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풍경(83)“황량하게 얼어붙은 폭포의 형상, 그리고 그 얼음을 타고 오르는 인간의 존재는 내 작업의 주된 풍경이다. 그 풍경은 내 경험적 산물이자 편린이 되어, 심상에 재인식되고, 나만의 풍경이 되는 것을 즐기는 유희의 일종이 되어버렸다. 객체로서 빙폭은 액체인 물에서 고체인 얼음으로의 변환이라는 계절에 따른 변화를 내포한다. 그래서인지 빙폭은 단순한 무생물이 아닌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여겨지게 한다. 빙폭은 일순간에 언 것이 아니고 얼다가 녹다가를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다. 은유적으로 빙폭은 우리 인생의 장애물과도 같기도 하다. 위험한 순간을 감수하며 기를 쓰고 빙폭을 등반하는 산악인처럼 말이다. 각자 모두가 삶의 정상을 만들어 가는데, 빙폭의 효과를 통해 이런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 작가의 생각
산수화(山水畵)의 문자적 속성처럼 산과 물은 오랫동안 동양화의 주된 소재였다. 하늘을 향하는 산세(山勢)의 양(陽), 땅을 향하는 수세(水勢)의 음(陰).
그래서 산과 물이 등장하면 으레 그 자체만으로 자연스레 기운의 질서가 형성되기도 한다. 유갑규 작가는 산수화의 폭포, 그것도 좀처럼 표현되지 않았던 ‘빙폭’을 클로즈업하여 새로운 산수화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다. 물의 기운을 순식간에 바꾸고, 더불어 현대적 정서에 어울리는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노련하게 산수화 소재 발굴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드라마틱한 시각 효과의 매혹적인 즐거움만큼이나, 관객은 내면의 철학적 주제까지 기대하기 마련이다. 작가들은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으면, ‘왜’ 표현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하고 완성해야 한다. 작품이 일단 유혹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진짜 예술이지 않을까 싶다.
- 유갑규 작가는 2009년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2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