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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교의 조각 세계: <구도(求道)>전에 즈음하여

김영호



유영교의 조각 세계 
- <구도(求道)>전에 즈음하여 



김영호 / 중앙대 교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예술감독

 
유영교가 한국 근현대 조각사에 남긴 성취는 구상조각의 대표적 경향으로 자리매김한 ‘단순한 볼륨과 유기적 선율의 인체 석조’ 계보 안에서 발견된다. 민복진과 전뢰진을 시작으로 최종태, 최봉자, 유영교, 고정수, 한진섭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구상조각의 한 줄기를 파악하는 일은 유영교의 작품에 담긴 개성과 동질성을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민복진과 전뢰진이 모자, 가족, 여인을 주제로 소박하고 포근한 사랑의 서정성을 드러내었다면, 최종태는 간결하고 단순한 선과 환원적 볼륨으로 종교적 정신성을 표상해 내었다. 최종태와 학부 동기이자 로마 유학중 수도회에 입회해 수녀의 신분으로 작품활동을 해 온 최봉자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접한 예수와 성모자를 소재로 성가정을 나타낸 경우다.     

유영교 조각이 지닌 독자성은 한국 구상조각의 큰 틀 안에서도 예술의지(Kustwollen)나 주제 그리고 조형 방식에서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작가의 예술의지란 한국 전통문화의 토착화라는 소명을 일상적 삶의 노정에서 실천해 왔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82년에 제작한 <베드로의 소명>, <욥>, <천신과 싸우는 야곱> 등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내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구도자’ 시리즈는 그리스도교의 영역을 넘어 불교의 지혜와 깨달음의 세계를 갈구하는 인물상들이다. 이렇듯 작가의 예술의지는 특정 종교의 범주를 넘어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세계를 향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석사논문 「조선시대 왕릉의 석인석수 조각 연구」는 전통문화의 토착화 의지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마련한 유영교 초대기획전은 작가의 유작 중 종교적 체험과 그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 다양한 석조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이다. <구도(求道)>라는 제명 아래 ‘구도자’ 시리즈와 ‘성경’ 시리즈 그리고 ‘샘’ 시리즈에 이르는 환조와 부조 그리고 설치 등 35여 점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그리스도교, 불교, 도교 등의 모티브가 혼재된 작가의 작품들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토착적 종교관을 드러내고 있다. 시각을 달리하면 다양한 종교 체험의 결실로 제작된 유영교의 작품들은 이전의 특정 종교 조각에서 보여지는 획일적 소재주의를 극복하고 초월적 깨달음이나 보편적인 진리를 향한 성찰의 통로로 다가온다. 이때 ‘보편적’이란 ‘가톨릭’을 뜻하는 용어라는 점에서 이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초대기획전은 특별한 의미가 주어진다.
   
유영교의 ‘구도자’ 시리즈는 종교적 사유의 주체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작품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 시선이 맞추어져 있다. 작가가 형상화한 구도자로서 인간은 근대기에 유입된 그리스도교와 전통 종교인 불교와 도교를 비롯한 다양한 보편적 진리의 세계를 지향하는 인물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구도자2>를 비롯해 <사유>, <동자와상(童子臥像> 등은 기도와 명상에 잠긴 수도자들이다. ‘구도자’ 시리즈에는 한국 전통 조각의 세계와 가톨릭의 본산에서 체감한 중세 성상 조각의 세계가 함께 융합되어 있다. 이러한 작가의 확장된 시선은 1977년의 <기도하는 여인> 등의 작품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후 그의 작품을 특징 지우는 기도와 명상의 분위기는 1980년에 제작한 <모자상>, 1983년 작품인 <웅크린 여자>, <몸부림>, <우는 여자>로 이어지며 작가의 석조 인물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유영교의 ‘성경’ 시리즈는 예수와 성인 성녀들에 관한 성서 속의 일화를 나타낸 작품들이다. 베드로나 마리아 막달레나, 욥, 야곱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1978년부터 시작된 ‘얼굴’ 시리즈는 작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자 동시에 보편적 존재의 모습을 안면을 통해 표상한 작품들이다. 절대와 개별 사이에 흐르는 유기적 인연 관계는 우주 만물이 부처라는 불가의 가르침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편, 부조 작업으로 완성한 ‘열반’ 시리즈는 대리석 재질로 불교의 깨달음 세계를 드러내고 있으며, 깨달음을 갈구하는 주체가 부처와 나를 포함한 중생 일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못을 든 부처의 손을 나타낸 <사랑>과 <부처의 깨달음과 바오로의 회심>은 두 종교 간의 화합과 소통의 메시지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유영교의 돌조각이 지닌 조형적 특성은 ‘단순한 볼륨과 유기적 선율’이라는 한국 구상조각의 미의식 안에서 정리될 수 있다. 아울러 소박하고 서정적인 세계에 기반을 둔 작가의 조형 실험은 단순한 볼륨과 유기적 선율에 종교적 주제를 도입하면서 초월과 본질 그리고 보편의 가치를 지닌 작가의 고유한 조형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단순한 볼륨의 인체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표상하려는 의지는 기하학적 패턴의 원형을 도입하며 얻어진 추상 조각의 결실과도 다르지 않다. 그의 작품이 에게해에서 발흥했던 키클라데스 조각상에서 콘스탄틴 브랑쿠지나 헨리 무어 등의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문은 여럿이지만 그 문들을 통해 도달한 세계는 하나라는 순리가 그의 조형 실험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영교의 작품에는 절대와 본질 그리고 원형적 형상미를 표상하고자 했던 조각의 전통이 숨쉬고 있다. 보편성 속의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요소들은 이른바 전통문화의 토착화라는 맥락에서 얻어낸 결실들이다. 이러한 결실은 작가가 10여년 동안 살았던 이방인의 삶에서 체득한 경험의 산물이자 동아시아 지역의 전통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실존적 의지와 방황의 결실이다. 작가의 예술세계가 한국 구상조각의 계보를 형성하고 한국인의 독자적인 미의식을 담은 보편 양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후배 미술인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 

2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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