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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일반〕고흐 이후의 현대미술과 문화목회의 지평/ 문화목회와 미술의 만남 2

김성호

 

                                                     〔평론일반〕

 

문화목회와 미술의 만남

고흐 이후의 현대미술과 문화목회의 지평 2

 

 

 

                                                                                              김성호(미술평론가)

 

 

 

 


( 1편에서 이어짐 : http://www.daljin.com/column/9559 )

 

IV. 오팔카

자, 여기에 고흐의 예술세계와 그로부터 영향 받은 현대미술의 제문제들로부터 제기된 문화목회의 과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한 현대미술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로만오팔카입니다. 이 작가는 표현주의적 전통과는 다른 자리에 있는 미술가입니다. 그가 누구이며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1931- 2011)는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로 귀화해서 노년의 나이에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작년에 작고한 화가입니다. 이 작가는 1965년부터 그가 작고하기까지‘인생의 프로그램’〈 Le programme de vie, Opalka 1965/1-∞ 〉이라 명명한 단 하나의 시리즈 작업을 통해서 자신의 전 생애를 투사시켜 시간성의 의미를 탐구해 왔습니다. 1965년 이래 일생 동안 ‘시간의 시각화’라고 하는 일관된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론의 문제의식을 천착해왔던 만큼 그를 연구함에 있어 난해한 ‘시간성’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탐구는 그 어떤 것 보다 우위에 있는 방법론일 것입니다.

 

개인적 삶의 시간을 작품화하는 오팔카2)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의 시각화’라는 이전 작업들의 주제3)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1965년부터 새로운 형식으로 시작된 그의 시리즈 작업인 〈인생의 프로그램〉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프로그램〉이 1965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복잡한 형식과 규칙의 대부분은 1972년에 이르러서야 정립되었고, 이때에 비로소 오팔카는 자신의 작업 형식을 정초시킬 것을 결정하는 아래의 텍스트를 발표했지요.

 

 

                                                      오팔카 선언, 1972

 

내 전 생애의 프로그램이자 본질적인 나의 제안이란 시간과 그것의 정의에 관한 기록으로서 그 진행과정을 기록하는 작업 속에서 표출된다.

단 하나의 날짜, 1965는 내가 시작했던 첫 따블로 작업 데타이(Détail)로부터 기인한다.

각각의 데타이 작품은 무한대의 의미를 열고 있는 이 날짜에 의해서 그리고 개별 데타이 작품 위에 쓰인 첫 번째 수와 마지막 번째 수에 의해서 ‘단일성’을 발현하게 된다.

나는 196 × 135cm(‘여행카드’의 경우는 예외)로 동일한 크기의 캔버스 위에 1부터 무한대에 이르는 수의 점층적인 전개과정을 손으로, 붓으로, 흰색으로, 매번 약 1%씩 밝아지는 배경 위에 써내려간다. 언젠가는 흰색 위에 흰색으로 글씨를 쓸 순간이 올 것이다.

작업실에서 하루의 작업을 마감하는 순간에 나는 진행 중인 ‘데타이’를 배경으로 내 얼굴사진을 찍는다.

각 데타이 작업은 숫자를 쓰면서 동시에 그것을 읽는 내 목소리를 녹음기에 녹음하는 과정을 동반한다. 4)

 

 

오팔카 선언에서 드러나는 내용들은 개략적인 것이어서 그의 작품 〈인생의 프로그램〉에 드러나는 복잡한 형식과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형식의 언급이 추가적으로 필요합니다. 순차적으로 형성되었던 작품 구성의 개별요소들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통해서 그의 인생의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형식적 특징들을 아래와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1965년, 오팔카는 〈 Le programme de vie, Opalka 1965/1-∞ 〉라고 명명한 그의 새로운 시리즈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것은 1부터 연속적으로 증가되는 일련의 숫자들을 써내려가는 작업으로 그의 첫 번째 캔버스 작품〈 Détail 1-35327 5)에는 1부터 35327까지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첫 데타이 제작을 위해서 오팔카는 캔버스 위에 바탕색으로 검은 색을 칠하고 그 위 맨 상단 좌측부터 숫자 1을 쓰기 시작해서 2, 3 식으로 증가하는 숫자를 줄이 끝날 때까지 지속해서 써내려갑니다. 계속해서 증가하는 숫자는 다음 줄로 계속 이어져 내려가며 캔버스의 맨 하단 우측에까지 마지막 숫자인 35327에 이르며 첫 번째 작품이 끝나는 셈이지요. 오늘날 그가 작고하면서 마친 마지막 숫자는 5,607,249입니다. 196 × 137cm 크기의 캔버스 위에 0호 크기의 붓으로 쓸 수 있는 글씨의 크기를 오팔카는‘가능한 가장 작은 그러나 읽을 수 있는’ 크기로 규정하고 작업을 했습니다.

 

                 
오팔카, Tableau comptéDétail 1-35327 〉 오팔카, Tableau comptéDétail 1-35327

(세부)

 

 

1968년부터 오팔카는 쓰고 있는 숫자를 폴란드어로 읽어가는 과정을 함께 병행하는데 비교적 명징하고 높은 목소리로 읽어가면서 이를 녹음기에 녹음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그가 쓰고 있는 숫자의 전개과정을 스스로 확인하면서 숫자를 오기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오팔카는 데타이 작업에서 쉼표나 어떠한 간격도 없이 숫자들을 촘촘하게 붙여서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러한 쓰기의 방식이 오기(誤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따라 읽기’와 ‘음성 녹음’의 방법론의 병행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1972년부터 오팔카는 흰색으로 숫자를 쓰는 방식과 녹음 방식에 새로운 방법을 하나 추가합니다. 백만의 숫자에 이르면서 계획한 이 방법은 하나의 데타이를 마칠 때마다 다음 데타이의 캔버스 바탕색을 이전의 바탕색에 흰색을 약 1% 첨가하여 만든 색으로 바탕을 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데타이가 거듭될수록 원래 검은 색으로 출발했던 바탕색은 점점 밝아져 언젠가는 흰색 위에 흰색을 쓰게 될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미래를 상상해보게 만들지요. 물론 2000년대에 이미 ‘흰색 위에 흰색’ 작업은 현실화되었습니다.

 

          
오팔카. Tableau compté                         오팔카, 숫자를 쓰는 순간

Détail 4273405-4293153〉

 

 

1972년부터 고안된 또 다른 형식은 매일의 작업이 끝난 후 작업 중이었던 ‘숫자 따블로’ 6)의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팔카가 자신의 얼굴사진 촬영을 위한 조건을 언제나 균일하도록 설정해 두었다는 것이지요. 흑백의 사진, 얼굴의 정면, 같은 흰색의 셔츠, 같은 목걸이, 같은 표정, 같은 조명, 같은 촬영기기 같은 조건과 상황이 그것입니다.

 

                                  
오팔카, Autoportrait photographique 1965                   오팔카, Autoportrait photographique 2000

 

 

한편, 오팔카는 캔버스로 된 ‘숫자 따블로’를 지속하는 한편, 1968년부터 스스로 ‘여행카드’〈 Carte de voyage 〉라 명명한 새로운 방식의 데타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에 이르러 그만 둔 이 작업은 32.5 × 23.5cm의 크기의 종이에 검은 색 잉크로, 02호 크기의 펜촉으로, 앞서의 캔버스 작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숫자를 써내려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작업 방식이 고안된 것은 아틀리에에서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여행을 떠나거나 출장을 나가 있을 경우 지속하지 못하는 캔버스로 된 ‘숫자 따블로’ 작업에 대한 애착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따라서 ‘여행카드’는 아틀리에 밖에서 할 수 있는 ‘종이 데타이’로 고려된 것이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여행카드’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아틀리에 안에서의 ‘숫자 따블로’작업이 완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숫자 따블로’가 완성되지 못하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행카드’는 ‘숫자 따블로’의 맨 우측 하단에서 끝난 숫자를 이어받아 써내려가는 것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팔카, Carte de voyage 〈 Détail 4753559-4756286 〉(세부)

 

 

저는 오팔카의 작업을 베르그송 철학인 지속의 개념과 연관지어봅니다. 그것은 오팔카가 진술한 어느 한 텍스트로부터 가져왔습니다. 아래를 보시죠.

 

“내가 묘사하려 시도한 시간은 베르그송의 시간, 즉 경험적 지속(Durée vécue)이다.” 7)

 

제 입장으로서는 둘 사이를 연결하게 된 직접적인 사실 “나의 작업은 생의 지속(durée d'une vie)만을 보여줄 뿐 그 어는 것도 아니다”라는 확신에 찬 오팔카의 진술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구절은 실제적으로 베르그송을 지칭하지는 않고 있지만 그의 지속 개념을 자신의 작업과 연관하여 풀이하고 있는 진술이 됩니다.

 

“나는 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연 본성이 드러내는 지속 속에서의 시간의 변화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죽음에 의해서 그 존재가 정의된다. 그것은 비가역적 지속(durée irréversible)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정서이다.” 9)

 

위의 두 텍스트에서 등장하는 ‘경험적 지속’, ‘비가역적 지속’, ‘인간존재’, ‘생의 지속’과 같은 주제어들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지속’과 관계하는 용어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영원성의 개념과 맞물립니다. 무엇보다 베르그송에게서 영원성이란 관념 속에 그려지는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 생명을 지닌 주체가 생존하고 있음을 자각하는‘생명의 영원성’ 10)을 강조하게 됨으로써 오팔카의 작가적 실존 속에서 모색하는 영원성의 차원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베르그송으로서는 ‘지속처럼 삶과 생명이라는 것은 지성이 분석, 감당할 수 없는 늘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무엇’ 11)이었습니다. 그의 지속은 기독교적 사유와 인본주의적 사유의 중간에 위치합니다. 그의‘창조적 진화(évolution créatrice)’이 그것입니다. 이 창조적 진화에는‘삶의 약동(élan vital)’과 더불어 생명, 삶의 양상이 영혼과 몸이 한 덩어리인 채로 인식되는 ‘생명의 단일성(unité de la vie)’ 22) 그리고 일관성 있는 삶의 존재론을 의미하는 ‘연속적 유동성(fludité successive)’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오팔카, 하루의 창작을 마감하며 찍는〈사진 자화상〉

 

 

따라서, 이런 베르그송의 지속의 철학과 오팔카의 작품에 대한 상호비교분석이 다음처럼 가능해집니다.

 

1. 베르그송의 지속이 측량 가능한 ‘공간화되는 시간’과 차별화하듯이 오팔카 역시 자신의 작업을 ‘시-공간’으로 표상하며 측량가능한 시간과 차별화한다.

 

2. 베르그송의 ‘지속’이 ‘공간과 완전히 섞여 있는 순수한 시간’이자 실제적 시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오팔카의 인생의 프로그램에 나타난 시-공간의 개념(concept l'espace-temps)은 시공간적 상호개입의 시간을 의미한다.

 

3. 베르그송의 지속이, 질적으로 다른 순간들이 끊임없이 집적을 이루며 전개되는 총체화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듯이 오팔카는 그의 작업, 인생의 프로그램이라는 시-공간을 위해 무한대를 향해서 끊임없이 전개되는 수들을 써나가며 비가역적 단일체(unité irréversible)를 형성해 낸다. 둘 다 나뉠 수 없는 총체성을 지향한다.

 

4. 베르그송에게서 지속은 인생과 인간의 생물학적 존재를 강조하고 있듯이 오팔카의 시공간 역시 시공간의 한계에 직면한 작가 자신의 생물학적 존재를 시각화하는 시간이다.

 

5. 베르그송의 지속이 종국에는 생물학적 영원성이라는 초시간성(intemporalité)을 강조하듯이 오팔카 역시 자신이 죽고 나서야 끝나는 〈인생의 프로그램〉을 통해 무한대를 지향하는 숫자쓰기를 계속하며 초시간성을 지향한다.

 

6. 베르그송이 시간의 본질인 지속을 탐구하기 위해서 ‘분석을 요구하는 지성’의 체계가 아닌 ‘직관’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듯이 오팔카 역시 ‘공간화된 시간의 분석’을 배제하고 인생에 의한 지속을 ‘직관’의 방법론으로 탐구해나간다.

 

7. 베르그송의 지속이 연속되는 새로움의 연쇄 고리로 이어지며 실제의 삶의 시간을 반영하듯이 지속은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단일체를 형성한다. 오팔카의 작업 역시 데타이의 각 형식적 특성들이 단일체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1965년의 1부터 계속 증가되는 새로운 수로 이어져 무한대를 향해 진행되는 수들의 ‘절대 불가분성’을 드러낸다.

 

8. 베르그송의 ‘개방적 도덕’은 직관을 통한 바라보기로부터 기인되면서 지성을 통한 분석하기로부터 기인하는 ‘폐쇄적 도덕’과 차별화된다. 오팔카의 작업태도 역시 규칙에 따른 엄격한 작업형식과 더불어 창작에의 고된 노동 등을 통해 윤리의식을 드러낸다. 그것은 지성이 아닌 직관과 내면적 의지로 가능해지는 ‘의지적 윤리’로 발현된다.

 

자! 그런데 우리는 위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시간을 기록하는 화가 오팔카의 존재론적 성찰이 종교와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고흐와는 다른 지점의 고민들과 상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오팔카의 다음 진술을 살펴볼까요?.

 

“나는 종교적 신앙으로 신(Dieu, 神)을 신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신성의 극단적 고양과 연결된 채 실제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상징적인 현현(manifestation)’으로서의 신에게 다가선다. 나는 신이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개념적이다.” 13)

 

이러한 진술은 스피노자(Spinoza)의 저작 『윤리』에서 ‘신을 영원성(éternité)과 동일시한 관점’으로부터 빌려온 것으로, 오팔카만의 독특한 사유는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신을 개념적 인식으로 대면하는 오팔카는 예술을 신의 개념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시간성과 관련하여 앞에서 살펴본 논의에 바짝 다가섭니다. 아울러 범종교적 세계관에 위치한 오팔카와 같은 작가를 문화목회의 차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할 것인지 하나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의 오팔카의 진술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신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입증해야 할 하나의 이념이다. 그것은 임시성(éphémère)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의지인 것이다.” 14)

 

“내가 예술에서 찾고 있는 본질은 우리들 인간 조건의 차원으로 임시성에 이러한 영원성의 차원을 부여하는 것이다.” 15)

 

오팔카의 논의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술창작에 관한 임시성과 영원성의 연계 고리는 미학적 개념에서 다음처럼 정의될 수 있습니다. 영원성의 차원을 예술창작행위라는 임시성에 가져오는 것과 임시성의 예술창작물로부터 영원성의 차원이 발현되길 기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즉, 영원성(예술 가치)→ 임시성(예술 창작 행위) + 임시성(예술 창작물)→ 영원성(예술 가치)이 되는 것이지요. ‘영원성으로부터 임시성으로(de l'éternité à l'éphémère)’ 혹은 ‘임시성으로부터 영원성으로(de l'éphémère à l'éternité)’라는 개념 모두 인간존재의 예술행위를 강조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야훼의 얼굴을 모방한 채 야훼의 말씀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조물주의 인간창조는 아담의 뼈를 취해 하와(Ḥawwāh, 이브)를 만들고 나서야 완성된 것은 아닐까요? 아담의 탄생 뒤로 가려져 잘 조명되지 않던 하와의 탄생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은 신으로부터 말씀이라는 언어체계로 지시되고 창조되어진 세상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신의 노동력을 요구한 대목이 바로 여성 창조를 통한 인간의 완성이었다는 것에서 기인합니다. 흙(adama)이라는 무한의 질료를 통해 생성된 남자(Adam)와 이로부터 선택된 오브제(아담의 뼈)가 아상블라주로 변모된 여자(Hawwāh)의 창조는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에게 있어 최초로 부려진 미술행위인 셈입니다. 그 중에서 아담의 어원이 사람이라는 존재를 지칭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아담을 통해서 인식되어져 온 남성위계질서의 인간 대표성은 다분히 언어적인 현상학의 측면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반면 하와로 구체화된 질료의 세계는 인간 개별성 혹은 인간의 특수성을 상징하는 시각적인 물체계를 담보합니다.

 

이처럼 신에게 언어로 가능했던 무수한 창조 프로젝트 속에서 유일하게 미술적 노동력을 함께 요구했던 것은 인간, 특히 하와로 대표되는 인간(아담으로 대표되는 인간이기보다는)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아담에 대한 하와의 정체성은 언어에 대한 이미지, 환영에 대한 실제, 미술에 대한 현대미술이라는 복잡다기한 논의의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아울러 ‘영원성으로부터 임시성으로’와 ‘임시성으로부터 영원성으로’라는 위의 예술창작, 예술감상과 관련한 논의들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성찰하게 합니다.

 

다시 오팔카의 작품세계로 돌아오겠습니다.

 

오팔카는 상기와 같은 인식들을 통해 자신의 시리즈 작업, ‘인생의 프로그램’을 인간의 존재적 한계를 거듭 확인하면서도 영원성, 초시간성의 가치를 지향하는 예술창작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나는 (내 작업을 위해) 결정적으로 존재의 개념을 선택했다” 16)라는 언급이나 “나의 예술행위는 인간존재의 변하지 않는 규칙과 다시 만난다”17)라는 오팔카의 진술은 시공간적으로 유한한 인간존재를 인정하고 이로부터 영원성, 불변성과 같은 초시간성을 예술행위로부터 발견해내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오팔카, 디스플레이를 위해 사진을 고르는 오팔카

 

 

더불어 이러한 태도는 1965년 이래 자신의 전 생애를 투여해서 작업하고 있는 〈인생의 프로그램〉에 이러한 초시간성의 의미를 담아내려는 의지와 맞물리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시간을 가시화하면서 시간성의 의미를 탐구하는 오팔카의 작업의지가 예술적 결과물에 물리적 운동감을 부여하는 여타의 미술 행위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됩니다. 오히려 그는 초시간성을 향해 질주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인생의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한 예술활동이 범종교적 이념을 구현하면서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론에 대한 고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할 때, 우리 문화목회의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고흐의 표현주의적 열정과는 다른 지점에서 우리는 그의 개념적 열정을 봅니다. 그것은 지극히 윤리적인 작업들로 나타납니다.

 

오팔카가 정한 수많은 강제의 규칙들과 금욕적, 신체적 노동이 부가되는 작업형식들에 드러난 윤리의식은 베르그송이 언급하는 ‘인간적인 연민, 자신의 증여, 희생, 자비’ 18)등의 내용과 맞물려 있습니다. 그것은 베르그송이 개방적인 도덕의 특성을 강조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지요. 이른바 이타주의인데 그렇다고 오팔카를, 베르그송이 개방적 도덕을 수행하는 주체로 예를 들고 있는, ‘위대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성자, 현자, 영웅’ 19)과 같은 이타주의자로 몰고 가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고 했던 수도사들의 위치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서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가 절대로 기독교적 신앙관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다음을 오팔카의 언급을 보시지요.

 

“만약, 영혼(âme)이 사유와 감성에 의해 신(Dieu)에게 몰두된다면, 영혼의 어떤 것은 신의 밖에 남게 된다. 그것은 의지(volonté)이다.” 20)

 

하나님이 인간에게 남긴 자유의지는 창조적 지속 아래서 소망, 희구를 실행하게 하는 힘을 줍니다. 베르그송이 개방적인 도덕을 위해서 폐쇄적 도덕에서의 억압과 의무를 소망이나 희구 그리고 의지로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면 오팔카에게서 드러나는 금욕적 자기통제와 억압의 외형은 내적 의지를 강화시키는 전략일 뿐 사회적 의무와 억압, 통제와 같은 개념이 주도하는 폐쇄적 도덕이 결코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오팔카 이렇게 말해주길 바라고 싶습니다.

 

“나의 작업은 인간의 존재론과 시간관을 하나님의 창조 역사 안에서 구현하기 위함이다”그의 예술창작 세계가 매우 매우 윤리적이고 금욕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기독교적 사유를 실천했다고 끝내 증언하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오팔카의 윤리적이고 금욕적인 예술적 실천 앞에서 그가 지향하는 범종교적인 인간관을 어떻게 기독교의 문화목회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근본적으로는 실천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관을 다른 방향에서 실천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많습니다. 마치 고흐가 절실한 기독교적 신앙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에게 체화된 기독교 복음주의의 개인적 신앙관을 무의식적으로 실천해온 것처럼 말입니다.

 

 

 

V. 에필로그

이번 강의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해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도의 문제는 있지만, 고흐를 자신에게 오래전부터 체화되었던 복음주의 신앙관을 그 정신세계의 무의식적 지평에서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켰던 작가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문화목회의 과제를 탐구하는 이번 강의에서 고흐가 기독교적 신앙을 버렸는지 그것을 끝까지 지켰는지의 문제는 어쩌면 부차적입니다. 고흐로부터 영향받은 표현주의적 현대미술들이 모색해온 실험들 속에서 도달하게 된 성상모독적 자율 표현의지의 탐닉과 반기독교적 가치 모색에 관한 일련의 문제의식에 관한 것입니다. 문화목회가 이러한 기독교의 신앙관에 적대적인 태도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대예술을 연구의 대상에서 그리고 실천의 대상에서 그저 제외하고 눈감으면 되는 일일까요? 제기되는 문제의식 속에서 논의될 꺼리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화목회의 과제 1_Ksh

 

 


문화목회의 과제 2_Ksh

 

우리는 마지막에서 기독교적 사유를 빌리지 않고서 기독교적 인간 가치를 드러내는 오팔카와 같은 현대미술가의 예술창작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이해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범종교적 윤리의식의 차원으로 묻어두어야 할까요? 아님 이러한 예술들로부터 하나님의 진리의 세계로 끌어들여 재해석하고 그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미흡한 강의 하나가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목회의 과제는 무엇인지를 곰곰이 성찰할 자그마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주석 생략)

 

출전/

김성호, “고흐 이후의 현대미술과 문화목회의 지평”, (강의안)『문화목회-Hub : 문화목회와 미술의 만남-목회에 고흐를 덧칠하다.』(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문화법인, 2012, 6. 28, 서울, 문학의 집), p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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