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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17/동시대 미술의 쟁점(공동체 2): 공동체 가능성

심현섭

공공미술 17/동시대 미술의 쟁점(공동체 2): 공동체 가능성 

장 뢱 낭시(Jean-Luc Nancy, 1940- )의 ‘무위의 공동체 Inoperative Community’(1986)는 공동체에 대한 깊은 사유와 더불어 공동체 실현의 어려움을 시사한다. 낭시는 공동체 실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전체주의의 원인을 인간의 내재성 또는 절대적으로 최고의 내재적 존재라고 여기는 인간의 잘못된 교만이라고 한다. 인간의 자기존재에 대한 우월감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는 결국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주입하려는 유혹에 빠지면서 ‘전체주의’로 함몰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간의 ‘내재주의’와 다름 아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공산주의에서 이를 목도했다. 이는 공동체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은 공동체의 포기가 아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제·수행·수행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낭시는 공동체 실현의 어려움을 이와 같이 표현한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공동체에 대한 요구는 우리에게 여전히 전대미문의 것이며, 우리에게 알아내야 할 것으로, 또한 사유해야 할 것으로 남아있다. 적어도 우리는 공동체라는 과제에 대한 약속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전대미문의 ‘의의’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또한 공동체의 계획이란 것이 그 자체로 ‘거대한 실패’를 껴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낭시는 한편으로 개인은 공동체가 와해되는 시련 이후에 남은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동체에 대한 사유가 “우리가 알아내야 할 것”또는 “우리가 사유해야 할 것”을 여겨지는 한, 즉 인간 주체에 대한 사유로 마무리되는 한 공동체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와 유사한 최고주권적 외-존(外存)이다. 낭시는 또 관계와 공동체 너머의 절대적 존재라는 인간의 내재적 존재의식은 상처만을 남기며, 오직 ‘탈자태(脫者態)’만이 치유책이라고 한다. 탈자태는 자기 스스로 고유의 정체성과 결정권을 바탕으로 독립할 수 있다고 믿는 주체는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외존에 의해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존재이다. 즉 인간 각자가 자기 안의 주체를 내려놓고 자기 밖과 관계를 맺으며 존재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 경험은 공동체에서만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타유가 말하는 ‘내적 경험’은 어떠한 ‘내적인’것도 , 어떠한 ‘주관적인’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척도 없는 바깥과의 관계에 대한 경험과 분리될 수 없다. 그 관계에 오직 공동체만이 공간을 내주거나 자신의 리듬을 부여한다.”

이렇듯 낭시는 철저하게 인간 주체를 인식하지 않는 수동적인 ‘내버려둠’의 상태야말로 공동체를 사유하는 태도라고 하고, 이를 ‘무위’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위의 상태, 즉 외존과 탈자태는 어떻게 가능할까? 낭시는 우리 모두는 죽음과 같은 유한성을 공유하는 유한자로서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짧게 서술하며 암시하지만 링기스는 죽음과 외존의 연결성을 주의 깊게 서술한다. 링기스에 의하면 외존은 죽음에 대한 체험과 불안감에서 비롯한다. 그는 “자신의 창의성이 지닌 역량들을 수동성에 내맡기는 과정에 내재된 죽어야 할 운명을 체험하는 과정”에 있다면서 죽음을 인식하는 자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 불안감은 “미래의 가능성들이 떠도는 물가능성의 공허를 감지하는  근심일 뿐 아니라 ‘고민하는 감정’, 옹색한 곤궁에 옥죄이는 답답한  감정, 자신의 손으로 둘러친 장막에 자신이 갇히는 감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에 저항하고 은폐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결국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본연의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격심한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에서 ‘오직 나만의 것인 생명의 열기와 맥박을 느끼는 ’감각‘과 ’존재하기를 원하는 역량이기도 한 그 생명에 집착하는 감각‘은 내가 여전히 발 디디고 서있는 땅의 지지력을 느끼면서 오직 나만을 위해 예정된 가능성들을 지지하는 땅을 느끼는 감각이다.” 

죽음의 불안감으로부터 당도한 자기와 자기 삶에 대한 자각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해방하기 위해 소환한 나의 사고력에게 모든 사람을 위해 언제나 존재하는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이로서 사람들은‘타자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서 타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나의 과업들과 죽음을 결연하게 추구함으로써 타자의 과업들과 죽음을 위해 타자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타자의 존재를 깨닫고 타자의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가 ‘외존’이며 ‘탈자태’라고 할 수 있다. 링기스는 이를 ‘합리적공동체’와 대비하여 ‘타자공동체’라고 하는데 이는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와 상응한다.

“‘타자 공동체’는 타자를 대면하는 사람이 타자의 얼굴에서 정언명령을 인식할 때 형성된다. 그 정언명령은 타자를 배제하는 공통담론과 공동체를 문제시할 뿐 아니라 타자를 대면하는 사람이 타자와 함께 공유하거나 공동으로 건설하기 시작한 모든 것을 문제시한다.”

‘무위의 공동체’내에서는 누구도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없으며 각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해 강제적으로 자신의 것을 주입하여 단일화하려는 시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가장 큰 걸림돌인 인간의 절대적 내재성을 기반으로 한 전체주의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상태의 공동체인 것이다. 이는 공공미술의 공동체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이미 규정된 정체성’을 사전에 방지한다. 무위의 공동체에 속하는 각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언제나 타자(他者)이며, 매순간 동일성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유한자는 단독으로 존속할 수 없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타자를 향한 외존의 움직임 속에서 존재하는 유한성을 분유하는 공동체가 곧 ‘무위의 공동체’다.
낭시의“연합은 존재하지 않고 공유된 존재가 존재하지 않으며, 공동-내-존재 가 존재한다 ”는 언급은 권력에 의해 사전에 규정된 집단의 정체성보다는 개체 존재의 자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임과 동시에 유한한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간섭하거나 강제할 수 있는 인간존재에 대한 언급이다. 즉, 상대에게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동일성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공동체를 바람직한 공동체로 제안하는 것이다. 또한 낭시가 지향하는 공동체는 미완성이라는 원리에 의해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과정의 공동체다. 

“따라서 공동체라는 단일체도 그 실체도 없다. 왜냐하면 그 분유가, 그 이행이 완성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완성이 그 ‘원리’이다. 미완성을 불충분성이나 결핍이 아니라, 분유의 역동성을, 또는 단독적 균열들에 따라 끊이지 않는 이행의 역학을 가리키는 역동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낭시의 이 말은 실제 공동체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기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라는 단일체도 그 실체도 없다는 말은 공동체의 이릉으로 개인을 강제하는 단일화의 유혹을 경계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공동체가 개인을 억압하여 단일화하는 대신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다양성을 생산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한 상태에서 각 개인이 공동체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을 공동체와 개인의 변증법적 합명제로 보는 것이다. 변증법적 합명제는 말 그대로 끊임없는 변증적 순환의 연속을 내포한다. 이는 낭시가 공동체의 분유와 이행이 완성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공동체 내에서 평등에 근거한 유한성의 분유를 끊임없이 경험해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의 끊임없는 반복은 완성을 향해가는 공동체의 역동적인 상태로 ‘미완성’의 공동체를 완성의 상태로 포용하면서, 인위적인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 ‘무위’의 공동체를 생성한다. 이처럼 낭시는 공동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공동체를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 자체로 보았으며, 그러한 과정과 공동체의 구현을 이분화하지 않음으로써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다음: 공공미술 18/동시대 미술의 쟁점(공동체 3):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동체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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