 〈조루즈 루스전〉(7.25-8.30, 조현화랑), 〈빅 뮤니츠전〉(8.6-8.31, 가나아트센터), 〈윌리엄 핸드릭스〉(9.18-9.30, 갤러리안단테), 〈디오니시오 곤잘레스전〉(9.19-10.24, 더컬럼스갤러리), 〈매기 테일러전〉(9.26-10.24,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필립 퍼키스전〉(9.27-10.9, 갤러리온), 〈제임스 케스비어〉(10.21-11.12, 갤러리인), 〈구와바라 시세이〉(12.13-2009.2.21, 한미사진미술관) 등의 다양한 국적의 해외작가들의 국내 개인전이 열렸다.
사진계의 국내작가의 개인전 역시 다채로운 양상으로 만개했다. 2008년의 개인전들이 내세우고 있는 주제들은 사회와 일상 기록, 인간 정체성 탐구, 사회비평, 사진매체 탐구 등 매우 다양하다. 연령, 장르 및 주제 구분을 생략하고 전시 일정 순으로 분기별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바늘구멍사진을 통해 25인의 작가 작업실을 들여다본 <노정하_예술가의 방〉(2.20-3.4, 가나아트스페이스)을 시작으로, 부산의 원로사진가로 긴 세월동안 작업해온 인간을 주제로 한 〈최민식전〉(2.22-3.30,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카메라의 장시간 노출과 이미지 중첩 방식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자신의 철학을 심화시킨 <김아타_On Air〉(3.21-5.25, 로댕갤러리), 사물의 근원을 탐구한 <한정식_고요 II〉(4.5-5.31,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역사적 기록 사진에 도발적 접근을 감행하는 이상현의 〈제국과 조선전〉(4. 26-6.7, 한미사진미술관), 가까운 가족의 죽어감을 숙엄하게 담아낸 <최광호_가족〉(5.9-18, 노암갤러리)이 여름 이전의 사진계의 화제를 이루었다.
여름 시즌에는, 오십 여년 만에 회고전 형식으로 개인전을 연 김희중의 〈집으로 가는 길〉(6. 4-8. 3,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외에, 철사로 만든 인체 형상에 여성 속옷을 입힌 후 촬영하여 여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드러낸 정소영의 〈황금빛 새장전〉(7.9-7.22, 갤러리나우), 모조정원을 탐구하는 <전은선_이브의 정원〉(7.18-7.24, 갤러리카페브레송), 세계 분쟁지역을 촬영해 온 작가의 티베트 마을 캄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의<성남훈_연화지정〉(7.29-9.12, 한미사진미술관), 신혼여행과 몽골여행을 기록한 <김홍희_두 개의 세계, 하나의 길전〉(8.9-9.28,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붉은 양비귀꽃을 촬영한 사진을 전통한지에 프린트한 <정창기_The Poppy〉(8.13-19, 인사아트센터)이 열렸다.
가을 시즌에는, 일상 사물과 공간을 하얗게 표백시킨 <임안나_White Veil〉(10. 8-14, 갤러리이즈), 자신의 두 딸을 지속적으로 촬영해 온 <정현자_16세〉(10.8-10.14, 인사아트센터), 검프린트 기법으로 인화한 조약돌 이미지의 <김수강_조약돌〉(10.11-11.9, 공근혜갤러리)이 있었다. 겨울에는 아줌마 시리즈 이후 특정 계급의 관찰을 지속해온 작가의 10대 소녀의 화장과 둘러싼 여성 정체성을 추적한 <오형근_Cosmetic Girl〉(11.28-12.31, 국제갤러리)와 각계 각 층의 미혼여성을 추적한 <백지순_싱글1 : 그녀가 되다〉(12.10-23, 아트비트갤러리)이 이어졌다.
2008년에는 도시 및 일상, 자연과 인공 등 풍경에 대한 기록과 재해석이 담긴 시도가 여전히 많았다. 관련한 주요전시는 다음과 같다. 한국적 정체성을 탐구해온 작가가 파리의 스산한 풍경을 담아낸 <이갑철_파리의 얼굴〉(2007.12.15-2.23, 한미사진미술관)을 시작으로, 헬리콥터를 타고 구글어스와 네비게이션을 활용하여 한강 상공을 촬영한 <이득영_한강 프로젝트 II : 25개의 한강다리〉(2.22-3.13, 쿤스트독갤러리), 회색톤의 심오한 정적 풍경사진을 보여준 <민병헌_Deep Fog〉(4.15-5.14, 카이스갤러리), 7년만의 개인전으로 고즈넉한 농촌풍경을 기록한 <강운구_저녁에〉(9.27-12.6, 한미사진미술관), 모노톤의 잔잔한 풍경을 보여준 <이정진_Things, Wind, On Road〉(10.4-11.29,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커다란 천을 바탕으로 나무를 촬영하는 프로젝트로 유명한 <이명호_Tree〉(10.16-11.19, 갤러리잔다리), 45여년의 사진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3회의 연속 개인전 중 첫 번째 전시로 마련된 도시풍경을 보여준 주명덕의 〈도시 정경〉(11.6-2009.1.18, 대림미술관), 그리고 원전 주변 바닷가의 불안한 풍경을 담아낸 <정주하_불안, 불-안〉(5.17-7.27, 아트선재센터) 등이 풍경에 대한 재해석이 두드러진 전시였다.
그 외에도 <안세권_서울, 침묵의 풍경〉(3.28-4.20, 청계창작스튜디오), <최영진_서쪽 바다 새만금〉(6.2-6.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상엽_청계의 나날들〉(6.17-6.30, 대안공간건희), <김동욱_오래된 사진첩〉(7.16-7.27, 갤러리담), <조문호_산을 지우다〉(8.6-8.22 통인옥션갤러리), <최중원_디지털 노스탤지어-스치던 풍경〉(12.4-2009.1.6, 트렁크갤러리), <박홍순_서해안〉(12.13-2009.2.21)이 있었다.
한편,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응용으로 사진, 판화의 장은 이전의 이미지 생산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주제와 내용에 천착하는 작가군을 형성시켰다. 2008년에는 가상과 실재, 환상적 리얼리티와 같은 주제와 메이킹포토, 디지털프린트와 같은 확장된 매체 조형언어가 진일보한 양상들이 두드러졌다. 구체적으로 디지털 몽타주 등 합성, 변형 기술을 통해 이미지의 변형 재생산을 창작의 주요 기반으로 삶은 젊은 작가 층의 대두가 가시화되었다는 평이다. 여기서는 사진매체를 중심으로 개인전을 살펴본다.
유화로 그림을 그린 후 이를 다시 촬영하거나 프린트된 사진 위에 회화적 가필을 감행하면서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권두현_Paractical Illusion〉(1.3-1.17, 갤러리현대), 건물 사진과 그것을 재현한 미니어처 설치작과 그것을 다시 찍은 사진 등 실재의 재현과 실제의 제시를 조각과 사진들로 선보인 <한성필_재현, 제현〉(2.28-3.13, 세오갤러리), 현실의 공간에 개입하는 환상과 비현실의 포토합성의 <원성원_Tomorrow전〉(3.7-4.4, 대안공간루프), 멀티미디어아티스트의 조각, 설치, 회화, 사진이 교류하는 <전소정_The Finale of a story〉(5.22-6.22, 공근혜갤러리), 세계 각국에 실재하는 공간과 건물을 디지털테크놀로지로 변형하여 상상의 비현실적 공간으로 재축조한 <임상빈_Recent Works〉(8.27-9. 21, 갤러리선컨템포러리), 근대적 공간을 드러내는 영화세트장을 배경으로 영화와 현실이 교차하는 자기연출과 자기복제를 시도한 <난다_모던걸의 경성 순례기〉(10.1-10.7, 가나아트스페이스)와 같은 메이킹 포토와 매체 확장이 눈에 띤다.
비교적 전통적 촬영방식을 통한 사진미학을 드러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현대적 언어를 발휘하는 작가들의 개인전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남겨진 군사시설을 추적해서 현실계를 은유하는 <최원준_Undercolled〉(3.5-3.23, 대안공간풀), 인물의 연출 사진을 통해 사건의 내러티브를 암시하는데 집중한 <양재광_사건의 전야〉(3.25-4.8, 갤러리온), 눈속임 기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실재와 환영의 심각한 미학를 재미의 차원으로 변환시킨 <양정아_리리얼 일루젼> (5.23-29, 갤러리카페브레송),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장사지내고 그 과정을 자신의 언어로 기록한 <여락_Requiem for Life〉(8.30-9.21, 북하우스아트스페이스), 각기 다른 시간에 일하는 파트타임 노동자들을 무표정한 얼굴들로 한 공간에 만나게 해서 시공간에 따라 살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표상한 <김상길_Layer〉(9.3-10.2, PKM트리니티갤러리), 건물내부 모서리에 앵글을 맞춰 낯선 기하학적 화면을 만든 <김도균_KDK〉(9.23-11.18, 갤러리2), 운동선수의 운동 장면을 촬영하고 이를 회화적 형식인 캔버스에 담아낸 <오상택_Sports〉(10.16-11.2, 브레인팩토리), 영국의 근대적 여인상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여 이방인의 정체성을 담아내었던 <배찬효_Existing in Costume〉(11.6-12.2, 트렁크갤러리)이 대표적이다.
최근의 실험적 사진이나 판화는 회화, 조각, 설치의 영역의 넘나들며 다매체 활용을 적극적으로 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사진계나 판화계에서는 미술계로부터 사진을 활용한 작가들이 주도하는 실험에 오염된 결과라고 판단하는 이도 있지만, 이러한 비판 역시 전반적인 미술의 장을 풍성하게 하고 각 장르의 영역의 반성과 고민을 수렴하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대세이다. 개인전들은 결국 매체를 다루는 기법이나 형식을 넘어서 자신만의 내밀한 주제, 내용 등 작가의 미시적 세계를 드러내는 장이다. 2008년은 사진 및 판화계에서 다채로운 미시적 세계가 커다란 장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이었다.
III 미디어아트-설치미술미디어아트라는 지칭은 또 다른 용어들(영상미술, 테크놀로지아트, 멀티미디어아트, 뉴미디어아트, 웹아트, 인터넷아트, 디지털아트)의 맏형 격 쌍생아이다. 애초의 출발이 비디오아트와 같은 영상미술 뿐 아니라 키네틱아트 류의 기계적 테크놀로지를 포함한 ‘미디어 활용의 예술’을 통칭하면서 출현했다는 점에서, 미디어아트는 비교적 구식의 용어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예술을 이것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디지털아트, 뉴미디어아트 등의 용어가 새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미디어아트라는 용어는 오늘날 다종의 변형된 유형을 두루 포함하면서 예술현장에서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상용어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더욱이 이 글에서는 복합과 영역확장이라는 다원화된 미술유형의 흐름을 선도하는 장르가 미디어아트라는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되는 설치미술(여기서는 주로 미디어설치)로 통용되는 다매체 통합적 형식의 미술유형을 함께 고찰하고자 한다.
III-1. 융합과 통섭의 시대_문화의 장에서의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
2007년 미술시장의 호황과 더불어 매체의 속성상 비교적 상품성을 갖추지 못한 미디어아트의 약세가 두드러졌다면, 2008년 한해는 갑작스레 맞닥뜨린 미술시장의 불황 속에서, 상품성에 연연해하지 않는 미디어아트의 약진과 설치미술의 강세가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술시장과의 상관성 뿐 아니라, 정부의 미디어(정확히는 디지털미디어) 부흥 정책과 부합하려는 학계와 산업계의 협력체제가 구축되어가는 현재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디지털미디어 부흥 정책과 산학 협력체제가 해당 산업 전문가나 미디어아티스트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테면 한국의 전자기술연구소(ETRI)가 ‘와이브로’ 기술을 개발하는데 통신 문화와 별리한 채 기술개발에만 역점을 두었던 것과 같은 일방적 개발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고답적인 교육체계는 과학과 문화예술을 결합한 연구소나 대학원의 문화콘텐츠 기술개발에 대한 연구실적을 인정하기 보다는 과학, 공학 분야의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에 보다 더 집중해왔다.
그러나 예술을 포함한 콘텐츠 차원의 미디어정책과 산학 협력체계가 아주 최근 활성화되면서 미디어아트 분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이른바 통섭과 융합의 모색이다. 2008년 한해 교육계에서는 ‘통섭형 인재 양성을 위한 자유전공학부 설립’(서울대), ‘신개념 연구소(KI) 설립 및 8개 융합연구소 구성’(KAIST),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섭하는 단과대 설립’(고려대), 통섭원 개원 및 정기포럼 개최‘(이화여대)가 있었다. 나아가 미디어아트 관련 융합 연구를 위해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에서는 학제간 융합체제와 더불어 다양한 랩과 연구소 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한예종 역시 2009년 학내외 문제로 걸림돌에 봉착하기는 했지만, 2008년까지 U-AT통섭교육에 박차를 가해왔다. 더불어 각 지자체는 융합기술 연구소를 개원(경기도)했거나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 간 통섭과 융합이 상업적 자본에 이끌려 다니기 전에, 미래적 문화 환경을 위한 콘텐츠 창출과 더불어 사회 제반의 정책과 공유되어야 한다는 지점이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가 ‘인문사회_과학기술 학제 간 융합연구 지원사업’을 출범하면서 2008년 7월 예술, 인문사회분야 전문가와 과학기술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던 ‘문진포럼’이나 ‘과학문화융합포럼(SciArt)’의 발족은 융합에 따른 정책적 지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포럼은 관련 정책 연구와 조사, 각종 행사, 융합 재원 육성 등의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예술과의 통섭과 융합을 기조로 한 문화행사로는 〈2008 과학과 예술의 만남〉(11.14-11.20, 국립과천과학관)이 열렸다.
그런데 미디어아트와 복합형 설치미술의 장르가 미술의 장에서 보다는 지역축제나 이벤트행사와 같은 범주 안에서 발표되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는 사실은 대중과의 소통을 넓힌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임에도, 미술계의 질적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각종 문화이벤트나 축제의 부대행사의 필요에 의한 예술의 도구화를 자초하거나 이러한 이벤트나 조형물 사업에만 전문적으로 뛰어드는 미술가들을 양산해내기 때문이다.
III-2. 통섭에 대한 오해-대형 미술행사에서의 미디어아트와 설치
융합 혹은 복합이나 통섭은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의 장르별 정체성을 규명하는 한 차원이다. 미술과 예술 간 결합, 미술과 비미술 간의 매체와 장르적 경계 허물기인 이 융합이 통섭으로 오인되면서 미술(특히 미디어아트)이 과학의 기능화나 도구화를 위한 실험의 방편으로 작용해온 지점이 없지 않다. 통섭(統攝)은 원래 ‘모든 것을 다스린다, 총괄하여 관할하다’는 의미의 성리학과 불교에서 사용된 용어로, 2005년 국내의 한 학자가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1998년 저서 중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으로 번역, 재사용하면서 국내에서는 ‘지식 간의 대통합’을 넘어 ‘영역 간의 (수평적) 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지칭되어 왔다. 이 ‘통섭’이 마치 학문(영역) 간 동등하고 상호적이며 쌍방향의 조화적 합일의 차원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지만, 기실 통섭이란 번역의 원어인 컨실리언스의 본뜻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흡수되는 통합을 의미한 것이었다. 이 통섭에 대한 오해가 최근 학문의 통합연구나 정책 등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적어도 미디어아트에서는 통섭보다 융합이 보다 적절한 용어가 될 것이다. 용어에 대한 오해만큼이나, 예술의 장에서는 미디어아트와 통합하는 다른 영역 입장에서의 예술의 도구화를 촉발시키게 만들거나 미디어아트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대중들의 기호의 대상으로 부각시켜 온 비판 또한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제5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9.12-11.5 서울시립미술관)는 예술마저 통섭을 선도하는 작금의 사회적 현실을 조명하기보다는 미디어아트의 예술적 정체성에 집중하는 주제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 대형전시에는 ‘전환과 확장’이라는 주제 아래 이 시대에 새로이 정착한 미디어아트의 정체성을 되묻는 기획이 펼쳐졌다. ‘빛, 소통, 시간’이라는 세 가지 섹션 구분은 미디어아트 본연의 매체적 위상을 재검토하는 장치였다.
그런데 문제는 선정된 작품들의 많은 부분이 형식의 외면만 섹션에 부합할 뿐, 다분히 테크놀로지와 미술의 융합, 작품과 관객과의 쌍방형 소통에 골몰한 것들이었다. 크리스토퍼 토머스 알렌의 〈대화〉는 언어를 구사하고 대화하는 기계의 인공지능의 극한을 실험하고, 코리스타 솜머리와 로랑 미뇨노의 〈생명을 쏘는 타자기〉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서 타자기로 쓰여진 텍스트가 생명체로 둔갑하는 인공생명의 테크놀로지를 가상적으로 구현하는 등 미술이 테크놀로지와 관객의 접점의 문제에 골몰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차원에서 출품작들처럼 최근 첨예화된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면모들을 범상하면서도 근원적인 주제, ‘빛, 소통, 시간’이라는 섹션으로 가두어두기에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없지 않았다. 게다가 ‘전환과 확장’이라는 주제는 출품작들의 양상을 이론적 안전망 속에 포획할 수 있는 넓은 주제이면서도 너무 보편적인 주제라서 구태의 기획이론이라는 지적 또한 없지 않았다.
다만 시기가 좀 늦었을 뿐, 보편적 주제로 일반 대중들에게 미디어아트의 위상을 제대로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모가 없지 않다. 26개국의 70개 팀이 참가해 77점의 작품을 선보인 이번 비엔날레에는 사진, 디지털영상, 키네틱아트, 미디어설치, 인터랙티브아트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미디어아트가 소개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출품작 분류와 이에 따른 합리적 전시 공간 연출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한편,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 관련, 2008 대형미술행사로 단연 손꼽히는 것은 백남준아트센터 개관』(10.8)이었다. 백남준이 오래사는 집이라고 명명된 아트센터는 경기문화재단의 백남준아트센터건립추진팀이 마련되어 2003년 국제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한 독일인 크리스텐 쉐멜 (Kirsten Schmel)의 설계안에 기초한 마리나 스탄코빅(Marina Stancovic)과 공동설계로 구체적 윤곽을 드러내면서 2006년 착공에서 완공까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되어 왔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설립 과정에서, 백남준의 사망, 경기도와 백남준 유족과의 갈등, 백남준이 기증한 소장품 2000여 점, 국내 최초의 외국인 큐레이터와 이영철 관장 선임 등으로 연신 화재를 일으킨 바 있다. 이윽고 2007년 백남준의 사후 2008년 마침내 완공, 개관하여 한국미디어아트의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개관기념행사인 백남준페스티벌인 〈NOW JUMP〉(10.8-2009.2.5)은 정거장을 의미하는 총 5개의 스테이션(station)으로 구성되었다. ‘방송국, 연구기관, 스튜디오, 지역의본부, 거주지,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는 구분이 그것. 이 다섯 가지 스테이션은 각각 전시, 퍼포먼스, 담론 생산의 플랫폼, 백남준 예술상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스테이션1(백남준아트센터 1층)은 플럭서스 멤버들과 백남준의 관계를 조명하는 도큐먼트와 작품들로 꾸며졌다. 백남준의 초기 예술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형 전시인 셈이다. 스테이션2(백남준아트센터 2층)는 전시 형태로 꾸며진 퍼포먼스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즉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어섰던 플럭서스 시절의 백남준의 퍼포먼스를 기리기 위해 전 세계에서 초대된 20여 개의 퍼포먼스 공연이 개관 이후 3개월 동안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결국 전시의 형태로 정리되는 것이었다. 스테이션3(백남준아트센터, 신갈고등학교, 지앤아트스페이스)은 개관기념전 주제 NOW JUMP를 전시의 형태로 실현하고자 하는 희망을 담았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부제처럼, 스테이션3은 아트센터에서 펼쳐진 생태도시 건축 설계에 골몰해왔던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의 프로젝트 스케치 및 조형물과 백남준아트센터와의 조화, 신갈고에서 펼쳐진 건축가 조민석의 프로젝트, 그리고 테마라기보다는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실천적 상황을 설정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함께 조응하는 형태로 백남준에 대한 오마쥬를 드러내는 장으로 꾸며졌다.
한편, 스테이션4는 워크숍, 국제 심포지엄, 저널 등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 한마디로 담론의 장이었다. 마지막으로 스테이션5는 2009년 백남준 예술상과 그 선정 결과에 따른 전시로 예정되어 있는 장기적 프로젝트로 마련되었다.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담론 생성의 장에 대한 고려, 신선한 발상의 기획, 거대미술행사 치고 손에 잡히는 파격적인 카탈로그 등 백남준아트센터 건립 기념페스티벌은 정형화되고 구습에 찌들어있는 한국미술계에 미치는 긍정적 파급력이 내내 읽히는 좋은 모델로 남았다. 통섭이 아닌 백남준 식의 융합이 현실화된 느낌이다.
각 지역의 글로벌 지향의 미술행사 또한 미디어의 매체 간 융합과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면서 그 수가 점차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2007창원아시아미술제』가 미디어아트에 특화된 전시를 구현했던 반면, 2008년도 같은 행사의 본전시는 설치형 미디어아트가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III-3. 융합의 현장적 실천_내실 있는 미디어아트 기획전과 전시 매개체
미술가들이 비디오아트의 유형으로 개인전을 발표하면서 천천히 국내미술현장에 파급되었던 미디어아트는 당시 로우테크놀로지가 대부분이었지만, 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전신인 <미디어시티 서울>이 2000년부터 치러지면서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이테크놀로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미디어아트 관련 아트센터나 대안공간 등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작가지원 프로그램이나 워크숍 등이 펼쳐지면서 최근의 미디어아트는 첨단의 디지털테크놀로지와 결합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미디어아트(특히 디지털아트, 뉴미디어아트)의 포럼 및 워크숍 또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이론 뿐 아니라 실무 차원의 작가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아트센터 나비는 2000년 개관한 이래 대표적인 미디어아트 매개체로 자리잡아오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는 모체인 통신기업의 특성을 살려 뉴미디어 테크놀로지가 담고 있는 상호관계적 커뮤니케이션을 생산하는 미디어아트에 주목하고 이를 양성,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펼쳐나가고 있다.
뉴미디어아트 이론 연구를 위한 『2008나비 포럼』(9-10월)은 ‘뉴미디어와 예술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디지털미학, 게임미디어와 예술, 확장된 예술공간, 크리에터의 역할, 새로운 예술과 문화산업이라는 강연이 펼쳐졌다. 실무적인 테크놀로지 운용에 관한 워크샵 프로그램인 『2008나비아카데미』는 여름(7-8월)에는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를 통한 영상제어와 제작 훈련을 도모했고, 가을(9월)에는 하드웨어를 통한 사운드의 이해와 접목을 위한 기술 워크샵을 가졌다.
한편, 아트센터 나비의 예술 참여형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3회째를 맞이한 『프로젝트 I(아이) 3.0』에서는 양아치, 장우석, 이정화 등 십여 명의 미디어아티스트들이 전국 7개 도시의 약 90여 명의 공부방 어린이들을 찾아가 일명, ‘21세기형 종합선물 세트’인 ‘미디어 킷(media kit)’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행사의 다수를 미디어아트에 할애하는 대안공간 루프 외에 미디어아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매개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2005년 국내에 들어온 청담동의 비트폼갤러리가 2007년 11월까지 괄목할만한 활동을 보이다가 결국 폐관을 했고, 청담동의 트리아드 갤러리 역시 2008년부터 전시지원활동이 거의 중단되었다. 미디어아트센터를 표방했던 일주아트하우스의 폐관(2005)이 상기시켰던 씁쓸함이 오늘날 미술현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즉 컬렉팅이 곧 재화가치를 창출해오는 미술의 매체적 특성이 유독 적용되지 않는 지점이 바로 미디어아트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컬렉팅의 어려움은 비단 미디어아트 뿐 아니라 퍼포먼스아트나 설치미술의 유형에 집중하는 모든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공유지점이다. 시장의 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이러한 특성 때문에, 미디어아트의 매개체들은 힘들게 자신들의 활동을 이어간다. 이런 차원에서 대안공간 루프는 젊은 작가의 신작을 선보인 〈Korea Episode1-보이지 않는 위험〉(1.4-1.14)이나 개인미디어의 보급이 보편화된 오늘날 대중미디어의 편협한 시스템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비판하는 영상설치전, 〈드라마 방송국 2.0전〉(12.4-12.23)과 같은 유의미한 전시를 조직했다. 또한 인터넷 웹진으로 미디어아트 담론을 생산해내는데 주력하는 앨리스온(AliceOn)이 오프라인의 장에서 기획한 〈렛잇스노우, 렛잇미디어아트(Let it snow, let it media art)전〉(12.11-12.29, KT W갤러리)는 작은 전시였음에도 의미가 있었다. 미디어아트에 대한 이러한 대안적 매개체들의 행사들은 열악한 미디어아트 현장에서 큰 덩치의 매개체는 아니지만, 내실 있고 알찬 주요한 매개체의 위치를 담보하고 있다.
2008년 미디어아트의 융합에 대한 실천적 장은 주로 자생력을 갖춘 기업형 기관이거나 대학의 연구소가 타기관들과 연합하여 주도하는 형태가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2001년부터 개최되어왔던 『이화미디어아트페스티벌(EMAF)』은 이화여대캠퍼스센터(ECC)의 준공을 기념하면서 새롭게 조직한 『MEDIA ART FESTIVAL in ECC』을 개최했다. 랜드마크로 인식되는 건물들 사이에 레이저아트를 통한 퍼포먼스가 장관이었던 이 페스티벌은 무사시노미술대학과 다마미술대학의 교수와 학생들이 이화여대 학생들과 공동 워크숍을 통해 발표한 작업들을 선보임으로써 기관과 기관의 연대를 통한 협력적 체계를 구축하였다. 교육지형과 예술 창작의 현장을 축제의 형식으로 공유함으로써 미디어아트의 발전적 미래를 도모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2007년 이래 토탈미술관이 매년 기획하는 국제미디어아트전시인 〈디지털플래이그라운드(Digital Playgroud)2008전〉(7.22-8.24)은 중앙대와 이화여대의 미디어랩이 공동 참여함으로써 전시공간과 대학 연구소들이 연대한 유형의 전시로 꾸며졌다. ‘도시를 해킹하라((Hack the city!)라는 주제 아래 서효정, 양아치, 이배경 등 한국작가 10여명과 다수의 해외작가가 앞서의 기관들과 연대하는 워크숍과 퍼포먼스를 통한 과정형 창작에 집중함으로써 전시는 결과형 전시에 초점을 맞추어 온 여타의 미디어아트전과는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그러기에 전시는 토탈미술관 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도시를 해킹하라’는 주제는 실상 ‘도시개발’에 대한 역설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이번 전시는 도시 사이트에 예술가들이 미디어를 활용한 전방위 액티비즘을 통해 개입함으로써 미디어아트의 다양한 실험적 모색을 펼쳤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대안공간 루프가 기획한 〈확장된 감각_한국 일본 미디어아트의 현재전〉(5.30-6.19 대안공간루프) 또한 숭실대 BK21 디지털영상산학공동사업단, 일본의 인터커뮤니케이션센터(ICC) 그리고 무사시노미술대와 공동주최한 미디어아트 교류전이었다. 9월에는 일본 ICC에서 전시가 이어진 이번 전시의 목적을 주최 측은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확장된 감각으로서의 미디어 아트, 둘째, 21세기 디지털시대를 이끌어가는 아시아와 한국, 일본의 현재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술전시공간(유통, 소비)과 대학 미디어랩(학술적 생산)과의 결합이 그것이다. 마지막 전시목적은 연구의 장과 실천적 현장의 접목을 통해 미디어아트의 발전적 전망을 도모하고자 시도한 기관 간의 연대이자 미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III-4. 해외 거장들과 한국 신진들의 대결_국내외 개인전
국내의 미디어아티스트의 거장이라면 이미 고인이 된 백남준 외에 한국의 비디오아티스트 1세대로 평가받고 있는 고(故)박현기(1942-2000)를 꼽을 수 있겠다. 고인의 유작전인 〈박현기 유작전-현현(顯現)〉(9.30-10.9, 대구문화예술회관)은 그의 사후 8년여 만에 열렸다는 점에서 주요하다. 그는 비디오매체를 통해 동양의 명상적 시간관을 드러내는 작품을 해왔다. 초창기인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등 3파트로 구성한 총체적 회고전으로 꾸며졌다. 무제, 물반영, TV어항 등 1970년대 초기 비디오 작품들과 도심을 지나며(Pass through the city), 전달자로서의 미디어(Media as translators) 등 1980년대 퍼포먼스 자료, 현현’, 만다라 등 1990년대 설치와 영상프로젝션 작품들이 연대기별로 구성되어 그의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는 전시였다.
해외 미디어아트의 거장의 회고전으로, <빌 비올라_Transfiguration〉(6.27-8.17, 국제갤러리)이 있었다. 예정된 전시일정을 훌쩍 넘겨 연장 전시한 그의 회고전은 신작들로 꾸며졌다. 연극적 상황연출과 느리게 상영되는 방식의 이전 작품들처럼 슬로우 메타포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그의 전시는 물과 어둠 그리고 빛이 교차하는 종교의식과 같은 신성하고 엄숙한 풍경을 연출해냄으로써 작금의 국내신진작가들이 구사하는 비교적 가볍고 속도감 있는 접근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미디어미학을 펼쳐내었다.
거장의 품격이 느릿느릿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진대, 국내 미디어아티스트들 중 중견에 이른 50-60년대 출생 세대들의 관심은 비교적 이미지와 실재의 문제의식을 표방하면서 빌비올라와는 다른 성격의 느릿한 미학을 창출해 온 편이다. 대표적으로 실재와 가상의 문제에 천착해온 김창겸의 2008년 네 번에 이르는 개인전은 중국, 대만, 일본 등 모두 해외에서 열렸다. <이용백_plastic> (9.2-10.26,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은 피에타를 다룬 거대조각으로부터 이미지와 실재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다종다양한 설치, 영상, 개념미술의 양상이 혼재한 멀티미디어적 미디어아트 전으로 구성되었다.
젊은 작가로서 활발한 해외 활동 후 3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 <박준범_Absolute Faithful〉(10.7-11.2, 갤러리현대)은 작가가 설정한 상황 속 영상들이 주가 된 미디어영상들이 주를 이룬 전시였다. 그의 작가적 상상력은 일상적인 풍경을 위트 있게 왜곡하고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하지만 그의 인위적 풍경은 현실에 대한 뼈 있는 풍자에 대한 시선도 놓치지 않고 있다. 현실에 대한 풍자는 <한계륜_누드의 민망함에 관한 연구〉(5.27-6.5, 갤러리쿤스트독)에서도 포착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불편한 누드로서의 만남을 왜곡된 이미지로 전달해주고 있는 그의 영상은 현실계에서 가능했던 뉴스와 가십거리의 이면으로부터 욕망과 제도 사이의 비평적 시선을 슬그머니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임민욱_점프 컷〉(8.23-10.12, 아트선재센터)은 배경은 그대로인데 등장인물의 연속적인 장면 사이를 잘라 의도적인 단절을 연출하는 ‘점프 컷’이라는 영화 편집방법을 전시 주제로 내세워 갑작스레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사회의 압축되고 생략된 현대성을 비판적으로 풍자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전쟁 전후 세대 간의 갈등과 소통의 부재를 다룬 <잘못된 질문 Wrong Questions>(2006)과 도시 개발에 대한 환상과 그로 인한 좌절을 다룬 <뉴타운 고스트 New Town Ghost>(2005)의 작업들이 대표적이다. 그녀의 점프컷 영상전략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영화 <희생(Offret-Sacrificatio)> (1986)을 점프 컷 방식으로 8분 분량으로 편집한 이번의 영상 작업 〈희생-점프컷〉에서 극대화된다. 다큐멘터리 사진, 영상 외에도,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가 조합된 그녀의 미디어아트 개인전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간극과 틈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에 족했다.
그 외에도 이글에서 생략된 주요개인전이 다수 있다.
한편, 오브제가 주도하는 설치적 유형의 미술은 앞서의 미디어와 조우하면서 미디어설치, 미디어스컵쳐(비디오스컵쳐)를 형성시키거나 때로는 회화, 때로는 조각과 조우하면서 조각적 설치 혹은 설치적 조각의 범주를 넘나든다. 설치미술과 관련해서는 회화, 조각 등의 매체를 다루는 다른 필자의 글과 상충될 수 있기에, 이 글에서는 여려 유형의 설치미술을 따로 떼어 언급하기 보다는 미디어와 관련된 설치미술을 미디어아트와 함께 고찰하는 선에서 글을 정리한다.
IV. 서예 IV-1. 전통과 영역 확장의 사이를 오고가는 현대서예
무엇보다 서예계에서는 『2008서울서예비엔날레』(5.27-6.9,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물파공간)가 화제였다. 임계선상을 주제로 내건 비엔날레는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미국, 캐나다 등 15개국 70여 명이 참여하는 〈국제현대서예전〉을 비롯하여, 〈한국서예정신전〉, 〈수상작가 특별전〉, 〈현대문인화특별전〉,〈아동상형문자전〉 등 5개의 전시로 구성되었다. 아울러 2007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중국의 주밍을 비롯하여〈 현대 서예작가 5인전〉이 물파화랑에서 열렸다. 그러나 출품작가의 질적 수준과 대표성, 작품의 완성도, 전시 기획력 등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2008년에도 지속되어 서예계에 남겨진 큰 과제가 되었다.
주지할 것은, 현대 서예 역시 한자와 지필묵이 대세이지만, 미술 영역과의 조우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한국서예가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권창륜_초정여유서〉(1.9-1.15, 물파공간), 〈소헌 정도준〉(2.4-2.28, 뉴욕 천리), 〈효산 손창락서〉(9.18-9.24)과 같은 괄목할만한 전통서단의 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전통서예와 현대서예의 기운을 한꺼번에 조우하려고 시도한다면, 〈동강 조수호〉(8.30-12.30)의 〈묵조〉시리즈나 김종원의 『2008서울디자인올림피아드』(10. 11-10.21, 잠실주경기장) 출품작 중 〈묵희〉, 〈문자 만다라〉 시리즈는 문자를 필묵의 점획으로 환원하거나 채색형상으로 재구성하는 등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로 서예를 해석한다는 점에서 보다 현대화되는 시도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한편, 〈Emography-허회태 예술 47년전〉(11.4-11.10,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필묵과 점획의 극대화를 도모하거나 전정우의 〈66체 천자문과 문자추상전〉(11.13-11.23, 연세대박물관)은 점획에 색을 섞어내면서도 미술과의 혼융되는 장에서 서예 중심의 해체를 시도했다고 평가되었다.
반면, 〈국당 조성주 서예 대붓 휘회전〉(8.15, 경복궁), 〈석창우〉(6.23-29, 베이징 연우화랑), 운학 박경동의 〈청계천 라이브서예〉(2.23, 청계천)은 서예 창작의 현장성을 강조하는 서예 퍼포먼스가 강조된 전시였다. 나아가 캘리그래퍼 이상현과 현대무용가 이숙재와의 공동창작인 〈한글춤 2350전-캘리그래피와 현대무용의 만남〉(10. 14-15, 국립극장 예악당)은 서예가 다른 예술장르와 결합하는 복합의 가능성을 이벤트적으로 드러냈던 전시였다.
현대서예가 오늘날 혼종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간다 할지라도 그 맥은 전통서예의 바탕에 근거한다. 기획전, 〈소암기념관 개관-달아 달아〉(10.4-2009.2.28)는 일제강점기 서가였던 현중화의 예술세계를 시기별, 서체별, 주제별로 기획함으로써 20세기의 대표인물 중 한사람으로 오늘날 재평가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유치웅의 10주기 유묵전인 〈일창 유치웅 선생 유묵〉(4.28-5.11,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평생 개인전을 열지 않았음에도 근현대서단의 대표적 서예가로 자리 잡았던 그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과거의 전통과 역사를 재조명했던 또 다른 전시로 〈아라재 소장 조선서화 보묵〉(4.29-5.2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나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대전〉(10. 12-10.26, 간송미술관)은 일반인들에게 조선서예의 미학과 내용에 대한 큰 틀을 재성찰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이다. 보다 역사적 성찰에 깊이 잠입했던 전시로는 〈한국서예금석문 2000년전〉(5.2-5.22, 대전대박물관)으로 삼국시대 금석문, 나말여초 선사탑비 등을 공개함으로써 중국서예와 한국서예의 미학을 비교해볼 수 있는 절호의 장이었다.
오늘날, 서예예술에 남겨진 논의가 있다면, 현대서예의 발전을 위해서는 고령화되어가는 서예인구의 저변확대를 통한 전통서예의 계승과 더불어 서예의 현대화 작업을 다양하게 펼쳐나가야만 할 것이다.
V. 미술평론-미술이론 창작의 미술현장에서 활발히 움직여야 할 미술이론과 비평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언제나 있어왔다. 2008년의 상황도 그간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미술이론은 실천으로 나가지 못하고 학술단체의 모임 안에 머물고, 미술평론은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비평 아닌 비평 활동만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것이 창작의 장에서 쏟아 붓곤 하는 비아냥거리는 타자비판이든, 미술이론, 비평의 장에서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드는 자아비판이든 간에, 이러한 비판은 과거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게다가 창작과 이론이 서로의 입장을 상호 이해하면서도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상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까닭에 창작과 대면하는 미술이론, 비평의 양상은 언제나 기름과 물 혹은 물과 기름의 만남이라는 비유 또한 있어왔다.
이러한 자타 비판으로부터 미술현장을 건강히 가꾸어내려면, 양측의 반성적 성찰이 실천의 영역으로 가시화되는데 상호 협력해야 될 것이다. 그 전에, 미술이론, 평론 분야 내의 이론가, 평론가들의 건강한 비판의식 재고와 더불어 그간의 관성에 빠지지 않는 참신하고도 열정적인 활동 등이 전제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V-1. 미술이론계 학술단체 활동_풍성한 미술이론 발표의 장 VS 상아탑 안에 갇힌 미술이론 2008년에도 미술이론과 관계한 학술단체의 학술발표회가 다수 열렸다. 미술사, 미학, 예술학, 조형예술학, 미술학, 미술교육학, 시각문화학, 미술이론학 등 학술연구 활동의 취지에 따라 학술단체의 연구 방향성은 제각기 다르다. 순수 인문학의 장에 거하는 담론 생산으로부터 현장과 밀접하게 연계한 이론 생산 등 연구내용도 그 특성을 달리 한다.
우선 2008년 한 해 동안의 정기적, 비정기적 학술심포지엄과 학술대회를 중심으로 학술단체 활동을 살펴본다.
고고미술사학회(회장 정우택)에서는 학술대회 『근대미술의 대외 교섭』(10.25, 부산시립미술관)이 열렸다. 한국 근대회화(김용철, 김영나), 근대건축(김정동), 근대조각(김이순), 근대공예(최공호)등의 소주제들로 대외 교섭의 역사를 주변국과의 상황 속에서 고찰한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미술사교육학회(회장 최성은)에서는 춘계와 추계로 나뉜 두 차례 학술대회와 전국학술대회를 열었다. 『전국학술대회』는 미술과 정치 (5.10, 국립고궁박물관)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여기서 이강근의 <조선왕조의 궁궐 건축과 정치>, 조은정의 <베르기나 대봉분과 마케도니아 왕조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장진성의 <천하태평의 이상과 현실-강희제남순도권의 정치적 성격>, 김진아의 <1960년대 말 정치적 격변 속에서-치카노 벽화운동>, 방병선의 <황제, 문인, 경덕진-명말청조 중국청화백자 연구>, 윤범모의 <근대기의 미술과 정치-이쾌대를 중심으로>, 김향숙의 <통일의 굴곡에 투영된 독일 현대미술과 정치의 헤게모니> 등 다양한 시대의 미술과 정치의 상관성을 탐구하는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서양미술사학회(회장 오진경)에서는 두차례 학술대회와 학술심포지엄이 열렸다. 『학술심포지엄』은 (11.22, 덕성여대)에서는 미술사와 관람자라는 주제 아래 조은정의 <방문객의 시선-로마 저택 벽화의 실제와 허상>, 전한호의 <가르키는 손, 가르치는 손-르네상스 미술에 나타난 지시하는 손짓의 의미>, 마순영의 <1860-70년대 프랑스 회화와 관람자>, 진휘연의 <관람자에서 소비자로-1923년 바우하우스 전시를 통해 본 관람자의 역할 변화>, 전영백의 <충격가치를 넘어선 내면의 고통-곰리(Antony Gormley)와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등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현대미술사학회(회장 김재원)에서는 두 차례 학술대회와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